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일스테드(Peter Vilhelm llsted·1861 - 1933) The Open Door. 1912.<출처: imgur.com>
'책을 팔아야 한다'라는 내 말에 지인은 되레 글을 쓰는 일을 매일 하는 것은 어떠냐라고 답했다. 집으로 오는 내내 이 말 뜻을 찾으려고 골몰했다.
가벼운 농담으로 던진 말을 철학적 문답으로 치고 들어온 걸 보면, 당시 내 모습이 다급해 보인 것일까. 지인이 알고 있는 본래 내 모습과는 결이 달라 정신 차리라는 뜻일까. 아니면 분명 뭔가 있다. 하지만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1898 - 1972) 그림 '올라가기와 내려가기 II(1860)' 안에 내가 있어 보였다. 이럴 때 딴짓이 상책이다. 구독 중인 '크레이지 베이스 볼' 매거진이 알맞게 소식 하나를 전한다.
Maurits Cornelis Escher. Ascending & Descending. 1960. <출처: 위키아트>
#투머치일기 #박찬호일기 해시태그를 달았다. 어느 해 두 달여간 바쁜 일정을 마친 박찬호 선수는 '(일정들의) 의미들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의미들을 다시 적는다. 나는 매일 같이 일기를 쓴다. 그 시간이 나의 성장 시간이기도 하다'라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남겼다고 소개하면서 '박찬호'라는 이름 석 자를 우리가 존경하는 까닭은 매 순간 '의미'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요컨대 '승리'라는 결과에 취하면 '배울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이길 수 있었던 과정을 돌아보고 의미를 찾아 기록하는 일은 자기를 스스로 일으켜 세우고 꽤 심한 시련 앞에서는 용기를 자가발전하는 동력으로 쓸 수 있다고 내게 귀띔해 주는 것 같았다.
지인이 내게 한 말은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책을 파는 일을 하면 얼마 정도는 팔릴 것이다. 하지만 책 판매 부수에 따라 매일매일 일희일비(一喜一悲)할 것이 뻔하다. 이것이 취하는 것이고, 글을 써 이롭게 하고 싶은 일의 의미를 나 스스로 저버리는 꼴이라는 말이다. 누구 간섭 없이 자기 힘으로 일을 잘하고 싶은 독자에게 되레 빚을 지는 것이다.
'투머치 토커 박찬호 선수'는 '의미 찾는 일'을 매일 반복하면서 자기 문제를 기록했다. 그 결과 ‘야구의 격’이 달라졌다. ‘문제 해결’을 주제로 그 간 글을 쓴 까닭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일 잘하고 싶은 욕망을 ‘자기 격’을 높이는 데 썼으면 하게 때문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매일 글 쓰는 일'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일이었다.
지인은 이 이치를 내가 깨닫길 바란 것이다. 자기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는 글은 독자가 먼저 알아보고 자기 자리를 내준다. 책은 그렇게 팔리는 것이다. 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