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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각두건 Jan 27. 2024

아무도 보지 않을, 아무도 기다리지 않을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법적 가족을 맺으려 했던 애인과 헤어졌다.


 끝자락 즈음에는 우리가 대체 어디서부터 이렇게 망가졌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우리 서로 정말 사랑했는데, 아끼고 노력했는데. 왜 이렇게 됐지?


 이별을 먼저 이야기한 건 나다. 상담선생님 왈, 내게는 늘 두 가지의 내가 있다 하셨다. 한쪽에는 매우 이상적이고 상황을 관철하여 판단 내릴 수 있는 나. 한쪽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뭐든 맞추고 해주고 싶고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는 나.

 그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나를 전 애인이 보기엔 '왜 저렇게 말을 바꾸지? 오락가락하지? 왜 오늘은 사랑한다 했다가 내일은 헤어지자고 하지?' 했을 것이다.


 고통스러웠다. 버겁고 지쳐서 매일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먹는 것만큼은 진심이던 내가 "프링글스 한 통 다 먹을 수 있어?" 할 정도의 소식좌가 되어갔다. 우리 사이는 해졌다고, 유통기한이 다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좋게 얘기하고 인내해도 돌아오는 답이 여전한 자책일 때, 나는 그만 기력을 잃었다.


 헤어지고 일주일 만에 다른 도시에 있는 집을 구하고 이사까지 마쳤다. 같이 있는 며칠간 사죄하고 붙잡았으나 그의 마음은 끝난 상태였다. 그토록 사랑하 다 내줬던 마음과 입이 완전히 닫힌 것을 볼 때, 그 좌절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며칠, 몇 주를 가슴이 찢어져 가며 울었다. 이렇게 아플 거라면 살리지나 말지. 아참, 나는 이별을 얘기한 다음날 밤 자살 시도를 했었다. 편의점에 간다던 애가 무인텔에 가서 약을 200개 넘게 먹고 연락을 안 받으니 전애인은 신고해서 나를 찾아냈다. 핸드폰 전원을 꺼야 위치 추적이 안 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친구도 해주겠다는데 왜 죽으려 하는데?"

전애인이 목놓아 울었다. 원래 헤어지면 칼같이 정리하고 뒤도 안 돌아보는 사람이지만, 그때까지는 친구로 남아줄 마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슬프게도 나는 살았고 친구 사이마저 잃었고 전애인과의 연락이 모조리 끊긴 채 홀로 남겨졌다. 마지막에 헤어질 때 그 사람이 그랬다. 친구 좀 만들라고. 그러게, 난 왜 친구도 없어서 이때 얘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까. 나도 친구가 없고 싶어서 없었던 건 아닌데.


 나는 미련쟁이어서 사진만큼은 다 지우지 못했다. 그렇게 놓고 보니, 우리가 언제부터 망가졌는지 그제야 보였다. 성인입양을 위한 서류를 다 작성해 놓고 제출하러 가기 전 날, 전애인은 나를 한 달 동안 속이고 있던 걸 들켰다.

 우리 공동의 것이었고, 평생 함께 살기로 한 반려자가 내게 한 달 동안 웃음으로 이것을 감추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놀랍게도 내가 화를 내지 않았다. 전애인은 내가 천사인 줄 알았단다.

 "잃은 건 메꾸면 되고, 내가 사랑하는 너만 무너지지 않으면 돼." 내가 했던 말이었다. 그러나 나와는 너무 달랐던 가치관, 관념, 한 번 무너진 커다란 신뢰의 벽은 다시 세울 수 없었다.

 웃으며 대화를 하다가도 남몰래 흠칫했다. 또 나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뭐가 더 있으면 어떡하지?


