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내내 마음을 다한 따뜻함으로

호주, 애들레이드

by 여행작가 Q

새로운 생활에 푹 적셔졌던 여행 : Aussie, Aussie, Aussie!


호주 애들레이드에서의 한 달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창업한 파스타 가게를 운영하는 이탈리아계 이민 2세 아저씨와 필리핀계 이민 1세 아주머니 부부네 집에서 머물렀던 한 달. 공항에서 홈스테이 아저씨를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었을 때부터 느낌이 좋았다. 활짝 웃는 얼굴을 한 랍 아저씨는 언제나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아저씨와 닮은 웃는 얼굴을 한 라니 아주머니는 매일 기분 좋게 요리 솜씨를 뽐내주었다. 또 내가 머무는 방을 자기 방처럼 들락날락하는 귀여운 6살 소녀 안젤리나가 있어 한시도 심심하지 않은 날이었다. 만나자마자 나를 파스타 가게에 데려가 맛있는 파스타를 대접하고, 집에 가는 길 차로 애들레이드를 살짝 드라이브하고, 작은 직통 휴대폰을 건네주며 애들레이드 안에서 언제든 부르면 10분 안에 달려온다고 했던 그들. 언제나 내게 말했다. 호주에서 너의 집은 이곳이라고.


거의 매일 함께 했던 홈스테이 가족과의 긴 저녁 식사가 좋았다. 애들레이드에서는 오후 5시면 상점들이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서, 보편적으로 저녁 시간은 가족과 함께 하는 집에서의 시간이었다. 일터에서 돌아온 라니 아주머니는 장을 봐오거나 냉장고에서 재료들을 꺼내 맛있는 요리를 뚝딱 만들어냈다. 나는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주거나 다 준비된 요리를 식탁에 옮기면서 그녀를 도왔다. 때로는 그들의 첫째 아들 여자 친구인 로렌과 함께 하기도 했다. 얼른 포크를 꺼내오고 싶게 만드는 냄새가 코끝을 찔렀고 언제나 적절하게 조화로운 요리는 매 저녁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가장 기다려졌던 건 그들과 나누는 평범하지만 따뜻한 대화였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었던 그 순간이 참 좋았다. 학교 수업은 어땠는지, 애들레이드 시내 구경은 어땠는지 등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평화로운 하루 일과였다. 그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시츄도 저녁 먹을 때면 발아래에서 어슬렁 걸어 다니거나 누워서 쉬며 우리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저녁 식사는 식탁에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접시를 정리한 후 우리는 식탁 옆에 있는 거실 소파로 자리를 옮겨 작은 유리병에 아이스크림을 담아 앙증맞은 숟가락으로 조금씩 퍼먹으며 이야기를 이어서 나누었다. 어느 날은 TV 화면을 인터넷과 연결해 구글 맵스로 한국과 호주 도시를 서로 설명하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책과 여행을 기록해둔 블로그를 살짝 공개하기도 했으며, 또 어느 날은 그저 마주 보고 학교 생활이나 인생에 대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그들의 감동스러운 추억이 담긴 영상을 같이 봤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막내딸 안젤리나를 임신한 아내 라니의 하루 몇 날, 그다음에는 출산에 들어가기 전 라니, 잠깐의 텀 뒤에 등장하는 꼬꼬마 안젤리나, 그리고 그 아이가 자라는 영상을 조금씩 이어 붙였던 동영상이었다. 랍 아저씨 혼자 만들었다고 한다. 그 영상을 6살이 된 안젤리나와 그들 부부와 함께 보았다. 커버린 여섯 살 안젤리나가 베이비 안젤리나를 보고 "It's me. This baby is me!"라고 외치는 소리를 같이 바라볼 수 있었다. 그들이 종종 본다는 하나뿐인 영상을 같이 보고 감동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들은 그런 가족이었다.


안젤리나와 같이 마당에 있는 트램펄린 위를 방방 뛰며 이 동네를 순간순간 만끽하고, 우연히 라니를 따라 올라간 2층에서 창가 너머로 저 멀리 붉은 노을을 같이 감상하고, 저녁 먹은 후 드라이브해서 애들레이드 언덕을 같이 내려다보거나, 시내에서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던 순간들. 소소한 즐거움이 늘 일상에 스며들어가 있었다. 홈스테이 가정을 벗어난 애들레이드 생활도 평화롭고 여유로웠다. 청량한 공기 덕분에 그늘에 가면 서늘함이 느껴졌지만 뜨거운 햇살에 집 밖을 나서자마자 선글라스를 꼭 껴야 했던 이 곳 날씨. 오전 수업 마치고 야외에서 먹는 도시락 점심식사, 수업 후 학교 교정 나들이 등 일상이 소풍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이 누구든 눈을 마주치고 'Hi', 'Good Morning'이라는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서 내릴 때 기사 아저씨에게 손 들고 'Thank you'라고 말하는 것은 처음엔 조금 어색했어도 이내 내게도 몸에 밴 기분 좋은 습관이었다.


한 달간의 시간이었지만 그 한 달이 오래 기억 남는다. 날씨와, 음식과, 일상이 어우러졌을 때 우리는 행복을 만끽한다. 특히나 좋은 사람들을 만나 그 한 달이 더욱 즐거웠다. 7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겨울이 너무 춥게 느껴질 때면, 그곳에서 느꼈던 정반대의 계절을 떠올려본다.


DSC01104.JPG 2013, 호주 애들레이드 홈스테이 집 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