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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일기

#7.2021년을 열기 전 읽은 책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by 책한엄마

5년 전부터 활동하던 휘경 어린이 도서관 안 <개나리 문학당> 독서회 회원님 중 작가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셔서 리터러시 법인 <함께 책 읽기>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전국 독서 동아리를 운영하는 사서님, 간사님, 선생님 그리고 나와 같은 평범한 가정주부까지 다양한 분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같이 읽기 한 작품은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이란 책이었다. 매일 일정 부분을 읽고 마치 수강생이 된 것처럼 꾸준히 인증 글을 올려주신 선생님들. 안타깝게도 난 세상일 때문인지 마음속에 엉킨 실타래 때문인지 모임 안에 참여도 글을 읽을 수도 없었다. 비단 나만 그렇진 않을 텐데 너무 유난 떠는 건가 싶기도 하다.

band에 있는 같이 읽기

<zoom>을 이용해 모임을 하기 전에 70%가량을 읽고 그 이후 나머지 부분을 읽었다.

이 책을 읽어 나가기 위해 세 가지 장애물을 헤치고 나가야 한다.


처음, 이 책은 일본 단카이 세대라는 공통점을 가진 중년들이 써 내려간 자서전이다. 이들은 대제국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했을 때 태어나 버블 경제에서 찬란한 청춘을 보낸 이들이다. 우리가 기뻐하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절을 이들은 눈물이 앞을 가리며 패망 선언하는 날로 묘사가 된다. 전쟁에 이기기를 바라며 허리띠를 조이는 부모를 보고 자란 어렸던 그들 시각을 보고 있자면 반일 사상으로 물든 내 굳은 머리를 많이 풀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책을 넘기기 쉽지 않다. 물론 자서전 쓰기라는 기술적인 면만 바라보겠다는 굳은 의지로 이 예시 문을 쉽게 넘길 대한민국 국민이 많으리라고 생각하긴 쉽지 않다.


둘째, 이는 요즘 한국 중년에게도 볼 수 있는 ‘라떼 시절’(옛날 찬란한 추억)을 잘 참고 들어야 한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일본이나 한국 전쟁이 끝난 후 베이비붐 세대는 취업이 쉬웠다. 이들은 대학에 들어간 후 각종 사회 운동이나 다른 취미 생활을 해도 아주 쉽게 대기업에 들어가고 또 발전하는 기업에서 별 어려움 없이 퇴직 때까지 회사에 다닐 수 있었다. 이들이 박힌 돌처럼 나가지 않고 거품이 낀 경제가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세대에서는 어떤 차별화된 교육을 받고 더 유능하더라도 자신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자리에 들어가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이는 한국보다 일본이 더 심각하다는 건 팩트다.


마지막으로 자서전을 쓰는 이들은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한 일본 국내에서는 상위 계층 사람들이 쓴 글이란 사실이다. 잘 읽어보면 이들은 부유할 뿐 아니라 현실 또한 감정적으로도 매우 안정적인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인상 깊은 내용이어 봤자 부모가 쓴 전쟁 체험기나 이혼 관련 이야기다.


이혼 또한 경제력이 받쳐 주어야 가능하다. 이혼한 여성들은 남편에 대해 판에 박힌 글을 쓴다. 이게 일본인들 돌려 감정 말하지 않기 방식인가 보다. 아이 육아를 잘 도와줬지만 나와 헤어졌다. 가끔 연락을 하고 이제 나는 그를 용서했다. 이런 내용이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이보다는 더 감정적으로 요동치고 공감할만한 내용이 나오지 않았을까? 공장에서 찍어 박힌 것 같은 그런 돌려 말하기 언사를 가지고 밤을 새우고 썼다니 그만큼 개개인의 자신만이 가진 세상은 그만큼 소중하고 무게가 묵직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나마 감정적 요동이 느껴진 부분은 저자가 제일 앞에서 얘기한 무조건 의대에 가라고 압박했던 어머니에게 반항한 청소년 시기를 회상한 글이 다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반일 감정을 너머서 한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일본인으로서 인간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만들 수 있었다. 일본인과 한국인의 차이는 내가 결정하고 판단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자서전을 쓴 사람은 하필 전쟁 후 일본에서 태어난 것이고 나는 반대로 일본 식민지배에서 헤어 나온 반으로 잘린 한국에서 태어난 차이밖에 없다. 시간과 공간이 다르다는 차이 하나로 우리는 이렇게 매우 상반된 감정으로 같은 이벤트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를 피부로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출판사 홍보 팸플릿

