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태 작가
바람이 지나간 자리, 얼마큼 아팠으면 다섯 손가락 모두가 붉다.
푸른 이를 악물고 참고 견딘 날이 얼마나 오래였으면, 바람이 머문 자리마다 황금빛이다.
떠난 자리 머문 자리 모두 절정이다. 그 절정 당신에게도 있다.
아차! 당신은 없고, 사과나무가 그 자리에 뿌릴 내렸지!
한 달 두 달 지나도 사과 알이 부쩍부쩍 크지 않아 속상한,
반 년쯤 어느 날 열 엿새째 달이 떠오른 날!
사과 한 알이 열렸다.
'스쳐가는 사물과 세계에 사유와 명상을 전한다'는 ‘말과 글’ 시리즈.
말은 글에 의존하고, 글은 말에 영양분을 주며,
서로를 안고 빨고 사는 힘이 중력이고 사과는 그 오브제라는데,
당신과 나 사이, 말의 여운은 사라지고 글은 바스락 소리도 나지 않는다.
사유와 명상은 아프고, 중력은 멈췄다. 남은 것이 없다.
아차! 당신이 남긴 것이 있지
나를 아껴준 시간 흔적이 오브제가 된 사과 한 알과
있는 모습 그대로를 탐하는 애틋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