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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일기

#5.내가 찜한 신 <헤파이스토스>

뭉클 찜 <신화의 미술관> 읽기 미션

by 책한엄마

책을 좋아하지만 사놓기만 할 뿐 읽지를 않는다. 책을 드는 건 우아한 전업주부에겐 사치다.

커피 마시는 것도 아니꼬운 땡전 한 푼 못 버는 백수 주제에 소 키우듯 아이를 키우는 게 내 지상 사명 아니던가.

책을 펴기 전에 싸우는 초등학생 두 자매가 있다.

수학 학원에 가기 싫으면서 받아 올림을 못하는 1학년 딸.

사춘기 초입에 진입했는지 신경질적인 말투로 내 신경을 유리 긁는 소리같이 긁어대는 첫째 딸.

그리고 내년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도 기저귀를 차고 기저귀가 없으면 꼭 바지를 입은 채로만 볼 일을 보는 골치 아픈 막내가 있다.


이럴 때는 다른 사람 도움을 받는 게 좋다. 억지라도 읽자. 그런 마음으로 #뭉클 찜 을 신청했다.

뭉클 찜은 매일 일정 분량을 읽고 사진으로 인증을 하는 시스템이다.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보고 있자니 나도 계속 읽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온다. 잊을 수가 없다. 하루 5분이면 신화 인물에 대해 읽을 수 있다. 이에 대한 인상 깊은 구절과 관련 사진을 나름 고심해서 찍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술의 신 헤로도토스 / 술 좋아하는 남편 생일날

이 책과 같이 읽는 책은 <로마인 이야기>다. 북클럽 문학동네보다 더 오랜 기간 몸 담았던 개나리 문학당에서 같이 읽는 책이다. 이 책 속에서 로마인들이 그리스인들의 지성을 부러워하며 그들이 숭배하는 신들을 자신들에게 이입하는 과정을 보게 된다. 이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정치 공동체가 되는지 그 근원을 알고 싶으면 바로 이 신화 인물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이 책은 신화를 깊이 얘기한 게 아니다. 기독교가 주체가 됐던 서유럽 사회에서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신화다. 그렇기에 기독교인이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이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유기적인 독서가 바로 이게 아닌가 싶다. 비록 나 스스로 하는 독서는 아니지만 인연이 되어 온 책들이 이렇게 의미가 있는 것도 내 운명에 뭔가를 알리고 싶어 하는 것 아닐까?


어제 나는 둘째 딸을 엄청 혼냈다. 내 남편은 첫째 딸을 혼냈고 오늘 출근길에도 아이가 상처 받았을 까 봐 걱정하며 나섰다. 둘째는 매일 가르쳐 주는 수학을 왜 이렇게 못하는 걸까. 한 문제 푸는 데 5분 이상 걸리는 이유가 뭘까? 왜 5+6을 손가락을 이용해서 풀어야만 할까? 참다 참다 폭발했다. 첫째는 별 일 아닌 걸로 둘째에게 시비를 걸고 빈정거리며 놀리는 걸까. 왜 억울하다고 소리 내어 울어야 하는 걸까. 그것도 칠판에 손톱 긁는 소리를 내면서. 지긋지긋하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을 때 나는 내가 찜한 신이라는 헤파가 토스를 만났다.


헤파이토스: 불의신으로 못 만드는 게 없는 불과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토스는 헤라가 혼자 낳은 아이다. 제우스가 혼자 낳은 자식을 질투해서 낳았다고 한다. 낳아놓고 보니 너무 못생겼다고. 이들은 자신들이 낳은 이 신을 구박하고 하늘에서 추방한다. 내가 고른 사진은 바로 헤라와 제우스가 가차 없이 자신이 낳은 자식인 헤파이토스를 발로 밟아서 하늘에서 땅으로 내팽개치는 그림이다. 왜 그랬을까? 내가 육아의 혼란 속에 있지 않았다면 나는 이 매정한 헤라와 제우스를 비난했을 것이다. 근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제우스와 헤라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오히려 이 그림이 내 어떤 부분을 해소해 주는 것 같다. 신조차도 자신이 가진 자식을 이렇게 대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럼에도 헤파이토스는 불을 만들고 예술품에 가까운 무기를 만들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내를 두고 있지 않은가. 물론 다리를 절고 얼굴도 형편없고 아내조차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긴 하지만. 참으로 이렇게 인간적인 신들이라니.


어쩌면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신들은 다 우리 인간들 마음속에 들어있는 마음을 집약하는 방식이 아닌가 싶다. 옳지 않은 것이라는 경계가 신에게는 없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좋은 점이 있다면 안 좋은 점도 있다. 이렇게 좋음과 나쁨을 셈하면 결국 그들은 0, 즉 무에 수렴한다.


그래. 결국 그렇다. 우린 아무것도 아니다. 신들 또한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말이다. 행하지 않고 계속 없음으로 무료하게 지내는 것보다 만들고 후회하고 그럼에도 나아가는 그런 수고로움이 더 인생을 재미나게 만드는 것 아닌가 싶다. 이왕에 태어났으니 재밌게 지내보자.


내 아이들을 사랑한다. 그렇지만 가끔 헤파이토스를 구박하는 못된 헤라와 제우스가 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미안한 짓을 하지 말라고 빈정댄다. 한 번 해보라지. 그 당시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원하고 원망하고 또 사랑한다. 계속 그렇게 인생은 지속된다.

자기 이불에서 멀리 굴러가 잠 든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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