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올리언스
1. 모든 순간을 여행으로 만들어간 여행
몇 주 전부터 계획해 온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 여행을 드디어 떠난다. 나는 사만다와 같은 수업을 듣는 학교 친구였는데, 몇 번의 만남만에 그녀의 고향 친구들과도 친해졌다. 그리고 3월의 어느 날, 다섯 명이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무려 아침 6시 40분에 다섯 명이 만나 출발한 여행은 시작부터 시끌벅적했다. 케이팝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친구들은 흥겹게 미국 팝과 한국 팝을 번갈아 틀며 드라이브를 더욱 신명나게 만들었다. 운전하는 친구 메리가 흥을 주체하지 못해 핸들을 잡고 몸을 흔들 때면 뒷자리에 앉은 내가 속으로 조금 긴장이 될 정도였다.
중간에 와플하우스에서 아침식사를 마친 후 더욱 씩씩하고 신나게 뉴올리언스로 향했다. 조금 더 남부로 향한 만큼 야자수가 많이 보였고 조금 더 따뜻한 날씨가 피부로 느껴졌다. 뉴올리언스 수족관에서 본격적으로 여행 일정을 시작했고 이후 소울 가득한 재즈음악이 여기저기 자유로운 영혼처럼 흘러퍼지는 거리를 걸었다. 연한 청색 멜빵 바지를 입은 아저씨가 기타 연주를 하고, 색소폰과 트럼본과 오보에를 연주하는 닮은꼴 청년들의 연주가 이어지고, 각종 자유로운 그림들이 길가에 전시되어있는 거리였다. 그런 거리를 느릿느릿 호기심 가득하게 걸었다.
뉴올리언스는 특색 있는 음식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점심시간을 맞춰 우리는 뉴올리언스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약간의 웨이팅을 기분 좋게 거친 후, 밝은 초록색 정장에 진한 초록색 나비넥타이로 옷을 맞춰 입은 웨이터가 우리를 자리로 안내했다. 각자 먹고 싶은 걸 자유롭게 골랐고 나는 친구들의 추천과 내 마음이 이끌리는 쉬림프 앤 그릿츠를 먹었다. 그땐 몰랐다. 친구들이 '그 음식'을 시켰을 줄은. 음식 하나가 더 나왔는데, 치킨너겟과 똑 닮은 비주얼의 음식이 레몬 데코레이션과 파슬리가 뿌려져 소스와 같이 나왔다.
진짜, Crocodile?
친구들은 이 튀김이 악어라고 했고, 뉴올리언스에선 악어고기를 먹는다고 했다. 헉, 살다살다 악어를 먹게 될 줄이야. 악어와의 조우도 몇 번 없는데. 머뭇거리는 내게 친구들은 치킨 맛이 난다고 했다. 과연 먹어보니 치킨 맛이 났고, 미각에 예리한 내 입맛에는 끝에 살짝 생선살 먹는 느낌이 났다. 친구들은 내게 새로운 경험을 하도록 도와주었고 나 역시 그 경험에 기분 좋게 응했다. 호주에서 랍아저씨가 권한 캥거루 스테이크는 실패였지만, 1년 후 미국에서 친구들이 권한 악어 튀김은 그럭저럭 성공이었다. 아, 물론 찾아서 먹을 일은 없겠지만 뭔가 여행 중 접하는 음식에 있어 하나의 산을 넘은 느낌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뉴올리언스 거리를 자유롭게 걸어다녔다. 점심으로만 끝을 내면 아쉬우니 우린 유명한 카페를 찾아가기로 했다. 뉴올리언즈에서 베니에(Beignet)라는 디저트가 유명한데, 특히 유명하다던 카페 'Cafe du Monde'가 있었다. 유명하다는 걸 우리만 알리는 없다. 꼭 먹고 싶었지만 줄이 길어 우린 할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이렇게 베니에를 먹지 못하는 건가. 그럴리가.
