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MIRO]에서 근심과 걱정을 털다

by 한봉규 PHILIP

미로에 빠졌다고 느낀 것을 곰곰이 되짚어 봤다. 무엇 때문일까 하고 말이다. 두 편 글을 쓰고 한 이틀 글 쓰기를 멈췄고, 지금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시간'이었다. 내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쓰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미치자 답답한 마음이 '미로에 빠졌다'라고 읊조렸고, 그 갑갑함이 이 글을 시작한 배경이었다.


24시간은 공평하고 공정하다. 이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공평하고 공정한 시간을 탓하려는 것도 아니다. 솔직한 심경으로 토로하면 시간 아낀다고 내린 결정이 되레 내 발목을 잡는 일이 최근 들어 많아졌다. '미안하다' '송구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한편으로 혹자는 '겸손하다'라고 호평을 하곤 하지만, 그 말을 낸 다음 나 자신은 초라했다. 내가 어쩌다 그런 실수를 했을까라는 말로 자책을 하자 눈을 뜨니 미로였던 것이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동안 있었던 내 일 몇몇을 정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내 결정으로 미로 속에서 미로를 보았다는 은유를 하마터면 허풍 떤 셈으로 만들 뻔한 일을 되새김질 중이다. 평소 의사결정과 관련한 내 지론은 망설이지 말자였다. 이 의지는 타인이 나를 꽤 스마트한 사람으로 봐 주는 데 한 몫을 했다. 하지만 내가 놓친 한 부분이 있다.


그동안 나는 일 시작과 끝 모두를 내가 책임졌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골라하면 그만이었다. 한데 지금은 엄연한 파트너 십이 있고, 이 팀에서 사안을 결정해야 할 입장에 서 있다는 점을 너무 늦게 깨닫는 중이다. 이를테면 리더십이 어눌한 상태에서 큰 자리에 앉은 꼴이었다. 시장 흐름을 읽는 것이 더뎠고, 고객 욕구 파악에는 무뎠다. 자연스럽게 내 결정에 확신이 들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다. 미로 속에 빠졌다고 말한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불현듯 한 창 때 두려움 없이 일을 쳐냈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내 모습을 향수 삼아 자위하려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때 그렇게 거침없이 일을 할 수 있었던 환경을 따져 봤다. 한 가지 실마리를 찾았다. 당시 일을 신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팀 내 선배와 팀 리더로부터 얻은 신뢰와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그동안 모르고 내 잘난척하기에 급급한 점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능력자였다기 보다 능력 있는 팀을 만나 내가 활개 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내 자리를 돌아보고 있다. 내가 할 일은 파트너 십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우리 팀이 활개를 칠 수 있도록 내가 이제 그 환경이 되어야 한다. 이 일을 내 사명으로 담금질해야 한다. 우연히 능력 있는 팀을 만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팀 파트너 십을 젊고 신나고 의미 있는 매듭 짓는 일은 내가 발휘해야 할 리더십이다. 내가 잊은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이 생각을 지금에서야 한다. 공교롭게도 미로 속에서 미로를 걷어낼 수 있는 힘을 다시 얻는 셈이다.


미로에서 근심과 걱정을 털어내니 홀가분하다. 미로에서 미로를 보다라는 은유는 여전히 새로운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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