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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길 Nov 30. 2023

딸 시집 가는 날

마침내 그날이 오긴 오네

한 시간여를 잤는데 마치 긴 밤을 잔거처럼

도무지 잠이 오질 않네

생시와 꿈이 구분되지 않고

글자가 이중으로 겹치듯이

     

마치 결전의 순간처럼

평온하리라 생각했던

혼인의 시간이 이토록 크게

나의 정신 줄을 흔드는구나

     

스무일곱살 피 끓던 청년의 가을 날

내가 올렸던 혼례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서른여섯 딸

결혼 하루 전 밤

얼굴 부을 수 있다는 남들 조언에

저녁대신 먹은 삶은 계란 두 개가

좌로 누워도 우로 누워도

또르르르또르르르 구른다

도무지 소화될 생각이 없나보다

     

아홉 살 코코

사람으로 치면 중년의 남자

내 속맘을 알기라도 하는 듯

오늘 산책은 서둘러 끝내고

온몸을 내 등줄기에 바짝 붙여

낑낑대며 잠을 청한다

     

너도 맛있는 간식 사주던

미라 누나 시집 가는 게

서운하긴 서운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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