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함이다. 굴러가는 공의 출발점과 궤적을 알아야 지금 위치의 이유를 알 수 있고 미래의 위치를 예측할 수 있다. 보통 의료의 역사는 인류가 출몰한 이후부터 행해졌겠지만, 최초의 기록이 남겨져 있는 기원전 280년 경 히포크라테스가 작성한 히포크라테스 전서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물리치료의 경우 기원전 4,5세기 히포크라테스가 태양광선, 온천욕 등을 통해 질병치료에 활용할 것을 주장하여 이를 출발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적 물리치료는 1813년 스웨덴의 Per Henrik Ling이 마사지, 도수 교정, 운동을 교육하고 1887년 스웨덴의 국제보건 복지회에 물리치료사(Physical therapist)라는 단어를 공식 등록한 것을 진정한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물리치료는 신체적 (Physical) 또는 물리적 인자 (기계적 힘, 열, 전자기)를 활용하여 다양한 분야로 발전하고 있다.
물리치료가 신경과학을 받아들이고 응용하기 시작한 출발점은 1780년대에 갈바닉(Luigi Galvani)이 개구리의 근육 조직에 전기가 미치는 영향을 발견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조수는 개구리의 좌골신경에 자극을 가했을 때 개구리의 다리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사건의 의의는 움직임의 출발점인 근수축의 근원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움직임이 조절되는 원인이 신경에 있다는 관점이 생기고 운동조절에 대한 탐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Charles Sherrington은 1906년 “신경계의 통합 작용 (The Integrative Action of Nervous System)”을 발표하고 발전시켜 인간의 움직임은 복잡한 반사 작용에 의해 조절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Sherrington, 1947). 반사(reflex)는 자극(stimulus)이 있을 때 반듯이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시대적 근거로 개구리 실험이 널리 인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반사 이론이 나타나게 된 것이라 추론할 수 있다. Sherrington은 인간의 걷기, 앉기 등 다양한 움직임이 여러 개의 자극에 대한 반응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움직임의 유무를 선택하는 반응(response)을 할 수 있다. 반응은 자극이 있는 경우에 움직임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외부적 자극 없이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반사 이론은 한계점이 분명하지만 그 시대에 이 이론을 바탕으로 다양한 물리치료의 기법이 탄생했으며 현대에도 이 기법은 사용되고 있다.
반사 이론의 적용은 움직임을 조절하기 위해 다양한 자극을 사용하는 것이다. 반사 이론을 통해 개발된 기법은 Karl과 Berta Bobath가 개발한 보바스 접근법 (1975), Margaret Rood가 개발한 루드 접근법 (Stockmeyer, 1967), Signe Brunnstrom에 의한 Brunnstrom 접근법 (1966), Kabat Knott (1954)가 개발하고 Voss 등이 (1985) 발전시킨 고유수용성 신경근 촉진법 (PNF), Jean Ayres (1972)가 개발한 감각통합치료법 등이 있다. 이 접근법들은 현재 신경재활 발달치료의 중요한 치료기법으로 다양한 관련 전문가들이 (재활의학과 전문의,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 응용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우리는 현재의 치료 접근법의 뿌리가 1900년대 적립된 신경과학적 지식에 바탕하고 있음을 알고 그 한계점도 명확히 알아야 한다.
반사 이론에 의해 운동이 조절된다고 생각하던 1920년대 Rudolf Magnus는 뇌손상 후 운동 이상이 나타나는 현상을 통해 뇌가 (고위 중추) 반사 조절을 담당하는 척수 (하위 중추)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석하였다 (Magnus, 1925, 1926). 1940년대에 Arnold Gesell(1954)과 Myrtle Mcgraw(1945)는 인간이 태어난 후 운동발달 과정을 연구하며 하위 중추에서 상위 중추로 순서가 있다고 보고하였다. 그들은 가장 하위 중추에 해당하는 척수 수준의 원시 반사가 신생아 때 가장 먼저 나타나고, 이후 뇌줄기, 중간뇌, 대뇌피질의 운동 조절 기능을 획득하는 것을 규명하였다.
사진출처: R Motor Control and Motor Learning, 2007.
따라서 운동 조절을 담당하는 신경계는 상위가 하위를 조절하는 하향식(top down) 방식이라는 계층 이론이 정립되었다 (Foerster, 1977). 계층 이론을 신경재활 발달치료에 가장 잘 확립한 사람은 영국 물리치료사인 Berta Bobath로 사료된다. 그녀는 고위 중추인 뇌에 손상이 있는 뇌성마비 아동에게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자세 반사 및 운동조절 이상이 나타나는 원인이 고위 중추가 하위 중추를 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제시하였다. 1970년 Brunnstrom 역시 고위 중추가 손상받았을 때 정상 반사가 과도하게 되어 병적 반사가 출현한다고 하였다. 즉 계층 이론을 통해 우리는 뇌손상 환자에게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지식을 갖게 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주장을 토대로 상위 중추 손상 환자의 경우 운동조절의 재학습을 위한 순서가 하위 단계의 병적 반사를 억제하고 억제를 다시 획득하는 순서로 치료가 행해져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계층 이론의 하향식 조절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뜨거운 물건을 잡을 때 인간이 뜨겁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고위 중추인 뇌에서 물건을 나르도록 명령을 내렸지만 뜨거운 물건을 잡는 순간 척수 수준의 회피 반사가 나타나 우리는 물건을 놓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동일하게 고위 중추에서 걷기의 명령을 내렸을 때 발바닥에 강한 통증을 느끼게 되면 걷기 동작은 하위 중추인 척수의 회피 반사가 우세해지며 걷기 동작은 다른 운동조절이 나타나게 된다. 특이한 경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계층 이론의 하향식 조절이 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계층 이론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증거로 중요하다.
