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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일기

밤이 어둡지 않은 이유는?

최은영 작가의 첫 장편 <밝은 밤>을 읽고

by 책한엄마

많은 사람들이 같이 읽으면 좋은 책을 추천하는 대회. 비블리오 배틀. 나는 이 대회에서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를 추천했다. 우주에 대한 이야기. 예전 몽상가 같은 칼 세이건의 어조가 아닌 현실과 이상을 적절히 조화시킨 아내 앤 세이건의 목소리가 참 좋았다. 왜 우주였는지 모르겠다. 별이라는 건 혼자 보기엔 처량 맞다. 그냥 누군가와 같이 보고 같이 얘기 나눠보고 싶은 게 바로 하늘에 별을 보는 일이다.


그래서였을까? 아주 옛날 썼던 단편 알퐁스 도데의 <별>은 아직까지도 읽힐 뿐만 아니라 머리 색깔도 생각도 말도 다른. 먼 나라 이야기건만 정말 내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우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아인슈타인을 양자역학을 알게 되며 이미 이루어진 게 아닌 어쩌면 우연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이 세상에 대해 그런 이야기를 했다지 않은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이제껏 출간된 최은영 작가 책을 다 읽었다. 훌륭한 단편들이었다. 육상으로 치면 단거리 선수로서 탁월함을 자랑했다고 할 수 있다. 과연 그녀의 장편은 어떨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조용히 그 작품을 기다렸다. 조용히 코로나 가운데 여름 열대야를 뚫고 나온 책이 바로 이 책, <밝은 밤>이다. 밤이 왜 밝지? 설마 가을을 그리며 밝은 색 먹는 밤을 말하는 건가 싶었다. 제목이 무엇인지 잊어버릴 만큼 나는 내 이름과 비슷한 책 속 주인공이 되어 소설 안을 떠돌아다녔다. 책을 덮고 나서야 제목이 다시 보였다. 끝으로 가는 밤에 대한 이야기지만 절대 어둡지 않은 해피엔딩. 그걸 작가가 얘기하고 싶었구나. 이해할 수 있었다.


주인공은 천문학자다. 우연히 점성학을 공부했다. 점 치는 별자리를 넘어서 실제 행성들에 대해 궁금하던 차에 천문학 관련 책을 뒤 적대로 있을 때였다. 카시니였던가. 그 사람은 점성 학자였으나 루이 14세의 은혜를 입어 천문학자로서 굉장한 업적을 세운다. 그를 기려 카시니호란 우주선이 있을 정도다. 점성학으로 별을 만나서인지 나와 별은 이상하게도 '운명'과 맞닿아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만난 것 자체가 주인공의 사명이 아닌가 싶었다. 주인공과 내 이름이 모음 하나만 다를 정도로 비슷한데 영국에서 만난 파키스탄 출신 과일가게 아저씨가 내 한국 이름을 알려줬더니 힌디어로 내 이름이 '운명'이라는 뜻이라고 알려줬다. 파파고가 파키스탄어 적용이 되지 않아 확인할 길은 없다. 그렇듯 이 책은 내게 읽어야만 할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가가 이 글이 어떻게 써질지 몰랐다고 얘기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믿는다. 이 소설은 아마도 나와야 할 운명이었고 최은영 작가라는 존재를 통해 태어나는 인연을 맺은 게 아니었을까.


이 책은 놀랍도록 평범하다. 계속 등장하는 인물 모두 내 인간관계 어딘가에 존재할만한 사람이다. 증조모에서부터 지금까지 일어나는 거대한 시대라는 소용돌이 속에 무력하게 무너진 그 상황 또한 황당하지 않다. 내 친구나 내 지척은 아니지만 친구의 엄마나, 친정엄마의 동창 가족이 겪을 수도 있는 두 관계만 넘어가면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굳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스의 소설이 자꾸 겹쳐 보였다. 그 작가 또한 평범한 사건들을 깊이 뇌리에 남기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작가다. 의외로 인물이 겪는 일에 대한 탄탄한 구성력은 최은영 작가님이 이긴다. 한국 근현대사가 그만큼 평화롭지 못하고 이때 사람이 제정신일 수 없는 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단지 가족의 자살, 학대, 먼 곳에서 전쟁을 다녀온 트라우마 등에 비교할 수 없는 건 1950년 한국 전쟁을 지나 정신없이 성장하고 아픔을 꾹꾹 누르는 데 익숙한 국민성 때문 아닐까.


이 소설 속 주요 서사 인물은 다 여성들이다. 남성은 가끔 아빠의 분노나 이혼한 남편의 과거 정도로만 비친다. 4대에 걸친 여성들의 이야기다. 읽는 나도, 이 책을 쓴 작가님도, 또 주요 등장인물들도 여자이니 읽기 편하다. 진정한 자유라고나 할까. 이성이라는 존재에게 잘 보이기 위한 페르소나를 벗어던지고 화장기 없이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된 느낌. 그래서 더 이 책에 애착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4대, 백여 년의 시대를 타고 내려온 모녀 관계는 참으로 복잡 다단하다. 전에 작가가 <쇼코의 미소>에서 보여줬던 다른 공간에서 자라온 우정의 긴장처럼, 다른 시대를 살아온 닮은 네 여성이 설명할 수 없는 팽팽한 감정선을 소설이라는 공간에서 글만으로 충분히 표현해 줄 수 있었다. 아, 내가 부족해서 더 이상의 표현이 불가능하다.



이 책을 읽은 나와 예전의 나는 조금 달라진 느낌이다. 우주라는 세계를 생각하지 않았던 지구 안에서 우물 안 개구리 나와 우주를 알게 된 내 생각이 완전히 바뀐 것처럼. 어쩌면 한동안 해 질 녘이 되면 우연히 할머니를 만났던 주인공 지연이의 설렜던 그 마음을, 우연히 강아지를 만났다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 씁쓸함이 떠오를 듯하다. 최은영 작가의 짧은 대화도 좋고 이렇게 긴 이야기보따리도 좋다. 빨리 최은영 작가를 통과해 또 나와야 하는 운명을 지닌 이야기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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