이 여행을 계획했던 친구 메리는 이 날 저녁 깜짝 선물로 베니에를 직접 만들어주었다. 메리가 베니에 밀키트를 마트에서 사 와 직접 선봐주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뉴올리언스 출신인 메리는 이걸 먹지 않으면 이 여행이 무척 아쉬울 거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베니에 쿠킹 클래스. 우리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직접 만들어먹으니 이 음식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요리를 하며 내게 더 많은 걸 보여주려고 했던 친구들과도 더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유명하다던 노천 카페에 앉아 먹지 못하면 어떤가. 이보다 더 솔직하고 재미있는 친구들과 쿠킹 클래스를 가졌는데. 처음 맛 본 베니에는 달콤하고 바삭거렸다. 뉴올리언즈는 미시시피 매디슨의 어느 부엌에서 비로소 끝이 났다. 참, 베니에를 먹은 후 소화시키러 로쉘 집에 가서 탁구까지 치고 나서야 긴 하루가 비로소 끝이 났다고 해야 더욱 정확할 것이다.
2. 스치듯 들었던 음악을 몸이 기억하는 여행
어디론가 여행을 가고 싶다고 이야기한 사람은 나였지만, 실제로 이 여행을 계획해 준 사람은 친구들이었다. 미시시피 지역을 벗어난 곳으로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말한 내게 친구들은 뉴올리언스를 이야기했고, 우리의 여행은 3월 말 토요일로 정해졌다. 친구들에게도 익숙한 도시는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 긴장한 듯 보였지만 친구들의 계획과 안내는 최고였다. 아침 6시에 집을 나서 오후 6시에 돌아온 여행이었는데, 차 안에서와 새로운 지역에서 보냈던 12시간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던 하루였다.
뉴올리언스에서의 풍경을 다시 떠올려본다. 재즈의 발상지답게 어디서든 흘러나왔던 재즈 음악은 오후 햇살이 깊어질수록 같이 깊어졌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한없이 그 곳에서 음악을 듣고 싶었다. 걷는 길에 테라스가 있는 낮은 건물이 있었고 어김없이 그 곳에는 국기나 식물이 걸려 있었다. 길 가다가 갈색 말과 흰색 말이 이끄는 마차를 만나는 등 예상치 못한 풍경과의 조우가 독특한 인상을 건네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뉴올리언스를 만났다. 그곳이 아닌 이곳에서. 뉴올리언스 여행 후 3년이 지났던 어느 날 한국 일상에서, 라디오를 듣다가 갑자기 내 눈앞에 뉴올리언스가 펼쳐졌다. 레이 찰스 음악이었다. 듣는 순간 갑자기 뉴올리언스였다. 아마도 그때 여행 중에 스쳐지나가며 들었던 것 같다. 지나가다가, 문득, 나도 모르게, 누군지도 모르지만, 잠시 멈춰섰을 수도. 그렇게 뉴올리언스를 거닐며 들었을지도 모르는 음악이었던 것 같다. 알아보니 레이 찰스는 실제로 조지아주 올버니 출신의 뮤지션이었다. 그런데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그의 음악이 누군가의 리듬과 박자를 거쳐 내게 뉴올리언스에서 들렸던 것, 그것에 내게 의미있다. 그때 나는 그를 몰랐지만 그의 음악은 내 어딘가에 남아있었다. 그래서 내게 그는 뉴올리언스다. 가끔씩 그 곳이 그리울 때면 그의 음악을 듣는다. 이후로 조금 더 재즈와 친해진 지금, 그 곳에 다시 가면 어떤 감상이 더해질까. 아는 만큼 보이지만 때론 보이는 만큼 알게 된다. 아니, 들은 만큼 느끼지만 때론 느끼는 만큼 듣게 된다. 미리 살짝 맛보았던 그 곳의 재즈 풍경을 떠올리며.
덧1. 그의 음악 중 <New Orleans>라는 곡이 있다.
덧2. 내가 다시 듣고 이거다 싶었던 곡은 <What I'd Say> 였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