운동 프로그래밍 이론은 중추신경계에 추상적인 운동 방법이 저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Bernstein, 1967). 이 이론의 결정적 근거는 1981년 Grillner에 의해 실행된 뇌의 입력을 차단한 고양이 실험이다. 뇌의 명령이 차단된 고양이를 러닝머신에 올려두고 장치를 작동시킬 때 고양이가 걷는 동작을 수행하였다. 추가적으로 속도가 변화하자 걷기에서 빨리 걷기, 뛰기의 동작 변화도 확인하였다. 이 연구를 토대로 고양이의 경우 걷기 등의 동작에 대한 운동 방법이 척수에 저장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 신경회로를 중추 패턴 발생기 (Central Pattern Generator; CPG)로 정의하였다. 이 이론은 하향식으로 상위 중추가 하위 중추를 제어하고 있다는 계층 이론에 대한 오류를 제시하였다.
운동 프로그래밍 이론의 임상적 의미는 운동조절에 손상이 있는 중추신경계 손상 환자에게 치료는 운동 방법의 재교육이 중요하다는 근거로 사용된다. 따라서, 치료 설계에 있어 복잡하고 다양한 운동보다는 특정 동작을 분리하여 재교육하는데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운동 프로그래밍 이론의 제한점은 만약 특정 동작에 대해 저장이 되어 있다면 휴대폰의 특정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는 것처럼 항상 동일한 결과가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다양한 변수에 맞추어 운동을 다르게 조절할 수 있다. 즉 프로그램이 되어 있지만 인간의 동작은 외부 환경에 맞춰 운동을 다양하게 조절한다. 그렇다면 중추신경계에 무한대에 가까운 다양한 프로그램이 저장되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추상적인 운동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중추신경계에 무한대의 저장 공간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추가적으로 학습된 프로그램이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화의 이유가 설명되어야 한다. 하지만 운동 프로그래밍 이론은 이것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Bernstein은 운동 프로그래밍 이론의 한계점을 인지하고 운동조절은 저장되어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한 시스템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효과적인 운동을 결정한다는 분포 모델 (distributed model)을 주장하였다. 걷기의 경우 운동, 감각, 인지, 근긴장도, 등의 다양한 시스템이 자기 조직화 (self-organization)에 의해 동작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작은 선형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고 특정 단계에 도달하면 동작의 유형이 바뀌는 비선형 특성 (nonlinear properties)이 있다고 설명하였다. 예를 들어 러닝머신의 속도는 선형적으로 빨라질 때 인간은 걷기에서 속보로 그리고 뛰는 동작으로 각각의 자기 조직화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그림과 같이 동물에게도 나타나며 네발을 사용하는 자기 조직화의 방식의 다양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출처: https://www.horsesandus.com/the-4-basic-horse-gaits-explained/
Bernstein이후 다양한 학자들이 운동 방식의 변화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하며 시스템이 변화되는 원리에 대해 탐구하였다 (Kamm et al 1991, Kelso & Tuller 1984, Kugler & Turvery 1987, Perry 1998 등). 걷기에 대해 자기 조직화의 반복적인 경험을 토대로 강하게 확립되어 있다면 러닝머신의 속도가 빨라질 때 걷기라는 동작의 선택의 폭이 길어진다. 이를 깊은 우물 상태에 운동 프로그램이 저장되어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걷기의 자기 조직화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는 얕은 우물에 운동 프로그램이 저장되어 있는 것이며 쉽게 다른 동작으로 변하게 된다.
시스템 이론의 첫 번째, 임상적 의미는 특정 동작을 선택하는 자기 조직화에 대해 다양한 시스템들의 분포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걷기 훈련을 위해서 단순히 하지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개선하기 위해 세부 동작을 구분시켜 반복학습을 추구하는 운동 프로그램 이론의 관점에서 몸통, 상지의 운동 기능뿐만 아니라 감각 상태, 근 긴장도, 환자의 의지 등 다양한 분포 시스템을 치료에 활용해야 한다는 근거로 시스템 이론이 사용된다. 두 번째 임상적 의미는 중추신경계 손상 후 나타나는 환자들의 비정상적인 운동조절이 반복을 통해 깊은 우물 상태의 자기 조직화가 형성되기 전 빠른 재활을 통해 정상적인 운동조절 능력을 학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완벽할 것 같은 시스템 이론에도 제한점이 있다. 훌륭한 이론이지만 치료의 설계에 적용하기가 불가능하다. 운동 조절의 재학습을 위해 너무나 방대해서 어떤 분포 모델을 사용해야 되는지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걷기를 위한 치료법에서 누군가는 근력을 또 다른 치료사는 감각을 중요하게 치료를 설계할 수 있다. 하지만 누가 맞고 틀렸는지 알 수 없다. 그 결과 우리는 임상에서 최적의 치료법을 설계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