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
눈 앞에 보이는 이국적인 낭만을 따라가는 여행
내 기억 속의 호주 시드니 여행은 서큘러 키에 도착해 왼쪽으로 뻗어진 길로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된다. 시드니 공항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두자마자 곧바로 나와서 초록색 무료 순환버스를 타고 서큘러 키에 도착했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직장인들 사이로 우리처럼 카메라를 든 여행객이 지나가고 외국 만화영화에서 본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서큘러 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오후로 넘어가는 나른한 햇살에 바닷물이 빛 받아 출렁이는, 나른하고 이국적인 풍경에 어느 순간 들어와 있었다.
한 걸음 더 걸어 들어갈 때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아치형의 하버브릿지가 점점 더 크게 내 눈에 담겼다. 한 걸음 더 내딛을 때마다 나는 짧게 탄성을 내질렀다. 하버브릿지가 보이다가, 이내 책에서 봤던 조개껍데기 형상의 흰 지붕을 한 오페라하우스가 같이 보였다. 걸음을 멈추었을 때는 내가 보고 있는 이 풍경을 두고두고 보고 싶어서 디지털카메라로 셔터를 누를 때뿐이었다. 비슷해 보이는 사진을 나는 다르다고 느끼며 찍고 또 찍었다.
바다 가까운 어느 레스토랑 테라스에 사람들이 모여서 음식을 먹거나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소리가 기분 좋은 소음으로 들려오는 왼쪽의 풍경. 두 손을 위로 든 여자 보컬과 자지러지게 웃는 드럼 치는 남자의 연주를 통과해 자유로운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는 오른쪽의 풍경. 서큘러 키는 자유롭고 나른하고 유쾌한 풍경을 양쪽에서 은은하지만 강렬하게 보여 주었다. '이국적'이라는 말을 오감으로 경험했던 순간이랄까. '여유롭다'는 말을 오감으로 느꼈던 순간이랄까. 둘 다 처음이었다.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셔터를 눌렀던 그곳에서의 시간을 충분히 즐긴 후, 우리는 더 넓은 바다를 보기 위해 본다이 비치로 향했다. 한 시간이나 걸리는 곳일 줄 몰랐지만 이미 버스에 몸을 실은 후였다. 멀어지는 도심을 바라보며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도착하니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다. 막 서핑을 마친 사람들은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동글동글 이어지는 귀여운 조명 길을 걷고 잔디밭에서 사진을 찍고, 낮이었음 선명한 흰색이었을 것 같은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배가 고파진 우리도 고민 끝에 식사할 장소를 찾았다. 먹음직스러운 소시지를 파는 브라질 식당.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었다.
편의점에서 시내로 돌아오는 버스표를 구입한 후 우리의 버스를 기다렸다. 오늘 시드니에 도착해서 서큘러 키를 둘러보고 본다이 비치까지 온다고 수고 많았다며 서로를 토닥였다. 이제 숙소 가서 푹 쉬면 되겠다, 하면서. 그런데 우리의 여행은 결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분명히 탈 때 센트럴 역까지 가는 버스가 맞는지 확인하고 탄 버스인데, 이상하게 직감상 센트럴 역으로 향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던 우리 둘. 뭔가 잘못 탄 것 같아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다가가 물어봤다.
"아저씨, 이 버스 센트럴 역 가는 것 맞나요?"
"아니요."
"네? 아까 이 버스 센트럴 역 간다고 하셨잖아요."
"아, 그런데 이 버스가 아니네."
"네?"
"내가 내리는 데 알려줄 테니, 거기에서 다른 버스 타고 가요. 도착할 때쯤 이야기해줄게요."
내리는 곳을 알려주는 아저씨의 목소리만을 기다렸는데, 갑자기 익숙한 곳에 정차하는 버스. 아니, 여기는! 익숙해도 너무 익숙하다. 우리가 내린 곳은 서큘러 키. 예상치 못하게 다시 도착한 것이다, 오후 내내 우리를 설레게 했던 그곳에. 알고 보니 또 한 번 아저씨는 우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종점까지 와버린 것이었다. 아저씨는 아까 이야기해주겠다는 버스를 여기에서 알려주셨다. 그 메모를 챙겨서 버스 기사 아저씨와 함께 내렸다.
우리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여행이 시작되었다.
밤의 서큘러 키에 다시 도착했다.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이내 우리는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여기를 운명처럼 다시 왔는데, 어떻게 바로 숙소로 돌아가겠는가. 걱정하기에는 이 순간이 너무 멋졌고 비현실적이었다. 오후에 우리에게 멋진 감흥을 느끼게 해 줬던 곳이 밤에 또 빛나고 있었다. 저마다 야경을 보거나 뒤늦은 저녁식사를 하거나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이곳을 둘러싼 저곳의 빌딩에는 불이 많이 켜져 있었다. 밤바람을 맞으며 야경을 눈에 담았다. 이 순간은 사진기보다 눈과 마음에 담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충분히 기억할 만큼 담은 후에 우리는 비로소 이 곳을 떠났다. 다행히 이번에는 아까 버스 기사 아저씨가 종이에 메모를 해주었던 버스를 타고 한 번에 숙소까지 안전하게 도착했다. 그는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밤 풍경을 선물해주었다. 숙소에서 일기를 쓰면서 왜인지 자꾸 웃음이 나왔다.
때론 하나만이 보이는 여행도 있다.
모든 것이 긍정으로 치환되는 여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