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볕은 어제 보다 따가웠다. 이제 막 자란 수염 밭을 뽀얀 얼굴살에 부비는 듯한 느낌이다. 산초는 귀찮다는 듯 손사래 쳤다. 산초 손에 검을 쥐여주면 손사래 기운으로 용을 물리칠 기운을 돈키호테는 느꼈다.
잠자리를 털고 부스러기 빵과 수프를 후루룩 들어 마시듯 아침 한 끼를 채운 두 사내는 길을 나섰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행선지를 다 묻고, 웬일인가?”
돈키호테가 되묻자 산초는 간밤에 겪었던 일을 말하며 로시난테를 이끌었다. 오십 걸음쯤 갔을까. 돈키호테는 산초가 쥐고 있던 고삐를 가로채고는 길 옆 수풀에 로시난테를 방치했다.
"나를 공격해 보라!"
두서없는 행동에 산초 눈은 휘둥그레졌다. 뜬금없는 일을 벌이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자신을 공격하라는 말은 처음이었다. 기사를 공격하는 몸종이 어딨느냐며 항변했다. 게다가 자신은 이유 없이 누굴 때려 본 적 없다고 대꾸했다.
"이건 명령이다. 산초! 날 공격해!"
마지못해 산초는 돈키호테에게 돌진했다. 하지만 패대기쳐졌다. 다시 덤비라는 말에 쳐들어갔지만 이번에는 멀찍 감치 내동댕이쳐졌다.
"그렇게 나뒹그러진 기분이 어떠냐! 그런데 산초, 왜 나를 공격했지?"
공격하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는 돈키호테를 쳐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산초는
"그야, 공격하라는 명령을 하셨으니까 대든 거죠"
"산초, 넌 내 명령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인 것이냐?"
로시난테는 산초 머리를 혓바닥으로 핥았고, 돈키호테는 저만치 혼자 가고 있다.
나동러진 상태로 산초는 '나는 명령을 받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하지 못하는 사람인가'라고 자신에게 물었다. 반면에 기사 돈키호테는 누구 명령을 받은 적은 없었다. 간혹 '명예와 정의 앞에서'라는 말을 할 뿐이었다. 이 말은 자신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한 말이라고 생각했지 자신에게 내리는 명령어라곤 생각하진 않았다.
산초 생각은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자신이 처음으로 욕망을 느낀 '기록자 산초'라는 말 앞에 '명예와 정의'와 같은 기사도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본 것과 느낀 것' 즉, '사실과 말'을 남기는 것이 '기록자'인 자신이 앞으로 할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일만큼은 어떤 기사도 자신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할 수 없다는 생각까지 말이다. 산초는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엄청난 보물을 발견한 쾌감이었다.
이 쾌감을 산초는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기사는 '명예와 정의' 앞에 서는 사람이고, 기록자는 '사실과 말'을 남기는 사람이다. 기록은 나 외에는 누구도 내게 명령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든 자기 명령으로 살아야 한다. 가치 있는 삶은 그 명령을 충성하는 것이다' 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