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우스 출신인 나는 작년 대행사를 차렸다. 그리고 곧 법인 전환을 앞두고 있다. 언젠가 스타트업 마케팅 컨설팅 회사를 차리겠다던 다짐이 2년 정도 앞당겨지고, 조금은 다른, 어쩌면 더 넓은 범위의 마케팅 대행업 포지션을 갖추게 되었다. (아래 추가 4단락까지는 '오구오구해주세요' 하는 서론이다.)
나는 워터풀 방식의 조직(롯데쪽이라던가..)에서 파트장을 할 때에 "너 혼자 잘하면 좋니?"라는 상급자의 말까지 들으며 잘하고(?) 잘했다. 마케팅이라는 업으로 독립해서 대표로 사업을 꾸려 가려면 지난 하루하루가 증명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대행사를 차렸지만, 대행사나 에이전시라고 소개하기가 싫을 만큼 이쪽 업계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고, 여전히 대행사이지만 대행사스럽지 않은 강점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소수 브랜드 전담이라는 말과 시니어라는 셀링 포인트를 앞세웠고, 그로스해커로 일했던 때의 버릇처럼 명칭으로 정해진 특정 마케팅 분야를 떠나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클라이언트 브랜드의 Fit에 맞는 전략과 실제 실행을 제안하고 나름 증명해 왔다.
사업의 북극성 지표를 클라이언트의 리텐션(재계약)=계약연장이라 두고 진행한 결과, 거래처가 많지 않음에도 ROI를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었고, 하나 하나가 레버리지 되어 큰 주님을 모시는 기회도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내 최우선순위의 업무는 하나가 더 생겼다. (본론)
롤드리븐(Role Driven)형 인재 채용이다.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면서도, 가장 미뤄두던 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조직에 사람 들이는 일에 가장 신중하면서도, 역량 있는 사람에게 진심이고, 그만큼 철저하게 평가하는 습관 때문이다. 늘 리소스가 아주 많이 드는 일이다.
자기 객관화를 넘어 메타 인지가 잘 되는 사람을 모실 수 있을 것인가?
본인의 잘못이나 그에 대한 피드백 앞에서 변명이나 핑계 없이 바로 개선하는 사람을 모실 수 있을까?
돈값을 한다는 것에 대해 몇 만원, 몇 십, 몇 백만원 등의 단위로 스스로를 평가해 본 사람을 모실 수 있을까?
관성처럼 늘어지는 걸 계속 부여 잡으며 Self-Motivation하는 사람을 모실 수 있을까.
나는. 철저하게 롤드리븐과 오더드리븐으로 나뉘어져 돌아가는 어느 조직에서 2개월, 6개월, 9개월 등의 기간을 거쳐 C레벨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다. 그곳은 애자일 방식의 수많은 프로젝트가 빌드업되고 한달만에 죽어 나가며, 서로 더 좋은 동료를 자기 프로젝트로 영입하기 위한 말도 안 되는 정치가 판치는 곳이었고, 나는 당시 '숫자' 하나면 그 어떤 폭풍 소용돌이 안에서도 건재할 수 있음을 체감했고, 당시 견고한 팀 빌딩을 완성했다.
롤드리븐의 사람들은 따로 1시간씩 시간을 내서 가설 회의에 모여 주 단위로 본인의 실적에 대한 브리핑을 했고, 오더드리븐의 형태로 정해진 월급만 받고 빨리 퇴근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곳에 참가할 권한(역량)을 얻지 못하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이었다. 무서울만큼, 참 무섭도록 성장과 성과에 집착하는 스타트업이었고 그곳은 1년 사이에 20여 명에서 50여 명까지 커지고 투자 없이 자생 매출로만 성장해 갔다.
그 직전 어느 프라이머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에서 나는 회사의 모든 경영 지표와 AARRR 데이터를 다루고, 각 팀의 마케팅/조직별 가설 검증을 매니징하고 연결하고 우선순위화하고, 정량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일을 했었다. 두 명의 코파운더인 대표와 실장 사이에서 당시 관련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일을 했고, 스트레스로 구안와사(안면마비)가 오기도 했지만, 함께 마케팅비의 스케일업을 해나갔다.