전애인은 내가 권유한 치유센터도 다니며 매우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맙고 기뻤다. 동시에 무서웠다. 전애인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 정신건강이 악화된 상태여서 그랬다는 걸 안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사람이 싫어졌다는 그는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어 했다. 우리의 경제적 형편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반대하고 현실을 얘기하며 설득하던 나는, 이 요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내가 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행복은 없을 거라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더 이상 내 존재는 존재 자체로 그에게 힘이 되지 않았다. 그 당시 그에겐 고양이가 있는 곳이 '행복 마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비참한 현실'로 오는 것이었으니까. 현실엔 내가 있었는데.


 결국 고양이를 데려왔다. 유기묘기도 하고 첫 집사 생활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사소한 것도 챙길 게 너무 많아 할 일 목록을 나누어 리스트도 쓰고, 앱도 깔고, 하나하나 어떻게든 버둥거리며 해나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고양이 병원비를 댔고, 고양이 좋아 인간으로서 조금만 이상징후나 피가 보이면 내 탓인 것만 같아 죙일 힘들었고, 내가 사랑하던 사람의 시선은 온종일 고양이에게 향해 있는 것에 외로웠다. 처음에 고양이가 나를 많이 따랐는데, 그는 그걸 질투했다. 나는 오직 그의 행복과 마음 안정을 위해 애쓰고 있었는데 나를 따른다는 이유로 나는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이전에도 자주 그랬다. 나는 애인의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그는 석사과정까지 밟았음에도, 가고 싶었던 과를 가지 못한 걸 내내 아쉬워했다. 그 가고 싶었던 과를 간 게 우연찮게 나였다.

 나는 엄하고 꼼꼼하고 강박적인 엄마 밑에서 자라 꼼꼼하고 일의 순서를 정하는 게 기본적으로 능숙한 사람이었는데, 그게 또 그의 열등감을 건드렸다. 막바지에 고양이가 오면서부터는 나 스스로 훈수충이 되어 모든 것을 계속 체크했다.


전애인은 그것에 겁을 먹었다. 내가 혼내고 자시고 할 것이 없음에도 나한테 혼날까 봐, 빼먹은 게 있을까 봐 나와 이야기하기 무서워졌다고 했다. 전애인은 고양이가 오면 우리 사이에 행복한 이야기들이 오갈 거라 기대했지만, 정작 우리는 여유가 없어져 더욱더 서로를 보지 못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내 개인 상담에 가서 계속 고뇌하고, 털어놓고, 조언받고 우리 관계를 회복하려 애썼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오래전부터 곪아있는 상태였다. 정확히 말하면 전애인의 큰 거짓말, 그 이후부터. 갤러리를 보면 그때 이후로 우리의 데이트는 사라졌고 사진도 거의 없다. 우리는 행복할 때만 카메라를 켰으니, 둘이서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내가 훈수충이 되어 전애인을 다그치는 것은 내 어린 시절, 엄마에게 혼나던 불안을 투사하는 것이란 걸 깨달은 상담 날. 커버 사진의 꽃다발을 사갔다. 거짓말 사건 이후 서로에게 선물도 제대로 못해주고 꽃을 오래 안 산 때였다. 그동안 의도하진 않았으나 무섭게 대하고 나도 모르게 화낸 것이 모두 내 안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하니 한없이 미안해져 샀다. 그것으로나마 내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바뀌려 노력했다. 늘 답답하던 마음에 자연스레 여유가 생겼고, 더 인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단박에 관계가 회복될 순 없었다. 잦고 큰 다툼, 관계의 끝을 보는 듯한 내 모습에 결국 애인도 지쳤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 혼자 집에 있다 우연히 거울 속 유난히 마른 나를 보고 운 적이 있다.



너 참 불쌍하다.
인생 초반 그렇게 가정폭력으로 고통받고 겨우 힘내보니 의료사고가 나 눈을 못 뜨고,
겨우 회복해서 드디어 생을 붙잡고 싶게 하는 사람, 이 사람과 함께라면 미래까지 상상하게 되는 사랑하는 이를 만났더니 배신당하고.
마음을 내준 친구들은 모두 떠나가고.
넌 어쩜 그렇게 사니?
어떻게 그러고 사니.
불쌍해서 어떡하니.




