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에집중하라] 학습된 무기력

by 한봉규 PHILIP
Peter Vilhelm llsted(1861 - 1933). Two Of The Artist's Daughters At Liselund.1818. <출처: pinterest>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지난달 강의 한 '문제해결' 과정에 대한 피드백이었다. 긴장감이 살짝 돌았다. 이러쿵저러쿵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화기애애하게 통화를 마쳤다. 하지만 뇌리에 남는 말이 있다. '어렵다고 말한 이가 있는 반면 제대로 잘 배웠다고도 한다'라는 말이다. 이 의견에 특별한 반론은 하지 않았고, '어렵다'라는 부분에 몇 가지 설명은 했다.


'어렵다'라는 말은 '힘에 겹다' '시련이 있다' '이해하기 힘들다'쯤으로 쓴다. 이 중 어떤 것인지를 물으면 대다수 '힘겹다' '시련이 있다' 쪽이다. '문제해결' 과정은 사실 암기 과목이 아닌 탓에 앉아서 밑줄 그으며 듣는 과목은 아니다. '힘겹다'라는 말은 이런 기대가 있을 경우 나타나는 현상이다. 문제해결 과정은 복잡한 사건 배경을 추론하고, 분석하고 문제 정의하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다.


'시련이 있다'라는 입장은 이런 뜻일 거다. 문제해결 과정은 워크숍 형태를 띤다. 동료와 의견을 주고받고, 새로운 지식을 익히고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여기에 사고력은 사례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근육이다. 하지만 근육 운동은 한계에 다다르면 힘이 들고 급기야 체력이 고갈한다.


'시련이 있다'라는 말은 분석을 토대로 해석 내용을 글로 쓰고 발표하고 토론하는 이 네 단계를 반복하는 데서 오는 체력 소진일 확률이 높다. 또한 이 과정을 스트레스로 받으면 만사 귀찮고 뭐든 하기 싫은 이른바 '삐 둘어질 테다' 증상이 행동으로 나타난 결과인 듯 싶다.


하지만 놀라운 점이 있다. 똑같은 조건임에도 힘겨워 하거나 시련을 겪는다고 인식한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이는 사물을 꿰뚫을 듯한 집중력과 호기심을 나타낸다. 심지어 체력이 방전하지도 않고 되레 스트레스를 에너지로 전환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이 두 현상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아니 이 둘 간 차이는 문제는 무엇인가?


어떤 이가 자기 업무를 나열하고 업무 간 인과관계를 따져 보라는 워크숍을 하다 말고 짜증 섞인 말투로 "제 일은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데, 이걸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다른 이는 "이 분석 방법을 신상품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데 한 번 써 봐야겠어요!"라고 말했다.


두 사람 말을 꼬투리 잡아 태도가 어쩌니 밀레니얼 세대가 어쩌니 이러쿵저러쿵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섣부른 판단이다. 실제 워크숍에서 내게 이 말을 한 두 사람 사정 얘기를 듣는 것이 먼저다. 얘기 중 두 사람 말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결정적 이유하나를 찾았다.


먼저 짜증을 낸 사람 얘기다. 이 사람이 속한 팀 구성원은 팀장과 자기가 직접적인 업무 관계라고 했다. 팀 체제에서 이게 뭔 대수인가 싶지만, 그이 말을 들으면 짜증난 까닭이 납득이 된다. 요컨대 이 친구 업무는 팀장이 지시하는 업무 중심으로 일을 한다고 했다.


물론 자기 고유 업무가 있지만 팀장 지시 업무가 우선이다. 주로 관리하고 실행하는 업무이다. 자기 스스로 기획하고 제안하는 업무는 번번이 '다음에 하고 이것 먼저 하자!'라는 말로 묵살당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이 일을 몇 번 겪은 후에는 시키는 일 말고는 자기가 문제를 발견해서 개선하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듯싶다. 요컨대 학습된 무기력 증상이다.


반면에 진취적인 기상을 보인 이가 속한 팀 구성원은 10년 이상 연차 팀장과 7~8년 차 중간 관리자급 팀원, 5년 차 자기 이렇게 3명이라고 했다. 팀장 지시 업무는 중간 관리자급 팀원과 자기가 선별적으로 맡아 처리하고, 간혹 자기에게 기획(안)을 요구하거나 중간 관리자급 팀원이 나서주는 탓에 제법 굵직한 일도 맡아 처리한 경험도 있다고 했다.


일 처리를 하면서 제법 지적도 받고, 못난이 취급도 당하지만 선배 사원과 팀장이 야속하다거나 '꼰대'라고 느끼지는 않는다고 했다. 일을 잘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이 친구가 문제해결 과정에 익힌 방법론을 써 보고 싶었던 까닭 역시 자기 실력을 뽐내고 싶은 것이 속마음이다. 이 친구가 속한 팀은 이 친구에게 비빌 언덕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끔 한 듯 싶었다.


결국 팀장을 잘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점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두 사람이 겪고 있는 있는 일과와 그 성과는 고스란히 기업 몫이다. 요컨대 기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말하려는 것이다. 이때문에 팀장을 나무라고 그가 리더십이 부족한 인물이라는 평은 온당치 않다. 인물평을 하면 팀장은 되레 자신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탓한다. 그럼 문제는 도돌이표이다. 해결(안)을 찾을 수 없고 감정이 상한다. 그럼 더 큰 문제다. 또한 짜증이 난 이 태도를 문제 삼는 것 역시 바른 해법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자기가 속한 팀이 회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역할은 무엇이고, 무엇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것부터다. 그다음이 이 일을 우리 팀이 하기 위해서 필요한 지원 받을 사항과 규모·한계·범위를 정한다. 두 가지 이 일이 순조로울 때 팀장은 비로소 팀원과 대화 수준을 결정할 수 있다. 이 대화에서 팀장은 업무 권한과 분류, 보고와 책임을 명토 박을 수 있다.


여기까지 어떤 문제도 발견할 수 없다면, 이는 이 회사 의사결정 방식이 문제다. 요컨대 팀장 일을 적시적소에 할 수 있는 사람에게 팀장 자리를 내준 것이 아닌 회사 입장을 잘 대변하고 성실하게 따르는 이의 적은 이에게 팀장 직책을 맡긴 의사결정 방식이 문제일 것이라는 것은 합리적이다. 구조적 문제 대부분은 실은 이 점으로 귀결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짜증이 난 이는 문제해결 과정이 버거웠을 것이다. 이는 그 친구 자기 탓이 아니다. 이런 과정을 겪고 있는 자기에 대한 분노라고 나는 생각한다. 회사 의사결정 방식이 낳은 보이지 않는 참사다.


그이에게 여기 쓴 이 말을 전할 길은 없다. 하지만 똑똑한 친구인 만큼 자기 일을 스스로 잘 개척해 나갈 것이다. 자기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문제를 스스로 잘 해결하는 힘과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구조적인 문제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말고 되레 팀장에게 질문하고 자기가 만족할 만한 답변을 들을 때까지 대화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이는 팀장을 위한 일이라기 보다 학습된 무기력 증에 빠진 자기를 구원하는 일이고, 스스로 자기를 키우고 일구는 큰 일이기 때문이다. 2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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