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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봉규 PHILIP Dec 09. 2020

[H갤러리] 구광모 작가

December · 12월 8일 · STORY

구광모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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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컬렉션, STORY



몇 해 전 패기 있게 시작한 일이 있다. 학위 논문 쓰는 일이었는데 1년 후에 휴학을 했다.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바가 아니라 내가 쓰고 싶은 주제 논문을 쓸 수 없다는 좌절감이 컸던 것 같다. 그대로 학교 생활을 마무리 지어야겠다 싶을 때 '졸업은 해라!'라는 말에 끌려 다시 복학을 했다.


논문 통계 과목이 신세계였다. 통계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야 한다는 말씀이 내 호기심을 끌었었다. 한데 통계 과제를 처리하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육아와 일을 양립하는 모든 분 심정을 그때 조금 알았던 것 같다. 그 해 두 학기 모두 통계에 쏟아부었다. 그다음 해 후배가 논문 통계 관련해 골 머리를 앓고 있길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금세 해결했다. 한데 후배보다 내가 더 놀랐다. 머리 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야 한다는 말이 이런 경우로구나 싶었다. 그 뒤로 후배 입소문을 탔는지 논문 통계를 짬짬이 봐주는 재미가 생겼다.


연구과제를 남기고 코로나 팬데믹 현상이 발생했다. 지난 통계 학기를 경험한 터라 심정적으로 버티려고는 했지만 양상은 예측 불가였다. 일과 연구과제 두 마리 토끼 잡기는 애초에 불가한 일이었다. 억지를 쓴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유레카를 외칠만한 아이디어마저도 자가격리 중인 듯했다. 그때마다 교수 님은 재촉함이 없이 포기하지만 말라 이르셨다. 그때마다 내가 그 일을 잘할 것이라고 무한 신뢰를 쏴 준 이도 있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부끄러움이 많은 과제를 제출했다. 교수 님은 여전히 논문은 마무리 지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게 보내 주셨다. 그 말씀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매년 고비 때마다 나타나서는 동아줄을 내려 주고 사라진 이도 떠 오른다. 내 삶이 견실하게 여기에 도착하고 다음 역으로 출발할 채비 시간을 마련해 준 것은 부는 바람도 내려 쬐는 햇빛도 쏜살같이 달려든 소낙비마저도 보잘것없는 나를 사랑으로 품어 준 덕분이다. 그 말 말고는 지금 내 후련함을 설명할 다른 말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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