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에 나는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못한다. 홀로 시간을 버티기 싫을 뿐 누구와 무엇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니까. 그 사람은 나를 만나러 나와서 뭐라도 먹거나 무언가 할 거라고 생각할 테고, 가만히 있더라도 오늘 내가 자신을 불러낸 된 연유를 궁금해하리라. 그에게 꺼내놓을 수 있는 이야기도, 이유도 없을 때, 심지어 네가 보고 싶었다는 핑계도 금방 떠오르지 않는데 그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고 싶어서 너를 불러냈다고 말할 자신은 없어서 아무도 부르지 않는다.
그런 날들 중 드물게 산책을 하는 경우도 있다. 거리에서 모르는 사람들의 무리와 맞닥뜨리는 게 평소라면 달갑지는 않지만, 그런 날은 왁자지껄한 소리가 싫지 않게 느껴진다. 운동을 위해 걷거나 조깅하는 사람들의 대열에서 함께 걷기보다는 그냥 길거리를 걷는 게 좋다. 신호등을 건너고, 정류소도 지나면서 어딘가로 열심히 가는 사람들을 지나치다 보면 기분이 나아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기분전환에 도움이 된다고도 하는데 아마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걷다 보면 샅샅이 파악했다고 생각했던 골목에서 내가 모르던 맛집느낌이 물씬 나는 식당을 발견하기도 한다. 오랜만에 집 근처 골목을 걸어가다 그런 식당을 마주쳤다. 묵은지 삼겹살을 필두로 하는 돼지고기 집이었는데, 최소 10년은 그 자리에 걸려 있었을 법한 간판을 보고 주춤, 멈춰 섰다. 숨어있었다니.(그런 적 없음) 검색해 보니 지도에도 나오긴 하는데, 이름이 oo식당이어서 삼겹살로 검색하면 필터에 안 걸리는 모양이다. 먹어보지 않아서 정말 맛집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묘하게 배신감이 들었다. 식당 안의 손님들도 흘끗거렸는데 찐 동네 맛집을 아실법한 포스의 어른들이 다수 계셔서 지금까지 이런 곳을 몰랐다는 어이없음이 더 커졌다. 곧바로 나는 이 어이없음에 동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 아닌 타인과 아주 가까워지는 게 그 사람의 삶에서 어떤 식으로 작동할지는 아무도, 심지어 그 자신도 모른다. 이유가 없어도 불러내어 함께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거나, 같은 공간에서 각자 하고 싶을 걸 할 만큼 서로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이. 그런 사이라고 정의했대도 우리 관계의 밀도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아주 가깝기에 서로의 작은 것에도 영향을 받으며, 또 한편 완전한 타인이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만큼만 서로를 알 수 있다. 한 수를 잘 못 두었다가 대국이 완전히 끝나버리면 처음부터 돌을 두어야 하거나, 다시 상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마음속에서 누군가를 지나치게 가깝게 두고 싶어 질 때를 경계한다. 더 자주, 더 많이,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연락하고 싶어 질 때. 일부러 멀찍이 있겠다거나 아무렇게나 되도록 내버려 두겠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동네에 몰랐던 삼겹살 맛집이 있었다는 연락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을 정도로만 가깝고 가볍게. 그러나 늘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이미 지켜내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고 하던가.
제목은 보후밀 흐라발 작가의 소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