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와 고양이 :동상이몽

전단지가 떼어진 자리_집으로 돌아간 고양이는 행복했을까?

by 책한엄마
졸혼입니다. 마음대로 사세요.

조정위원의 말이었다. 조정조서는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 그러나 ‘졸혼’은 법률용어가 아니다.


아이들을 돌보고 셋째를 재우다가 같이 잠이 들었다. 잠 깬 시간은 새벽1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이미 불편한 이 집보다 편히 잘 수 있는 내 공간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겨울 애린 바람이 아침이 오기까지 그 공간에서 버티는 시간보다 나았다. 내가 선택한 공간에서의 자유가 더 소중했다.


그렇게 나선 길. 나무마다 검은 패딩을 입은 의문의 사람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가 내 시선을 느끼자 서둘러 다른 나무로 향해 움직였다. 그가 있었던 나무에 가니 붙어있은 지 얼마 안 된 고양이를 찾는 전단지가 있었다. 아, 이 고양이의 주인이 저 분이시구나. 고양이를 아직 찾고 계시구나.


이 전단지는 예전부터 붙여져 있었다. 경비 아저씨가 떼면 또 붙여져 있었다. 마치 예전 10년 넘게 봤던 ‘송혜희’양 실종 전단지가 떠올랐다. 그 전단지는 십 년이 넘도록 같은 자리에 붙어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때 내게 내 조용한 이혼을 이해하지 못하는 언니는 이 전단지 고양이를 보며 본인 고양이를 떠올렸다. 전단지 고양이와 언니의 고양이 종이 같기 때문이다.


빨리 찾아서 주인 품에 돌아갔음 좋겠다. 추운데 고양이가 무슨 고생이야.

나는 그 얘기에 묘한 반발심이 들었다. 난 요즘 길에서 길고양이들을 자주 만난다. 신기한 건 길고양이들 표정이 살아있다. 보통 고양이는 집 안에만 있어야 한다며 고양이를 산책시키는 주인을 비난하는 글도 봤기에 고양이들이 길에서 느끼는 행복함이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다.

누군가를 찾고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도 의미가 있지만 집이 아닌 길을 선택하는 마음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로부터 일주일 지난 어제 또 다시 아이들을 돌보고 숙소에 가는 길에 흥분과 함께 들뜬 음성으로 통화를 하는 두 중학생 남자 아이들을 보았다. 그들은 일주일 새 다 전단지가 없어지고 딱 한 장 남은 전단지 앞에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저기, 고양이 주인이시죠? 고양이 본 거 같아요. 지하철 쪽에서 마트 사이에서 봤는데요.

발견 위치와 전단지 주인 주소는 불과 500m 거리였다. 고양이는 역시 멀리 가지는 않았다. 결국 주인은 고양이를 찾게 되었구나 생각하며 내 갈 길을 갔다.


오늘, 문득 다시 중학생 아이들이 있던 자리에 서서 다시 고양이 전단지를 봐라 보았다. 우린 너무 당연하게 주인 입장에서만 고양이를 바라본 거 아닐까? 어쩌면 고양이는 그 외부 세계가 더 행복한 아니었을까?

나 또한 방 4개의 여유로운 공간이 있는 집보다 비좁지만 진정한 내 공간에 가서야 진정하게 쉴 수 있다. 그 와중에 전단지 고양이와 똑 같은 종을 키우는 언니의 성당 대모님 이기도 하고 친구인 분을 만났다.


“어디 가세요?”


“에구, 하필 성당에서 부부 관계 회복 모임 행사에 가. 이 행사 보니 네가 생각나더라. 이런 모임에 갔으면 지금이랑 다르지 않았을까?”


날 생각하는 그 진심이 그대로 전해졌다. 나도 진심을 다 해 답했다.

아니요. 전혀 요.

나는 이미 다른 집으로 가는 중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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