솔직히 나는 내가 사회를 향해 국가를 향해 최소한 가정을 내 힘으로, 의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나는 영향력이 있고 능력이 있다는 착각을 했던 것이다. 근데 저자가 보여주는 수강생들이 쓴 자서전을 보니 오히려 세상은 내 의지와 욕망보다는 우연과 순간이 만들어 낸 선택에 따라 많은 삶이 바뀐다는 걸 깨달았다. 이들 또한 오랜 기간 원하는 꿈이 있었고 하고 싶은 게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우연히 찾아온 행운을 꼭 잡고 세상이 가진 변화에 대해 인정하고 이해하면서 비로소 불안 속에 행복을 찾음을 깨달았다. 많은 분이 쓴 자서전을 보면서 특별하지 않아도 씀으로 인해서 내 삶이 정리되고 주변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걸 제대로 알게 됐다.


이 책을 읽어보니 작가들 또한 이런 자서전 형식으로 책을 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실제로 쓴 개인적 자서전이 공감과 울림을 준다면 뛰어난 편집자 눈에 띄어 출판될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http://aladin.kr/p/BbRUr

유시민 작가의 <나의 한국 현대사>라는 책이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책 속 편집자 출신 수강생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한 장 안에 일본 사회 역사와 자신 역사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다는 걸 보고 바로 이 책이 떠올랐다. 유시민 작가는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한국 현대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어떻게 개인과 국가 역사가 만났는지 쉽고 편한 문체로 얘기해 준다. 사실 사놓고 얼마 안 읽었는데 다시 도전해 봐야겠다. 또 이 이야기에 이어 내 책 일기에 한 면을 만들어 줄 수 있을 듯하다. 누가 알겠는가 나 또한 내 역사와 국가가 만나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순간이 올지.


http://aladin.kr/p/QND5b

엄마가 쓴 전쟁 체험 일기에 어린 시절 기억을 섞어 이야기한 수강자 글을 보고 떠오른 책도 있다. 심지어 이건 읽기 쉬운 만화로 만들어졌다. <나의 어머니 이야기>가 바로 그 책이다. 예전에 초판으로 사라지려 한 책이었는데 김영하 작가의 인플루언셜 마케팅을 통해 다시 살아났다. 올케 어머니께 선물한 책이었는데 우연히 동생 집에서 만나 가져왔다. 이번에 읽어보겠다고 하고 내 집에 가지고 왔다. 이 책 또한 읽어봐야지. 내 개인적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도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기준이 무얼까에 대한 눈을 가지고 읽어보려고 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어느 누구도 혼자 삶을 지탱할 수 없다. 나조차도 태어나면서 옷을 입고 교육을 받고 삶을 살아나가며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 타인과 사회 영향을 안 받은 부분은 전혀 없다고 본다. 멍청하게도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사회에서 특이하고 다르고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나마 나와 닮은 책을 좋아하고 그 책을 좋아하는 모임을 찾아다니는 사람들과 모여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마음 맞는 좋은 분들과 같은 책을 읽고 책을 매개로 개인의 삶을 연결해 얘기를 나눴다. 알겠는가. 이번 팬데믹으로 고독을 강요받고 있는 현실. 여기에서 조차 우리는 연결이 필요하다. 그것이 책이 될 수 있고 글이 될 수 있고 내 삶을 돌아보는 정리가 될 수 있다. 결국 나는 누구보다 평범한 사람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지극히 보통인 사람.



이번 <개나리 문학당>에서 리더를 맡게 되었다. 앞선 분들이 정말 열정적이고 열심히 책임을 다 해 임해주셨기에 나같이 회피하고 최소한 일을 겨우 해 내는 사람이 잘해 낼 수 있을지 정말 걱정에 걱정이 된다.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할 작정이다. 나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다. 내 역사를 쓰는 마음으로, 또 우리 문학회에 든든한 기둥 하나를 더 얹는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새해 새로운 직책을 받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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