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록, 콜록, 콜록. 집 안을 퍼져 나가는 아이의 기침 소리. 가끔은 헐떡이는 숨소리. 잠을 잘 땐 폐에서 나는 쌕쌕 대는 소리.아이가 기침할 때마다 나도 숨이 막혔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나를 휘감을까 봐, 자꾸 몸을 움직였다. 창문을 열고 매트를 걷고 구석구석 청소기를 돌렸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꾸 누군가를 째려보고 있다. 천덕꾸러기가 된 고양이를 의식하는 순간. 그러지 말아야지, 퍼뜩 고개를 저었다.
왼쪽부터 빵이, 꾹이 꼬꼬마 시절
복슬복슬하고 길고 하얀 털을 가진 페르시안 고양이들은 2012년부터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해왔다. 그들은 내가 지치고 우울했던 순간들에 늘 침대 머리맡을 지켰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에도 고양이는 골골대며 하얀 털이 북실한 등짝을 내어 주었다.
다만, 내게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었다. 입양 후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혼란스러웠다. 집에만 오면 콧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밤이 되면 기침이 심해졌다. 검색창에 '고양이 알레르기'라고 치자 무시무시한 결과들이 쏟아졌다. 알레르기 단계가 높은 사람이 항원을 계속 접촉하면 비염을 달고 살아야 하며 천식으로 응급실에 실려갈 수도 있단다. 영문을 모르는 고양이들은 그 와중에도 계속 내게 몸을 부볐다.
여러 가지 공포스러운 포스팅이나 뉴스 기사들을 충분히 읽은 후 나는 결정했다. 고양이들과 실컷 부대껴보기로. 비쩍 마른 등짝들을 나 대신 돌보아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내가 더 이상은 그 등짝들을 만지지 않고 살아갈 수 없게 되어 버렸다는 거였다.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처음부터 지금껏 한 순간도 고양이들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문득 고양이들이 다니던 동물병원의 벽에 붙은 글귀를 보고 공감했다.
한 동물을 사랑하기 전까지 우리 영혼의 일부는 잠든 채로 있다. - 아나톨 프랑스
일단 함께 가기로 결심했다면 부지런해져야 했다. 한 시간에 한 번씩은 환기하고 청소기는 물론 물걸레질도 매일 해야 했다. 귀찮다고 뭉개고 있으면 고양이 침으로 범벅된 하얀 털들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굴러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펫 필터 기능이 있는 공기청정기를 구비하는 것도 필요했다. 한 달만 공기청정기를 돌려보아도 얼마나 유용한 기계인지 알 수 있다. 백미는 침구 청소였다. 매일 침구와 베개에 붙은 털 등등등을 제거해야 하는데 정말 귀찮고 팔이 아프다. 그래서 다양한 도구가 동원되었다. 건조기, 알레르기 케어 청소기부터 돌돌이 테이프까지. 육묘는 장비빨이다.
여기까지가 나의 노력이라면 고양이들의 희생도 잇따랐다. 바로 털을 빡빡 밀리는 것이었다. 털 자체가 알레르기를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침이 털에 묻어 온 집안을 굴러다니는 것이라, 털을 밀면 아무래도 리스크가 줄어든다. 우아한 장발을 휘날리던 고양이들이 삼계탕이 되어 나타났을 때의 기분이란. 나는 웃었고 그들은 굴욕감을 맛보았다.
음... 굴욕감이란 이런 맛이군
고양이 알레르기와사투를 벌인 결과가 어떤지 궁금한가? 내가 이겼다. 고양이가 아무리 얼굴을 부벼도 별다른 반응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알레르기 반응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게 되었다. 하늘도 내 정성에 감복한 것인지. 이렇게 고양이 알레르기를 찐하게 겪고 나자 고양이 알레르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사실은 지금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덮어놓고 고양이 탓하지 말자. 기침, 콧물, 피부 알레르기 등등 뭔가 나타난다고 바로 고양이를 범인으로 지목하지 말자. 최소한 알레르기 검사는 해 보고 판단하자. 알레르기 검사 한 번으로107개 항원에 대한 알레르기 유무와 등급까지 알 수 있다. 특히 고양이와 접촉한 뒤 알레르기 반응이 생겼다고 해서 고양이가 꼭 원인은 아니다. 길고양이라면 고양이에게 딸려온 진드기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근거도 없이 말 못 하는 고양이 탓으로 몰아가는 것, 그것도 약한 존재에 대한 폭력일 수 있다.
알레르기가 있다고 고양이 버리지 말자. 당연히 호흡곤란이나 쇼크 증상이 나타날 정도면 분리시켜야 하는 것이 맞다. 다만 그전에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환기와 청소만 잘해줘도 알레르기 반응이 반은 줄어든다. 오히려 고양이 알레르기 덕에 부지런해질 수 있다.면역력에 좋은 음식들을 챙겨 먹고 고양이방을 따로 두어보자. 물론 귀찮고 힘들 수 있다. 그래도 평생 함께 하려고 데려온 고양이지 않은가. 고양이에게는 내가 세상의 전부라는 걸 잊지 말자.
며칠전, 알레르기 검사 결과 아이에게도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사실은 예상했다. 남편도, 나도 고양이 알레르기를 갖고 있으니까. 이미 유전적으로 75%가 넘는 확률이었다. 임신했을 때가장 두려웠던 것은아이에게 알레르기 반응이 심하게 나타날 가능성이었다. 동물 알레르기 관련 연구를 찾으며 태교를 했다.
아기를 태어나자마자 집안에 고양이 두 마리 이상과 1년 간 지내게 하면 6-7년 후 알레르기 반응은 50% 이상 줄어든다. - 조지아대 의학연구팀(2002), <미국 의사회지>
정말로 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아이를 고양이 두 마리와 별다른 격리 없이 지내게 했다. 다행히 지금까지 알레르기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번 기침 역시 바이러스성 폐렴이 원인이기도 했고. 그런데도 나는 고양이에게 살짝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비록 잠깐이었지만 고양이에게 내적 누명을 씌우고 아이와 잠시라도 떨어뜨려 놓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니.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지금도 누군가는 결혼을, 임신을, 출산을 해서 고양이를 버린다. 좋은 곳에 입양 보낸다고 말하지만 사실 알고 있지 않은가. 그건 그냥 버리는 것이다. 어디에서도 나보다 잘 키워줄 수 없다. 버려진 고양이들은 많은 경우 보호소에서 지내다 10일 후 안락사당한다. 단지 털이 간지럽고 번거로워서 버려지는 것이라면 형벌이 고양이에게 지나치게 과하다. 알레르기 반응이 생겼다면 다른 요인들도 의심해보고 고양이 알레르기로 판명 나더라도 조금만 더 노력해보자. 어느 날 마법처럼 알레르기 반응이 사라지고 얼싸안으며 기뻐할 날이 올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