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에집중하라] 화성 행궁(華城 行宮)

by 한봉규 PHILIP
김기철화백.일탐.화성탐.jpg 김기철 화백. 갤러리루벤.


수원 '화성(華城)'은 대문이 4개다. 장안문(長安門)과 팔달문(八達門)은 직선으로 통한다. 동서로는 창룡문(蒼龍門)과 화서문(華西門)이 있다. 4대문이 모두 옹성을 두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반월 형태인 옹성은 외부 침략으로부터 내부 침입을 지연시킨다. 옹성에 적을 가둬 섬멸하기도 한다.


일본 시가 현(滋賀県) 히 코네 시(彦根市)에는 '히코네 성(彦根城·ひこねじょう)'이 있다. 지역 주민들은 히코네 성을 '항복하지 않은 성'으로 기억하고 있다. 100년 전쟁을 치르던 시절에도 불타 없어지지 않은 점을 들어 '운빨이 센' 성으로 부른다. 히코네 성 안으로 들어가려면 지그재그로 설계한 길을 만난다. 진입로 양쪽 벽면에는 벽돌 한 장 크기의 구멍이 군데군데 뚫려 있다. 성 안으로 진입하는 적을 사살하던 조총 구멍이다.


그 안쪽 히코네 성도 미로다. 반면에 수원 화성은 4대문을 통과하면 화성 행궁이다. 미로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유현준 교수는 귄터 니치케 건축 이론을 들어 이를 설명했다. 니치케는 땅덩어리가 크면 시간거리를 줄이는 건축이 발달하고, 일본처럼 좁은 땅에서는 진입로를 지그재그 하게 설계함으로써 시간을 지연시켜 공간을 심리적으로 크게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시간거리는 건축 합리성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그렇다면 시간거리 개념을 문제해결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문제해결 활동 후에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상황·문제 제기·문제 정의·해결(안 ) 순서를 따르는 것이다. 이 방식은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보고받는 상사가 제법 긴 시간을 앉아 들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보고서 분량이 대체로 많고 설명을 귀담아듣지 않으면 어떻게 결론에 도달했는지 아리송할 때도 있다.


반면에 결론(문제)을 제시하고 결론에 이른 근거와 해결(안) 순서로 보고하는 방식이다. 보고서 분량은 상대적으로 적다. 얇은 촉감을 느낄 수 있다. 이 방식은 상사가 의사결정해야 할 사안 중심이다. 보고 받는 시간 부담도 덜하고 효율적이다. 하지만 이 방식이 낯선 상사는 무례한 보고로 오해하기도 한다. 앞뒤 설명 없이 결론부터 들이미는 것을 무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건축물은 공간을 시간거리 촉감으로 설계하듯 상사는 보고서 분량 촉감으로 시간거리를 재는 듯하다.


그렇다면 좁은 땅덩어리 위에 지은 수원 화성. 장안문과 팔달문을 일직선상에 놓은 것은 어떤 시간거리 개념일까. 설계자인 정약용의 기개일까 아니면 화성이 들어설 공간이 워낙 커서 축성 반대론자들에게는 비교적 작게 보이려는 혜안일까.


하기야 130헥타르(ha · 393,250평)는 당시로선 전무후무한 땅 면적이었을 것이다. 4천6백 보를 기준한 둘레가 5천3백 보로 늘어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시간거리 개념이 서양보다 한발 앞선 정조의 치적인 셈이다. 근대 건축물 효시로 삼아도 문제될 것 없다. 1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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