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마음과 피부, 그리고 파라다이스

미국, 올랜도

by 여행작가 Q

1. 두근거리는 마음과 불타오르는 피부를 만났던 여행


미국 교환학생 기간 중 봄방학을 맞아 떠난 플로리다 올랜도 여행. 빨간색 자동차를 렌트하고 10시간 넘게 거의 쉬지 않고 미국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올랜도 여행은 사실 그 자체로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 여행을 기억하는 또 하나의 강렬한 인상은 나의 피부였다. 나의 불타오르는 피부. 발단은 이랬다. 여행을 가기 전 우리는 강한 플로리다의 햇살에 대비하기 위해 돈을 모아 월마트에서 대형 선크림을 하나 구매했다. 본인이 가져온 선크림은 각자 얼굴에 바르고, 공동 선크림은 햇볕이 닿는 몸 부위에 아낌없이 바르기로 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가는 날 선크림을 듬뿍 짜서 팔과 다리에 꼼꼼히 발랐다. 고마운 선크림아, 햇빛으로부터 내 피부를 지켜줘.


아침 일찍 개장하기 전부터 유니버설 스튜디오 문 앞에서 줄 서서 기다렸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쉬지 않고 15분을 달려서 해리포터 테마파크에 도착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허공과 지상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았다. 얼마만의 놀이공원인지, 한 시간 줄 서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기다려서 기어코 라이딩을 했고, 물 위를 움직이는 통나무배 익스프레스, 자이로드롭, 360도를 도는 롤러코스터도 신나게 탔다. 문을 닫을 때쯤 되었을 때 비로소 정신이 들었는데, 내 피부에서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느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어쨌든 저녁에 그 일이 벌어졌다.


피부가 이상했다. 다들 내게 얼굴이 너무 빨갛다고 했다. 내가 느끼기에도 피부가 뜨겁고 따끔거렸다. 얼굴을 거울로 보는 것이 두려웠을 즈음, 이거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이제 여행은 3일째. 앞으로 4일이 더 남았는데 내 피부 어떡하지. 그것보다 너무 화끈거리고 따가운데 어떡하지. 가져온 알로에 젤을 듬뿍 바르고 냉찜질을 해도 괜찮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울상이 되어서 잠이 들었고 아침을 맞았다. 같이 간 친구들의 제안으로 다음 날 오전에 병원에 다녀오기로 했다. 병원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니 1도 화상이라고 했다. 뒤늦게 여행 후 검색으로 알게 되었지만 선크림에 들어 있는 벤조페논이라는 성분이 내 피부에 치명적이었다.


처방받은 약을 바르고 점심 즈음 디즈니월드에 입성했다. 이렇게 디즈니월드를 만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속으로 허탈했다. 다행히 디즈니월드는 너무 아름답고 멋지고 환상적이어서 조금씩 내 피부의 당김과 아픔을 이성과 감성으로 잊어버리게 되었다. 처음엔 울긋불긋한 피부에 사진을 찍는 것이 두려웠고 우울했지만, 당기는 피부에 지지 않고 최대한 근육을 써서 웃었던 덕에 지금 사진을 보면 디즈니 월드에서의 좋은 추억뿐이다. 그렇게 사진도 잘 찍었고 잘 돌아다니고 즐겁게 여행했다. 피부는 망가졌지만 여행을 망치지는 않았다. 아프다고 해서 여행도 아프진 않았다. 그렇지만 다신 여행 중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2. 꿈과 환상의 도시로 떠나는 여행


10일간 주어진 봄방학에 우리는 플로리다 올랜도로 떠났다. 아울렛에서 쇼핑을 하고, 유니버설 스튜디오 놀이공원에 가고, 디즈니 월드 매직킹덤과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가고, 흰모래사장 사라소타 비치를 갔다. 평소 소비를 잘하지 않는 나였지만 모아둔 돈으로 세 개의 쇼핑을 했는데, 그때 산 제품을 지금도 잘 쓰고 있으니 성공적인 쇼핑이었다. 여행을 갔을 당시에 유니버설 스튜디오 사에서 만든 영화 중 절반을 보지 못했지만 그곳에서 누구보다 재미있게 놀았고, 디즈니에서 만든 캐릭터를 전부 알진 못했지만 선물처럼 만나는 깜짝 퍼레이드와 화룡정점 불꽃놀이엔 마음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새하얀 모래사장의 바닷가에서는 살짝 쌀쌀함이 느껴진 탓에 내가 밟고 있는 것이 모래인지 눈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갑자기 호그와트 학생이 지나가거나 해리포터 책에서 읽었던 장면들이 놀이기구로 재구성되어 있었다. 해리포터 지팡이 가게에서 같이 간 친구가 지목받아 지팡이를 고르고, 목이 마를 땐 입가에 거품을 묻혀가며 버터 맥주를 마셨다. 갑자기 음악소리가 들리고 디즈니 영화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가 한 길로 퍼레이드를 하며 지나가며 손을 흔들고 춤을 춘다. 어디에서나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디즈니 음악이 흘러나오고 어디를 가도 미키마우스 모양 일색이다. 길을 걷다 만화영화 속 캐릭터가 우리 옆을 살포시 지나가기도 한다. 잠시 동화책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이름처럼 매직 킹덤, 마법 왕국이다. 온종일 이 곳에서 시간을 보낸 후 깜깜한 밤에 반짝이는 신데렐라 성 위로 펼쳐지는 형형색색의 긴 불꽃놀이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 곳에서의 하루가 끝이 난다.


하루 온종일 동심 속에 파묻혀 지냈던 때가 언제였던가. 이곳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면서 동시에 어른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아이들이 웃는 얼굴만큼 어른들이 웃는 얼굴이 환했다. 과거에 보았던 만화영화들, 캐릭터들, 이야기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이 곳에서 어느새 커버린 나를 바라보면서 함께하는 시간. 여기에 다녀온 후 디즈니의 영향력을 더욱 깨달을 수 있었다. 봄방학 때 디즈니월드에 간다고 했을 때 미국 친구들이 보여주었던 그 눈빛들, 그리고 내가 여기에서 보였던 눈빛은 비슷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이곳은 어딘가 나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면서 곧장 정이 들었다. 꿈과 환상의 나라로, 환상과 꿈의 도시로. 내가 나이를 먹더라도 언제나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그곳에 있어줄 진정한 파라다이스였다.



DSC06868.JPG 2014, 미국, 올랜도 디즈니월드 매직킹덤 퍼레이드


이전 04화일상을 여행처럼 보냈던 5개월의 소중한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