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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이 Jan 22. 2024

인형의 꿈

일하며

스케치

 미술시간에 나는 크로키보다 데생이 좋았다. 언제나 그랬다. 빤히 보다 보면 평소에 아무것도 아닌 초콜릿과자박스 심오하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가로와 세로의 비율은 어떤까? 빛이 어느 면에 얼마 큼의 면적으로 닿는지, 그림자의 너비와 깊이를 살펴볼 시간, 면과 면이 닿는 각을 어림잡아 볼 시간. 사물이 가진 곡선과 접힌 주름의 모양을 바라보고 있을 시간. 눈으로 보던 걸 손으로 옮기는 일을 시작했더라도, 중간에 멈춘 채 대상을 바라볼 시간이 허락된다. 그래서, 연필을 들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의 신중함보다 선을 긋기 시작하면 오히려 가볍고 산뜻한 마음으로 면을 만들고 채울 수 있었다. 수정이 가능하다는데서 오는 안심,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확신. 명암이 부족하거나 사물의 대칭이 안 맞는 것 같아 보일 때 한 발짝 멀리 떨어져서 내 '과정'을 관찰한다. 느리더라도 과정들을 어루만지면서 끝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내가 페이스를 만들 수 있었다.


 크로키는, 내게 예고하지 않 제멋대로 움직이는 대상의 모습을 연필로 붙잡아둬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게 했다. 연필이 종이에 닿기도 전에 크로키할 대상만 정해지면 무서웠다. 움직이는, 혹은 움직이지 않지만 순간적으로 빛을 달리하는 대상의 모든 순간을, 될 수 있는 한 신속하게 종이에 옮겨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연필이 종이에 닿는 순간 쉴 수 없다는 부담감이 싫었다. 마 포털 검색창 같은 빈 도화지에 검색어 입력하고 엔터를 누르면 그 검색결과를 내가 빠르게 그려내야만 한다는 초조함 같은 거랄까. 크로키 숙제를 하기 위해 집 앞 놀이터만 나가도 끊임없이, 구분동작 없이 움직이 아이들을 바라보고 바라보다 그들의 목정도까지만 거칠게 형태를 따라잡다 포기했다. 아무도 데생은 멈추고 봐도 되지만 크로키는 절대 쉬면 안 된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그냥 느낌이 그랬다.  

 


 리허설

한창 방송에 재미(만)를 느끼며 배워갈 때, 방송은 크로키라고 생각했다. 특히 리허설은 정밀하게 완성할 필요가 없는 크로키라고. 실질적 내용과 부드러운 연결 부분, 코너와 코너사이, 시작과 끝의 여운을 연출하는 과정을 부담 갖지 않고 자유롭게 미리 그려보는 과정. 그래서 리허설은 본방송보다 가벼운 과정이라 여겼다. 미리 해보고 바꿀 수 있으니까. 완성을 시키지 않은 채로 임해도 오케이. 실제 라이브 커머스 방송에서 리허설의 기능적 의미는 온에어 전에 실전을 간추려, 가볍게, 일부분 해보는 것이 맞다(나의 경험상). 1시간 본방송 분량을 모두 해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중요하다 생각한 부분이 별로면 줄일 수도, 바꿀 수도, 실전처럼 해보니 더 나으면 늘릴 수도 있는 것.


 그런데 하다 보니 리허설은 내가 방송 전에 얼마나 신중하게, 정밀하게, 데생을 연습해왔냐를 시험하는 과정이다. 리허설할 필요 없이 얼마나 바로 라이브를 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자리. 리허설이 버벅거림 없고, 군더더기 없고 바꾸고 뺄 부분이 없으면 그것 또한 본방송과 비슷한 수준으로 좋게 평가받는다. 고치고 바꿀 게 없어서, 방송을 만드는 모두에게 심리적인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물론  그게 오로지 나의 노력과 능력에 의한 것은 아니다. 경쟁사의 방송시간, 그날의 날씨, 동시간대의 마케팅 경향 등 내 노력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뀌고 잘리는 부분이 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카메라 앞의 최전방 전사인 내게, 스스로  갖추고 온 화살과 방패가 얼마나 세고 튼튼한지를 시험하는 자리는, 상황과 환경에 상관없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그렇기에 리허설 전에, 리허설을 위한 정밀화 데생을 알아서  완성해 올수록 유리하다. 리허설에서 실전의 데생과 가장 유사한 크로키를 그려야 하고, 실전에서는 크로키의 속도로 데생을 완성하면 된다.


 즉흥적으로 보이지만 연습되어야 하고, 때로는 계산되어야 하는 말과 표정과 움직임. 그 비율을 잘 알고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입을 떼면 거의 쉴 수 없고 끊임없이 대상을 보여주고 묘사하는 일. 말을 덧 그리고 덧그려서 멋지게 만들어 대접하는 일. 사실과 최대한 비슷하게, 가장 매력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나도록 빚는 일. 크로키의 속도로 데생을, 데생의 관찰력으로 크로키를. 나지만,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나를 대신하는 인형이 오차를 생략한 말과 움직임으로 인형극을 하는 느낌이다. 인형의 꿈은 카메라 너머의 누군가와, 카메라 주변의 누군가를, 그들 중 누구라도 감동시키는 일.


 어렵다.



제목은 일기예보의 노래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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