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에집중하라] 케이크를 먼저 줘야하는 '의무'

by 한봉규 PHILIP


일요일 아침 빵집은 평일 보다 분주하다. 근처 교회를 다니러 온 사람 때문도 이유겠지만, 헐레벌떡 올랐던 출근길에서 내려와 느긋한 한때를 보내고 싶은 이도 있어 그런듯 하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바게트 샌드위치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팔뚝만 한 것이 저녁까지 너끈히 버틸 수 있겠구나 싶어 집어 들었다. 담지 않으면 서운한 단팥빵과 치즈볼을 들고 계산대 앞 줄을 섰다. 내 앞과 뒤로는 한두 명이다. 하지만 줄이 점점 길어지는 모양새를 눈치챈 직원 하나가 그 옆 계산대를 열었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곧 내 차례니 대수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뒤에 선 이도 그냥 있는 듯했다.


그때부터 였을까. 지금 막 빵집 안으로 들어서는 이가 방금 연 계산대 앞으로 가서는 케이크를 받아 가고 있었다. 두서너 명이 케이크를 받아 가는 동안 내가 서 있는 줄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계산대를 봤더니 꽤 많은 수의 빵 하나하나를 직원 혼자 비닐봉지에 넣고 있었다. 시간 걸리겠군 싶어 옆 계산대로 이동했다.


"저기 줄 서 있는 걸 보면 이쪽 계산대로 오라고 안내를 해줘야죠?”라고 말했다. "네, 죄송합니다. 케이크 예약하신 분이 갑자기 오셔서요"라고 할 줄 알았다. 직원은 "케이크를 미리 주문하신 분이고 저는 그분들에게 케이크를 먼저 줄 의무가 있습니다"라는 것이다. "의무라고요?" "네!" "저기 서 있는 줄을 봐요. 여기로 오라고 계산대 연 거 아닌가요?"라고 말했지만, 직원은 자기는 의무를 다할 뿐이라는 투다. 더는 말을 놓기가 어려웠다. '감정 노동자를 존중해 주세요'라는 안내판을 쪼개고, '고객 감정도 존중해 주세요'라고 바꿔 놓고 싶었다.


이치를 따지는 것이 불가능했다. 직원이 내뱉은 '의무'라는 말 다음을 이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의무'라는 한 마디 말을 목 넘기기가 힘들었다. '예약한 분을 먼저 줘야 할 의무'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한 것일까. 애초에 계산대 하나 더 연 까닭을 묻는 내 모습이 지적질로 느낀 것일까. '케이크를 먼저 줘야 할 의무'라는 응답은 이 맥락에서 적절한가 해서 하는 말이다. 잠깐 동안 정신이 혼미했다.


행여 '죄송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듣고 싶은 내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한 서운함일까. '아, 네~ 오래 기다리셨죠. 지금 바로 해 드릴게요'라는 말을 기대하면 안 되는 일을 지금 내가 한 것인가도 싶었다. 꼴랑 빵 몇 개 사는 이는 직원에게 볼멘소리를 하면 안 되는 규정을 내가 어긴 것일까. 내가 당황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어떤 생각으로 '의무'라는 말을 한 것인지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죽는 날까지도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케이크를 먼저 줘야 할 의무'라, 일요일 아침 빵집에서 나는 빵을 고르고 계산하는 대가로 직원 의무를 존중해야 하는 책임을 져야 빵 한 조각을 먹을 수 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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