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에집중하라] 프라이팬을 움직이는 속도

by 한봉규 PHILIP
Peter Vilhelm Ilsted. The Dining Room. 1887. <출처: pinterest>




밥때를 놓치면 한 상 잘 차려 먹는 일이 귀찮다. 그렇다고 야식을 당겨먹기도 애매하다. 이럴 때 분식 집 메뉴는 한 끼 후딱 해결하는 데 제격이다. 만두잡채 덮밥을 주문했고 수저를 꺼내 차리는 순간 밑반찬이 쏜살같이 나온다. 예전과는 다른 속도이다. 잠시 후 음식이 내 앞에 놓인다. 단골이라고 양이 후했다.



잡채와 함께 양상추·청양고추 이 조합을 어떻게 조리했는지 양념은 애피타이저 마냥 입맛을 깨웠고, 텁텁한 녹말 성분인 당면 맛은 양상추를 씹을 때 터져 나온 즙이 잡는다. 마지막 이게 압권이다. 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썰어 넣은 청양고추가 입안 기름기를 알싸한 맛으로 바꿔 준다. 여기에 만두와 밥을 곁들이면 이도 저도 아니었을 저녁 한 끼를 제대로 잘 대접받은 기분이 난다. 몇 수저만 뜨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내가 된다.



자주 찾는 집이기에 주인장과 인사를 나누기는 했어도 의자를 끌고 와 한 팔 즘 거리에 앉아 얘기하기는 처음이다. 그럴 수 있겠거니 했지만 주인은 내 마음과는 달랐는지 방금 일 마치고 퇴근한 직원을 두고 흉 보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흉이라고 하기에는 하소연에 가깝다.


얘기인즉 약속한 근무시간은 밤 9시 반까지이고, 9시까지 마지막 주문을 받는다고 했다. 그다음이 홀 청소라는 것이다. 한데 8시 반이면 청소는 끝나있고 마지막 주문이 들어올 기미가 없으면 옷가지를 챙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서야 반찬이 이전과 다르게 쏜살같이 나온 까닭을 알았다.



주인은 '사람 부리기가 너무 힘들다'라고 말했다. 사장인 자기가 이래라저래라 하면 직원을 못 믿느냐고 되레 쏘아붙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해진 일 외에는 쳐다보지도 않고, 구석구석 청소를 하라고 하면 시늉만 낼 뿐이라고 했다. '고용 계약서 쓸 때 업무 범위와 한계를 규정짓지 않았느냐'라는 말은 마음속으로만 했다. 주인장에게 이치는 지금 중요하지 않다. 들어주는 위로가 필요한 상황인 줄은 알겠는 데, 하필 그 일을 내가 맡은 걸까.



얘기는 밥을 다 먹은 후에도 계속이다. 한데 재밌는 사실 하나를 알았다. 주인은 지지리 말 안 듣는 주방장을 내쫓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결정적 이유 하나를 알려줬다. 요컨대 분식 집 특성상 손님이 몰리는 점심 또는 저녁때 음식 주문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조리 방식이 다른 여러 음식을 동시에 처리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음식이 '볶음 요리'라는 것이다. 프라이팬을 달군 후 시작하는 볶음 요리는 제일 먼저 시작해야 나머지 음식과 시간 맞춰 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좋은 기름을 쓰는 여건도 중하지만 가장 핵심 역량은 프라이팬을 다루는 기술이라고 했다. 이 지점에서 나는 눈이 땡그래졌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일까.



프라이팬을 다루는 속도와 정교함이 뛰어난 주방장 요리 맛은 일품이라고 했다. 한 번은 그게 뭐 대수인가 싶었는데 겪어보고 나서야 터득한 진리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서야 당면·양상추·청양고추 조합이 내는 신묘한 맛이 프라이팬을 다루는 기술, 정확히는 속도에 있음을 알았다. 여기서 얘기 듣는 것을 마칠 수 없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궁금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만두를 빚는 분 손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시간 안에 200 ~ 300개 만두를 빚고 쌓고 찌는 이 과정을 중국에서 건너 온 이 분만큼 고르게 터짐 없이 게다가 예쁘게 만드는 이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어떠냐는 질문에 주인장은 만두 속 터지는 소리라고 일갈했다.



분식 집을 나설 때 주인장 얼굴 컨디션은 좋아 보였다. 환했고 웃음소리도 생생했다. 한 끼 식사 때우려고 들어간 식당에서 들은 얘기치고 밑줄 쳐 둘 만한 부분도 있다.

프라이팬에 음식물을 넣고 볶는 기술 말이다.


프라이팬을 다루는 손놀림이 빠르기 때문에 음식물이 처지거나 엉키지 않는다. 양념 역시 골고루 알맞게 스며들 곳으로 찾아 들어가는 기술이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식감이 예술이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 아닌가 싶다. 이런 말 너무 오버 아니냐라고 힐난할는지 모르겠지만, 동네 분식 집 수준이 이 정도이면 안 되는 것인가. 물론 음식 외 사정은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음식 맛만큼은 내가 핀잔을 줄 수 있고, 칭찬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분식 집 직원이 주인과 약속한 시간 보다 서둘러 일을 마치고 줄행랑치듯 퇴근하는 이유를 나는 잘 모른다. 자기만큼 볶음 요리를 잘하는 주방장 만날 수 있겠느냐 라며 배짱부리는 것일 수도 있다. 만두 빚는 분 역시 그럴 수 있다. 홀 서빙하는 분도 뭔가 있을 것이다. 직원 말도 들어봐야 속 사정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내 일이 아니다. 주인과 직원 간 문제이다.


하지만 프라이팬을 다루는 속도 차이가 맛 온도를 결정하고, 여러 개 음식을 동시에 조리할 때 볶음 요리를 제대로 해 내는 주방장이 분식 집 생산성을 결정한다는 말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성격이 복잡한 일을 처리할 때 무엇부터 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대부분 중요한 일 혹은 다급한 일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일을 막 시작했을 때 일 처리에 필요한 기술이 숙련되어 있지 않았다면 중요한 일이건 다급한 일이건 해도 마뜩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식재료가 자기 고유성을 잃지 않고 더불어 맛있는 맛을 내는 음식은 분명 특별하다. 이 맛 결정을 프라이팬을 다루는 기술 숙련도가 결정한다고 하면, 요컨대 일을 스스로 잘하고 싶은 이가 새겨 주었으면 하는 부분이다. 일 처리를 할 때 혹은 해결에 집중해야 하는 시점에 갖춰야 할 핵심 기술은 무엇이고, 어떻게 숙련해야 할까를 먼저 따져 물었으면 하는 점이다.



그나저나 즐겨 먹는 만두잡채 덮밥 맛을 결정하는 핵심 기술이 프라이팬을 다루는 손놀림, 속도라는 사실이 신통방통한 한 끼였다. 2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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