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순천
온전히 펼쳐져있는 하늘을 마주하고 그저 감탄했던 여행
국내 기차여행을 떠났다. 아침 7시 21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고 순천으로 향했다. 11시 15분에 도착하기까지 먼 길을 가야 했는데, 바깥 풍경이 신기해 눈에 담으려고 거의 자지 않았다. 한참을 탔을까, 어느 역에서 강한 전남 사투리 억양을 말하는 가족이 내 뒤에 탔을 때, 목적지에 가까워졌다는 걸 직감했다. 순천역에서 친구를 만났다. 둘 다 큰 배낭을 메고 왔다. 그 가방을 역에 잠시 맡기고 여행을 시작했다. 이미 역 내 짐 맡기는 곳이 포화상태여서 역무원은 사무실 한편을 내주었는데, 우리보다 먼저 이 곳을 찾은 내일러들의 가방이 아주 많아 신기했다.
한결 가벼워진 우리는 우리나라 60-80년대를 배경으로 만든 드라마 세트장으로 갔다. 그곳을 둘러보는 건, 마치 3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문이 살짝 열린 틈, 때 묻은 벽지, 갖은 소품들, 먹다 남은 소주병, 작은 구멍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만들어 두었다. 누군가 실제로 사는 곳을 잠시 둘러본 듯한 느낌. 낯설지만 흥미롭게 여행했다. 다시 순천역으로 와 근처에서 유명한 백반집에서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고, 짐을 찾아 오늘의 여행지로 향했다.
순천만.
순천 여행을 계획한 목적은 순천만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것도 아름다운 노을을 꼭 보고 싶었다. 순천만으로 향하는 발 디딜 틈 없는 버스를 하나 떠나보내고, 이어서 오는 두 번째 버스에 비로소 앉아 갔다. 한여름의 순천만은 푸른 자연이었다. 탁 트인 시야에 마음도 환해지는 것 같았다. 고맙게도 살짝 흐렸던 날씨가 맑게 개 파란 하늘을 보여주었다. 가을이 되면 황금빛으로 물들 갈대밭이지만 여름이라 초록색의 향연이 펼쳐졌다. 참 건강한 초록색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록 갈대숲을 따라 걸었다. 울타리 아래를 보면 짱뚱어와 게가 느리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 완화된 햇살이 기분 좋게 눈이 부셨다. 우리는 일몰 시간을 맞추어 용산전망대로 향했다. 숨차게 올라간 전망대에서 드디어 만났다, 커다란 해를. 갈대숲을 향해 아래로 내려다보는 일몰을 보았다. 서산으로 서서히 떨어지는 해를 한참 바라보았다. 이때부터 나의 일몰 사랑이 조금씩 싹트게 되었을 것이다. 이토록 바로 해가 눈 앞에 보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빌딩도, 나무도 없이, 온전히 해가 보였다. 엄마 아빠에게 내가 보는 이 장면을 사진 찍어 문자로 보냈다.
해가 졌다. 전망대를 내려와서 천문관으로 가 별을 보기로 했다. 순천만에서 바라보는 별! 8시에 입장을 기다렸는데 무척 아쉽게도 날씨가 안 좋아 오늘은 별을 볼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대신 영상을 스크린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화면 속 별을 바라봐야 했다. 천장 스크린을 향해 비스듬히 누워서 영상을 한 개를 다 마쳤을 때, 갑자기 직원이 우리를 향해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별이 떴어요! 다들 옥상으로 올라가세요!"
웅성웅성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였다. 직원은 우리에게 절대 폰을 켜지 말고, 디카로 사진도 찍지 말라고 했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불도 켜지 않았다. 떠듬떠듬 계단을 올라 옥상으로 들어선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하늘에 그토록 아름답게 빼곡히 수놓은 별이란! 까만 천에 한 땀 한 땀 수놓은 자수처럼, 그렇게 별들이 제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여기엔 별 말고 아무런 불빛이 없는데, 서로의 얼굴이 보였고, 내 손이 보였다. 다들 한 목소리로 "와---"하는 탄성을 내지르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우리를 안내한 직원이 말했다. 우리들은 2011년 여름에 5번째로 별을 구경하는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그는 하늘을 가리켜 별자리와 별, 행성에 대해 하나하나 재미있게 알려주었다. 설명하기 위해 레이저를 하늘을 향해 쏘았을 때, 하늘이 무슨 도화지처럼 쓱쓱 그려지는 게 정말 신기했다. 우리는 천문대 망원경으로 줄 서서 별을 관측하고, 별을 이어서 별자리도 보고, 쏟아지는 별을 온몸으로 맞아들였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게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정해진 관측 시간을 마치고 다 같이 아래로 내려왔다.
별을 본 여행자인 우리는 여전히 들떠 있었다. 순천만을 나와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 뒤늦은 저녁으로 국밥을 먹고, 내일로 첫 숙소 찜질방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가족여행 온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조잘조잘 이야기 나누는 우리말을 들었던 것일까, 우리에게 여행에 대해 물었다. 오늘 하루를 이야기했더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와, 별 다섯 개짜리 여행을 하셨네요."
정말이지, 오늘 하루는 별 다섯 개짜리의 여행이었다. 오늘이 여행의 시작인데 그 시작이 좋다. 심지어 이 여행은 스무 살에 떠나는 첫 여행이면서, 가족이 아니라 친구와 떠나는 첫 여행이기도 했다. 그것도 기차를 타고. 기차만 타고. 인생 첫 여행에서 만난 즐거움과 행운들. 이 모든 경험에 감사하며, 일기를 쓰고, 내일을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자려고 눈을 감았을 때 눈 앞에 오늘 본 별이 가득했다. 까만 밤하늘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