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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한엄마 Nov 14. 2022

#8.끝과 시작에 대하여

40대 철학으로 '변'해 다시 '태'어나는 아줌마 이야기

자기 생각대로 상대를 재단하며 상대에게 내 주장을 강요하지 말 것. 상대방에게서 생각을 끌어내 대화하게 할 것. 아렌트는 이익 추구가 삶의 목적인 듯 여겨지는 세상에서 ‘좋은 삶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게 한 철학자였다. (처음 읽는 서양철학사,88%)     

들어가며    

 

 이제까지 학자들을 따라 내 이야기를 같이 넣어 진짜 공부 같은 글쓰기를 진행했다. 마지막이다. 그러니 꾀가 난다. 그냥 뒤의 학자들은 뒤로하고 그냥 내 이야기만 하고 싶다. 현대를 살아간 현대 철학자들을 볼 차례다.


 자연스럽게 철학자와 내 이야기를 섞으려고 욕심을 부린 이 이야기는 결국 이제 끝이 났다. 일단은 생각 난 대로 쓰기. 그래, 이런 자유를 마지막에는 느껴보자.


 한나 아렌트는 전쟁 후의 국가와 개인을 한 몸으로 생각하면서 개인의 다른 생각을 밟아버리는 사회에 대해 일침을 남긴다. 토론을 통한 다양한 의견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하버마스, 광기 또한 사회의 하나로 생각해야 한다는 푸코, 반증이 가능하기에 미신보다 과학이 의미가 있다는 포퍼 이후에는 끊임없는 배움을 강조한 가다머.이들이 현대를 대표하는 현대 철학자들이라 할 수 있다.  

   

1.


나는 그렇게 마흔이 되었고 서양 철학자들은 현대를 살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세계 전쟁을 인생을 통해 관통한 철학자다. 전쟁은 인간에게 종말과 다름없는 고통을 주지 않았을까 한다.


성경에서는 계속 이 시대가 말세라고 말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그 말세라는 종말의 세상이 이미 2천 년 전의 일이다. 진짜 마지막은 도대체 언제일 것인가? 아마도 2조 년 정도가 우리 정석 시대이고 2천 년은 정말 뒷부분이라 뒤로 몇천 년이 더 남은 뒷부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이 시기는 이미 2천 년 전 아니, 1천몇백 년 전에 끝났던 게 아닐까? 아니, Y2K로 떠들썩했던 AD2000년에 이미 세상은 끝났던 게 아닐까?

 우리는 이미 끝난 세계에서 끝이 안 났다고 착각하면서 이상한 가상 공간에서 이게 진짜라고 생각하며 사는 게 아닐까? 그러니 그 이후의 내 결혼도, 내 예전 뱃속에서 끝난 아기들도 지금 커 가고 있는 딸 세 명도 다 가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얘기를 친정엄마에게 얘기하니 오들오들 떠시면서 말했다.


“아서라! 얘!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누군가에게는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어떤 사람에게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되어 버린다.     


2.     


 이 세상이 진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독서모임의 치열한 토론을 통해서다. 하버마스처럼 토론을 통해 내 철학적 사유를 넓혀 나간 것이다.


 나이 든 부모님에게 자식의 죽음을 알려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였다. 의외로 대부분 사람들이 얼마 생이 남지 않은 부모님에게 사실에 대한 괴로움을 겪게 하느니 선의의 거짓말로 자식이 살아있다는 걸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모든 것을 솔직하고 정직하고 사실 그대로 알아서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그 의견에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3.     


 푸코는 광기 또한 그 시대를 읽는 한 가지 수단일 수 있다고 했다. 나체가 원래 인정되지 않지만 공공 목욕탕 안에서는 인정되는 것처럼 말이다.

 현실에서 보이는 것과 진짜 내부 사정이 다른 상황은 정말 많이 일어났다. 시한부를 받고 그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것. 실제로 늙은 어미에게 삼촌의 부고를 10년째 알리지 않는 친구네. 마지막으로 행복한 척 정상인 척하면서 속으로 곪아가는 쇼윈도 가족들.

그런 많은 모습들을 보면서 과연 진실은 좋은 것일까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사실 이 철학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주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복잡한 상황이 되어갈수록 그들 이야기에 대한 변주곡이 난해하게 반복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떤 학자는 그의 정신 질환을 언론이나 다른 보이지 않는 권력이 그를 부당하게 포장하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아니, 착각이 아니고 진실일 수도 있다. 아니, 이 의견조차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4.     


 포퍼는 ‘열린 사회’는 비판이 불가능한 ‘닫힌 사회’의 반댓말로 인간의 불완전성 때문에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모든 상황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난 닫힌 한국 사회에서 나가 잠시 영국으로 가면서 모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경험했다. 뒤늦게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야 그들이 프리메이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던 정답고 친절했던 이웃들을 겪었다. 또한 미개한 인종차별주의 유럽인들이 생각보다 꽤 있다는 걸 영국 일상생활을 통해 알게 되었다. (물론 훌륭한 사람이 더 많았다.)


 더 나아가 한국이라는 현실에 돌아온 2020년, 비현실적인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내 비현실적인 삶은 계속되어가고 있다.     


5.


 끊임없는 배움을 강조하는 가디머는 소크라테스의 질문과 같은 발전적 질문을 통한 성장을 강조한 사람이다. 처음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으로 돌아간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이들의 사상은 결국 초반과 다르지 않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다만 그들의 사상은 그들이 통과한 현실에 따라 언어가 달라진 것뿐이다.

 심지어 혼란기의 철학 사상은 난해하고 복잡했다. 이들의 사상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동양 사상에 대해 서양식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결국 서양 학자만으로 공부하는 철학은 반도 알지 못하는 것 아닐까?      


나가며     


 마지막 이 글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고 썼다. 정말 솔직한 내 요즘 생각을 펼쳐봤다. 조금 더 고친 이 글 또한 다시 달라질 예정이다. 나는 과거의 서양 철학에 시작해서 최근의 철학자로 왔고 다시 나는 내 지역, 동양의 철학자, 사상가를 찾으며 다시 공부를 시작해 보려 한다. 끝은 다시 시작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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