이후 마치 계산이라도 한 것처럼, 다니는 회사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최후에는 대기업 계열에서 파트장을 지내게 됐다. 그리고 그곳 덕분에 더 빠르게 독립과 사업을 결심할 수 있었다.. (본론을 가장한 서론 같은 본론 끝)
연봉을 10-15% 인상해 준다고 하고, 주 4.5일제와 유연근무, 탄력근무를 이야기했다. 클라이언트 수주 및 수익에 따른 인센티브도 약속한다.
이는 즉, 매우 타이트한 퍼포먼스 평가가 진행된다는 뜻이다.
숫자만 보는 게 아니다.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말 한마디의 톤앤매너 하나하나까지 짚는다. 늘 최선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 한국의 대행사 시장에서는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꼭 마케팅 대행사가 아니더라도 그런게 결국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도움 받기로 돌아온다.
본인이 받는 연봉만큼의 일을 철저하게 잘 하는 정도면 되는데, 그 수준을 영업이익 혹은 (고연봉자는)당기순이익까지의 시뮬레이션 안에서 인당 ROI 숫자로 전달 받게 된다. 명확한 오더 드리븐 형태로 워라밸을 조금은 챙기고 싶은 동료에게는 그만큼만을 바라고, 서로 협의한 수준 안에서 평가를 진행한다.
넷플릭스 같은 소규모의 무서운 조직을 꿈꾸지만, 일단 내가 그 정도 능력은 안되고. 조직 안에는 늘 각자가 본인의 삶에서 추구하는 일의 방식과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감안하고 존중해야 하니. 모든 사람이 같은 기준의 평가를 받을 수는 없고, 서로 협의한 업무코디와 클라이언트 상황에 맞게 스코어는 매겨진다.
을의 비범함을 지키며 클라이언트의 만족도를 높이고, 사업의 영위성과 브랜딩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조직 내부부터 확실히 다져져야 한다.
그리고 가장 원하는 형태는 당연히 평가가 필요 없고, 스스로가 롤드리븐(Role Driven)으로서 역할에 책임지고, 알아서 성과를 만들며, 한 만큼 가져가는 것이다.
두 가지의 방식을 고려해서 사람들을 계속 모으고 있다. 내년도에 세금 다 제외하고 가져갈 돈이 거의 없더라도 마케팅 대행과 또 다른 BM으로의 진행을 위해 시스템을 만들고, 내 진심과 애정을 물심양면 다 퍼 줄 수 있는 동료들을 얻는 게 진정 가치 있는 레버리지라 믿으며.
새롭게 더 합류할 분들이 생겼다. 업무의 퍼포먼스를 위한 가능한 모든 편의를 제공하고 맞춰줄 생각이다. 이미 그러고 있다. 정해진 기간 안에 '목표 달성'을 증명하면 된다. 그리고 클라이언트 앞에서 스트레스 받은 모습이나 감정적인 면을 내보이지 않게끔 스스로 스트레스 케어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오늘도 활짝 웃는다. 먼저 잘해야 한다. 사업을 하면서 너무 많은 사람 군상과 명확한 악인들을 만나곤 하지만, 반면에 내가 노력하고 절실하게 노력하는 만큼 손을 내밀어 주고, 도움을 주는 분들도 많아졌다.
"너는 태도가 됐다. 반드시 성공할 거야. 형이, 너 좋은 소식 만들어 오면 사무실까지 찾아가서 밥 제대로 사줄게." 라며 응원해주는 선배가 있다. 그 선배는 가끔 "예전처럼, 선비처럼 착하게 굴지마."라고 말해 준다.
나는 그래도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착하고 싶고, 능력이 부족해서 더 착해야 한다. 동료가 크리티컬한 잘못(근태, 언행, 거짓)만 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
깔끔하게. 숫자와 서류로 해결할 뿐이다.
이런 글을 적는 건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늘 언행을 조심하고, 평정심을 잃지 않으며, 계속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