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에집중하라] 자기에게 나쁜 계획은 없다

by 한봉규 PHILIP


일탐.계획탐.jpg 조미진 작가. 2019. facebook.com/mijin1203


요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계획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면 가는 길마다 꽃길이다'라고 말이다. 이 얘기는 몇 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결에_집중하라 출간을 앞두고 출판 기획을 십여 년 한 동창을 만났다. 책 마케팅은 생소한 탓에 그에게 팁을 얻을 요량이었다.


그는 내게 대뜸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대학 당시 친일 문화 잔재를 찾으러 여름 방학 동안 운동화가 해지도록 누볐던 얘기를 엮은 책이라고 했다. 나는 네가 이런 일을 했었느냐 놀라운 표정을 짓자, 소싯적 일이라며 멋쩍어 한다. 얘기는 자연스레 출판 기획 일을 하며 명성을 떨쳤던 한 시절 방점을 찍고 지금 시크릿하우스를 창업한 일에 다다랐다.


녀석 얘기는 흥미로웠다. 경제경영서를 고집했던 출판을 SF 소설 쪽으로 개척해 보고 싶다는 것이다. 순간 동공이 커진 것이 보였고, 귀를 쫑긋 세운 내 표정을 알아챘는지 점심 식사 따위가 지금 중요하냐라는 투였다. 얘기인즉슨 SF 소설은 국내에선 개척이 덜 된 분야라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이 분야에 도전하는 젊은 작가 몇몇이 눈에 띄었고, 필력 좋은 중견 작가 000도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그로부터 20여 분 동안 나는 녀석이 쏟아내는 새로운 도전과 포부를 듣고 있었다. 한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되레 신선했다. 무모함도 느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깨달았다. 계획 있는 자가 퍼붓는 말은 미세먼지를 걷어내는 공기청정기 같다는 것을 말이다. 이와 결이 다른 얘기도 있다. 다른 동창을 만난 후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 고됐다. 술이 과해 그런가 싶었는데, 몸 보다 정신이 더 지쳐 힘들었다. 그때는 그러려니 했었다.


하지만 계획을 얘기 주제 삼은 녀석을 만나고 나서야 그때 고단한 까닭을 알았다. 술을 겸한 동창 모임은 서로 알고 있는 허물 그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기-승-전-부동산으로 이어지는 대화는 슬펐고, 애처롭고 한탄이 가득했다. 위로하며 한 잔, 위안 삼으며 잔을 높이 들고 더는 올라가지 않는 술잔은 꺾어 마실 수밖에. 아, 삶이 그런 것이지 하며 다음 생을 기약하는 일이 전부였다.


집 안으로 들어왔고, 나는 이 문을 열고 내일 또 나가야 한다. 누군가를 만날 것이고 얘기를 주고받을 것이다. 수다 삼매경은 스트레스 해소에는 제격이지만, 나를 만나고 돌아가는 저 이 어깨춤이 춤을 추듯 들썩들썩이려면 '부동산'보다는 '무모한 계획'일지라도 그 얘기 듣기를 청하고 내 계획을 말할 양이면 다소 들뜬 목소리여도 괜찮겠구나 싶다.


오늘 후배가 내 안부를 묻길래 때도 좋고 해서 2020년 계획은 무엇인가 물었고, 여차여차 내년에는 쉼표 있는 삶을 꾸린다고 하길래 '좋은 계획이다' 맞짱 구를 쳤다. 내 계획을 묻길래 여러 사람 만날 때마다 계획 듣기를 청할 것이고, 자기에게만큼은 나쁜 계획이란 없으니 계획 세우는 일에 주눅 들지 말고, 무모하다 탓하는 이가 있어도 없는 것보다 훨씬 나은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내 계획이라고 알렸다.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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