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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컬렉션. 인연.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1898 - 1972) 그림을 연상했다. 사다리 때문이었다. 공간을 다룬다는 점은 비슷하다. 에셔 그림은 현란한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 이를 두고 공간 확장이라고도 하고 무한 반복하는 삶을 질타하기도 한다. 다른 세계를 만나는 방식이라고도 한다. 제레미 작품에서 이런 의미도 찾을 수 있을 테지만 그저 내 안 세계와 내 밖 세계만을 뚜렷하게 구분했을 뿐이다. 안에서 밖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이 사다리였던 것이 에셔와 다른 점이다. 에셔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그것은 모르겠다. 이런 어릿한 비교로는 제레미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여러 번 보고 자주 본다. 그때마다 깊이 본다. 도대체 이 작가는 무엇을 본 것일까 묻기도 한다. 돌아오는 답변은 없다. 그럼 다시 묻는다 어떤 기억을 떠 올린 것일까라고 말이다. 사다리 타고 올라오라 해서 마음으로 계단 하나씩 밟고 올랐다. 땅 위에서 점점 높아질 때마다 주변 풍경은 새로웠다. 빛이 내 앞에 있으니 아니꼽고 더러운 일들로부터 벗어났다. 사다리 하나를 다 오르자 바깥세상 풍경 몇 개는 다 잊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작해도 될 것 같았다. 이 속 사정이 나와는 다르겠지만 제레미 역시 사다리를 오르면서 내 마음을 안아주고 살펴주는 희망의 빛만큼은 꺼트릴 수 없다 했을 것이다. 비록 현재 내 삶은 Containers 라 할지라도 매일매일 새로운 빛을 일궈 나를 맞이하는 이 영감 얻는 일만큼 귀하고 소중한 것이 없다며 다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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