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이 이혼 사유일 수도 있지만 결혼 유지 사유일 수도 있다.
재판상 이혼 사유 중 직계 존속(시댁, 처가)의 부당한 대우가 당당히 요건에 들어가 있다. 그만큼 부부 당사자의 유 책이 아닌 각자 가족이 행한 부당한 행위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나는 그 반대다. 내가 왜 일찍 이혼을 결심하지 않았을까 반추해보니 그 중심엔 시아버지 가족들이 단단히 자리잡고 있었다. 시아버지는 소송 상대방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췌장암 진단을 받고 몇 년 후 돌아가셨다.
내가 27살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한 건 전남편을 아버지같이 돌봐 주셨던 시할아버지가 노환으로 많이 편찮으셨기 때문이다. 그 분의 소원이 손자의 결혼을 보고 싶어 하셨다. 30대 중반이었던 사촌형은 여자친구가 없었고 당시 나는 7년째 만나고 있는 중이었다. 결혼할 당사자는 입사하고 나 또한 구직 중이지만 상대가 전업주부를 원하고 있어 결혼을 안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우린 결혼을 하고 시조부모님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신혼을 시작했다.
20대 철없는 새댁이라 그런지 나는 시조부모님 집에 놀러가는 게 재밌었다. 처음에 그 집에 누가 오시는지 어떤 관계인지도 모른 채 넙죽 인사하고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시할아버지는 결혼 두 달 후에 돌아가시고 시할머니와 매주 만나 만담을 펼쳤다. 시할머니의 한국 전쟁 때 이야기 돌아가신 시아버지 어렸을 때 이야기를 들으며 밥 같이 먹고 요리를 나눠 먹으며 9년이란 시간을 같이 보냈다.
그러면서 자주 왕래하는 시할머니의 딸인 두 고모님과 친해졌다. 돈이라는 냉정한 삶의 요소 때문에 고모님과 내 가족이 멀어지고 왕래를 하지 못한 게 5년 정도 되었다. 다행이 고모님의 외손자와 내 셋째딸이 같은 반이 되면서 작년 다시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그때 학기가 끝나며
우리 다시 만날 일이 없겠네.
라 고 말씀하셨다. 내 이혼 소식을 듣고 고모님이 같이 식사를 하자고 말씀하셨다.
모두 다 이혼 생각은 한 번씩 해. 다시 생각해 보면 안 되겠냐?
따뜻한 밥 한 끼. 말과 다르지만 온전히 나를 이해하는 느낌. 그래도 고모는 뻔한 얘기로 시작하셨다.
정말 그렇다. 셋째 우정 반 친구 어머니도 내 이혼 얘기에 진짜 협의 이혼 접수까지 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친한 이웃도 이혼 서류에 이름을 적었다는 경험담도 털어놓았다. 같은 반 부모님은 실제 별거까지 간 적도 있다고 하셨다. 모두 그 오랜 동고동락으로 쌓인 연민으로 다시 결혼이 굴레로 돌아갔다.
근데 나는 오히려 반대였다. 내가 17년 긴 결혼생활을 버틴 힘은 결혼 제도 주인공인 상대방이 아니었다. 9년 동안 오갔던 비록 만나지는 못했지만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가족들이었다. 그분들이 아버지 없이 사춘기 시절을 보낸 조카인 상대와 내 아이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나에까지 와 닿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로 묶였던 결속대신 그분들이 남기고 간 재산만이 남았다. 그 재산은 사랑이 아니라 섭섭함과 원망으로 대체되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결혼 유지에 대한 이유를 상실했고, 그 다음 자녀 양육에 매달렸다. 비로소 배우자라는 존재를 봤을 때 견딜 수 없었다. 나는 결혼을 상대방이 아닌 시아버지의 가족들과 했던 것 같다.
고모님, 저 제 결혼은 시조부모님 덕분에 즐겁게 했던 것 같아요. 이젠 졸업이에요. 이제 가족 일원으로 고모님이 아닌 제가 좋아하는 어른으로 만나요.
이렇게 인사를 하고 서로 안아주며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족과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참을 수 없이 괴로운 배우자 가족이 있는가 하면 배우자를 견딜만한 좋은 시댁도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내 결혼이 인생 실패로 보일지 몰라도 좋은 사람을 건진 뜻깊은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