 나는 최선을 다해 그를 사랑했고 노력했다. 그도 나에게 최선을 다했다 생각한다. 분명. 그러나 헤어진 뒤 그가 하는 말이, 주변에 물어보니 다들 내가 애인을 가스라이팅 했다고 한단다. 그래서 더 이상 연락하고 싶지 않단다.

 처음엔 상처였고, 그다음엔 억울했고, 화가 나더니 그 뒤엔 자책이 이어졌다. 결국 내가 이렇게 생겨먹어서,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사랑을 모르고 자라 사랑하는 이에게 폭력을 가했나 보다. 나 같은 '하자 있는 상품'은 어떻게 노력을 해도 안되나 보다.


 그러고 있었는데 일면식 없는 사람들이 나를 위로해 주기 시작했다. 전애인을 아는 사람들에겐 차마 그가 어떤 거짓말과 배신을 했는지 말할 수 없어(그가 고통스러워할 걸 아니까) 일면식 없고 아주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일대일로 속을 털어놨다. 그랬더니 하나같이 다 내 편을 들어줬다.

 사실 그랬다. 몇 안 되는 친구들, 친오빠도 속사정을 다 말하고 나면 네 탓 아니다, 서로 안 맞았던 거다, 그러는 그 사람은 잘한 게 뭐 있냐 했다.

글쎄. 끝까지 그러고도 바보 같은 건지 나는 자꾸 내 탓을 하게 된다. 일면식 없는 사람들에게 전애인 항변을 해준다. 그러다가 나도 화가 났다가, 또 죄책감이 들었다가.


어쨌거나 이제 나는 혼자다. 아무도 내 안위를 그닥 궁금해하지 않고, 내가 소식이 없어도 별 일 있겠거니 하지 않는다. 이별 후 인간관계를 쌓으려 열심히 노력 중이지만, 다 바람에 흩날리는 담뱃재 같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고 기다리지 않고.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는다. 나는 그저 스쳐가는 수많은 누군가 중 하나일 뿐.

애인은 기간제 베프라는 글귀를 봤다. 진짜 베프였는데, 평생의 동반자가 되자고 그렇게 약속했었는데. 결국 다 내 탓이 되고 나는 망가지고 버려졌다.


30분 넘게 목의 급소들에 식칼을 꽂아 넣으려고 대고 있던 새벽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붙잡을 누군가를 찾아 허공에 손 젓지만 아무도 없다. 애초에 누굴 붙잡았으면 안 됐는데. 괜히 잡아서 지지부진한 생을 더 늘렸다. 그래도 한 생애 지독하게 사랑하고 사랑받아 봤으니 그걸로 만족하고 가려했다.

 그러나 인간은 참 웃긴 존재. 앞으로 살 날들이 막막하고 버거워 죽으려다가도 당장의 밀어닥칠 고통에 손발이 하얗게 질리는 나약함. 이를 꽉 깨물고 지금 아니면 안 된다, 수없이 되뇌었지만 역시 스스로 찌르는 것이 제일 무섭다. 그냥 그때 죽었어야 했는데, 저 때 죽었어야 했는데. 후회만 밀려온다.


자살예방전화가 109로 개편 통합되었다고 한다. 1393 익숙해져서 좋았는데.

이런 우울한 글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을 거고, 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나는 기어코 글을 게워낸다. 속이 메슥거리고 눈앞이 핑핑 돌아 결국 토해낸다. 나의 고통을, 비참함을, 외로움을.


미안하다. 그립다. 나만 그럴 거 안다. 그래서 더 아프다. 왜 기어코 날 살려놨어. 왜 나를 살고 싶게 했어. 생전 단 걸 안 먹어봤으면 차라리 낫지 달콤한 마시멜로 물려줘놓고 녹으니 쏙 사라지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적어도 그대는 나 없이 못 살 정도는 아니랬지요. 그나마 다행이에요. 오래오래 살아서 반려동물과 함께 행복하세요. 내 운이 조금이나마 남았다면 그대에게 주고 갈 테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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