4월_맥문동(Liriope platyphylla) / 없어져야 알기 전에
생루습 캘린더로 혜윰의 생각을 더 전해요. 달력을 캡쳐하거나 저장해서 쓰셔도 됩니다.
매일 다니는 길, 수없이 지나치는 장소이지만 어느날 갑자기 생소하게 발견하게 되는 것이 있잖아요. 반차를 내고 괜히 대낮 퇴근길을 뜯어보다가 있는 줄도 몰랐던 구두 수선집을 발견한다든지, 구청 사이트까지 들어가서 헌옷수거함 위치를 찾아다녔지만 결국 그냥 버리고 나니 집 지하 분리수거장 한켠에 헌옷수거함이 몇 년 째 존재하고 있었다든지.
늘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들이지만 그저 앞만 보면서 '무언가 있구나' 정도로만 스치고 지나갔기에 그게 무엇인지, 어디였는지 알 수 없었던 거예요. 곁에 늘 있었지만 내가 간절할 때에도 그것의 존재를 알지 못하니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거나 중요할 때 찾을 수가 없는 거죠. 사물과 장소로 예를 들었지만, 대상이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존재한다고 소홀히 대하다가 절실한 순간에 함께 할 이를 잃고난 뒤일 수도 있어요.
크게 보면 우린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합니다. 상승하려고 하고 전진하려고 하며, 시작에서 끝으로 갑니다. 시간 속에 살고 있으니 뒤로 갈 수도, 멈출 수도 없기에 우린 어쨌든 나아가는 건 확실해요. 그 앞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누군가는 두리번거리고, 누군가는 뒤를 보기도 하며, 또 정면만 보며 빠르게 뛰어가는 이들도 있을 거예요. 그 중 자신과 나란히 가고 있는 옆을 보는 이는 얼마나 될까요?
바로 옆에서 나와 함께 하고 있는 것들을 가끔 생소하게 생각해주세요.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똑같은 장면으로 지겨움을 느끼기 보다는, 익숙한 것에서 낯선 부분을 찾아 생소함을 느껴보세요. 더이상 어제와 똑같은 순간이 아닐 거예요. 매일 동일하게 닿는 햇볕도 다르게 느낄 수 있을 거고 새로운 시각이 생길 수 있어요. 새로운 시각은 삶의 시점을 바꾸고 앞으로 향하는 여정을 다채롭게 합니다. 몰랐던 시야, 관점, 감정, 생각은 이면을 보게 하고 이해의 폭을 넓히면서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나답게 활용하는 다양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당연한 것에서 찾아낸 생소한 것들이 아마 가장 나다운 것의 일부이지 않을까요? 가장 가장 나다운 것이요. 'AI' 라는 글자에서 개발자는 인공지능을 발견하고 디자이너는 일러스트를 찾는 것처럼요. 그러니 한번쯤 옆을 보고 함께 하고 있는 것들을 돌이켜보고 소중히, 생소하게 대해주세요. 사라지고 난 뒤엔 다시 못 볼지도 모르니까요.
보라색 꽃을 틔우는 맥문동은 어디에나 있어요. 자라기도 잘 자라고 공기정화를 해주기도 하거든요. 아파트 단지 내 화단에 꼭 있을 거고, 공원 등지에서도 본 적 있을 거예요. 그리고 도로와 인도를 구분해주며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도로와 분리시켜 걷도록 인도하기도 합니다. 아마 아직 그게 맥문동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너무 자연스러워서 당연했던 것들에 시선을 주고 나면 어떻게 될까요?
맥문동은 이렇게 생겼어요.
이제 걷다가 보라색 꽃을 보면 맥문동이 한번쯤 떠오를지도 몰라요. 그러면 또 무엇이 내 주변에 나도 모르는 동안 내 곁에 존재하고 있었나, 한번쯤 연이어 생각해보시는 것도 추천드려요!
4월엔 다섯 번째 절기인 청명(淸明)과 모든 곡식들이 잠을 깬다는 곡우(穀雨)가 있답니다. 잠자고 있던 당연했던 것들을 일깨우기 좋은 달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