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첫눈에 사로잡은 다육이들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할 만큼 귀여운데다, 몸값은 천 원 한 장. 잠깐 고민하다가 다육이 하나를 사들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제부터 어찌해야 하나? 일단 '이름'을 알아야 '잘' 키울 텐데...
도대체가 이 세계는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다. 대체 왜, 이 식물은 이름이 병명病名인가? 게다가 '염좌'라 해도 되고 '염자'라 해도 된다고 한다. 명색이 이름인데 왜 정확하지 않지?
애초에 화분마다 정확한 이름이 적힌 이름표가 꽂혀있으면 좋으련만, 꽃시장에서 10개에 만 원 주고 데려오면서 전해 들었던 이름은 금세 머리 속에서 섞이게 마련이다. 게다가 사온 사람이 사오정과科의 사람이거나, 파는 사람이 잠시 헷갈려하며 알려줬거나, 영어에 서툰 어르신들이 나름대로의 이름표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셨다면 이미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름들이 시장을 떠돌게 된다.
사실 이 브런치는 이제 막 '다육이'라는 존재에 흥미가 생겨 궁금한 게 많아진 당신을 위해 시작한 것이다. 지금 당신이 가장 궁금한 건 엊그제 사온 "내 다육이의 이름"이지 않은가? 자신만만해 보이는 글쓴이는 다육이를 기른지는 이제 막 3년 차일 뿐이지만, 최근 다육이 입문 과정에서 대부분 비슷한 루트를 거친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이제부터 등장하는 다육이들은 글쓴이가 모두 사고, 키우고, (하늘로) 보낸 다육이들의 기록이기도 함을 밝힌다.
화원 앞을 지나가다 충동적으로 사 온 이 초록이의 정체는?
(왼쪽) 월동자와 (오른쪽) 십이지권은 둘을 한 자리에 두고 봐도 굉장히 비슷해 보여서, 꽃집에서도 종종 이름표를 잘못 붙여주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분명히 '십이지권'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데려왔는데 둘은 왜 이렇게 다르게 생겼을까? 하고 6개월 동안 고민만 했던 글쓴이의 사례도 있다. 월동자의 잎이 좀 더 통통하고 전체적으로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느낌, 십이지권은 잎이 바깥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느낌이다.
용발톱은 월동자/십이지권과 함께 이름이 혼동되는 또 하나의 시리즈.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화에 나오는 용의 발톱이 이렇게 생겼을 것 같은 신기한 모양을 하고 있다. 차근차근 탑을 쌓아가며 자라난다.
동네 화원, 그러니까 문자 그대로 꽃집에서는 주로 꽃을 다루므로, 같은 물관리법으로 다육이를 기르면 망가질 위험이 크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동네 꽃집에서 판매되는 다육이는 관리가 편하고 오래 길러도 그 모양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타입이 많다.
생긴 것 때문에 헷갈리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너무 비슷해서 혼동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천대전금은 호랑이 알로에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처음 사 왔을 때 지우개(!) 같다며 귀여워하다가, 성장을 잘 하는 타입이라는 걸 알고 난 후로는 일부러 작은 화분에 두고 '자라지 말아라'는 주문을 되뇌며 키웠다. 아주 비슷한 이름을 가졌지만 생긴 건 전혀 다른 천대전송은 통통한 잎 위에 독특한 각이 살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천대전금千代田錦 Aloe variegata L.
천대전송千代田松 Pachyphytum Compactum
백도선이 토끼 선인장, 미키마우스 선인장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는 자구子球(새끼 구)들이 마치 귀여운 귀나 손처럼 뿅! 하고 자라나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처음과는 모양이 많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백도선白桃扇 Honey bunny, Opuntia microdasys var. albispina Fobe.
황금사는 햇빛 아래에서 보면 온몸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것 같다. 작고 하얀 꽃을 피운다.
황금사黃金司 Mammillaria elongata var. intertexta SD
본격적으로 근처의 전문 꽃시장을 찾은 당신의 눈 앞에 수줍은 얼굴로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는 다육이가 펼쳐질 것이다. 작은 환호성을 지르며 한참을 쪼그려 앉아 가장 예쁜 얼굴의 다육이를 고르고 골라 한아름 안고 돌아왔다면, 당신은 앞으로 소개하는 다육이 중 하나쯤은 분명히 데려왔을 거라 믿는다.
설마 이 중에 하나쯤은 있겠지
벽어연은 작은 잎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형태로, 물을 원할 때는 온몸이 쪼글쪼글해진다. 필체의 오해로 종종 '백어연'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돌아다니기도 한다. 청옥은 청포도가 알알이 붙어 있는 듯한 생김새를 가졌다. 위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길게 늘어지며 자라므로 외국에서는 donkey tail로 불리기도 한다. 이 둘은 잎과 잎 사이가 이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이 좋은 상태이다.
벽어연 Corpuscularia 'Lehmannii'
청옥 Sedum 'Burrito'
뿌리가 튼튼한 하월시아haworthia 속에서 가장 저렴하고 대중적인 둘을 꼽자면 수와 옵튜사이다. 수는 각진 얼굴, 옵튜사는 동그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기억하자. 햇빛을 많이 받으면 갈색으로 변하고, 반그늘에 두고 키우면 맑은 초록빛을 유지한다.
수壽 Haworthia retusa
옵튜사草玉露 Haworthia cymbiformis var. obtusa
'슈렉'의 귀를 닮아 '슈렉귀'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우주목, 새하얀 거미줄이 덮여 있는 듯한 거미줄 바위솔
봄꽃보다 화려한 까라솔(일월금)과 오묘한 보랏빛으로 사랑받는 라일락, 반짝반짝 광택이 도는 리틀쨈
발그스레한 부채를 펼쳐놓은 듯한 당인과 작은 꽃잎이 층층이 쌓인 듯한 남십자성
빨간 잎 끝이 매력적이고 봄에 흰색 꽃을 피우는 레티지아, 민트색 작은 장미 모양의 정야와 매끈매끈한 잎이 귀여운 환엽송록, '불꽃 축제'라는 이름처럼 붉게 타오르는 화제는 모두 아름답지만 베란다에서 키우면 처음 모양이 망가지기 쉬운, 즉 '웃자라기' 쉬운 종이므로 '웃자람, 다육이에게 폭풍성장은 없다' 편에서 더 깊게 다루도록 하자.
만약 당신이 원하던 '우리 집 다육이'가 이 사진 속에 없다면, 어쩜 당신은 더 특별한 심미안의 소유자일지도 모른다. 다육이는 말 그대로 셀 수 없이 많으니까! 세상은 넓고 다육이는 진심으로, 많다.
사진에 등장한 다육이의 몸값은 천 원에서 3천원 사이
맨 처음 꽃집에서 산, 화분에 담긴 염좌의 몸값이 5천원으로 가장 높다
처음에는 초록빛 다육이만 고집하다가, 점차 다른 빛이 도는 다육이가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