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여름

우리가 살아야 하는 네 가지 세계 02.

by 해석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아도, 철저한 준비를 해도 1년의 중간 지점이 되면 항상 찾아오는 여름.

여름에 태어난 나는 유독 ‘열’이 많은 사람이었다. 사주에 ‘화(火)’가 꽤 있고, 어린 시절에 가족들의 무한한 사랑으로 인해 먹었던 무언가 덕분에 가뜩이나 넘쳐흘렀던 신체에 열이 더 펄펄 끓었다. (이전보단 많이 차가워졌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 비해 열이 많지 않나 싶다.)


그래서 여름에 나의 생월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이 다가오는 게 달갑지 않았다. 덥기만 덥고, 불쾌하기만 불쾌했으니까. 아니, 그래, 그냥 열 받으니까!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태어난 생월의 계절을 미워한다는 것. 매년 설렘 안고 빨리 돌아왔으면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데, 차라리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부터 드는 것.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나의 여름에 대한 적개심이 매년 계속 커지고 있는 와중, 과학적인 문제로 인해 여름이란 계절에게 실제로 주어진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 우스갯소리로 실질적 여름은 6월에서 8월이 아니라, 5월부터 10월 아니 11월까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으니까 말이다. 말 그대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절이다.


현실적으로 여름의 기세가 강력해진 만큼, 더 이상 증오하고만 지낼 수는 없단 생각이 들었다. 계속 같은 태도를 유지한다면, 1년에 절반을 ‘혐오’ 속에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워 죽겠고, 기분 나쁘고, 피하고 싶단 생각이 드는 건 나약한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라고 합리화하던 찰나에 문득! 흐물흐물, 미적미적 늘어지는 여름이 마치 내 지난 암흑기 시절을 보는 듯하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른 동년배 친구들보다 사회 진출이 현저히 늦었다. 사실 대학교 생활을 하던 중 취업을 한 적이 있었으나 여러 이유로 금방 그만두었고, 다시 정규직으로 사회 진출할 때까지 무려 5년 가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그 5년은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이라 볼 수 있는 27살부터 31살까지였는데, 푹푹 찌는 여름처럼 하루하루가 지옥 그 자체였다.


처음부터 생지옥은 아니었다. 내 ‘청춘’이란 여름 준비는 탄탄대로였다. 6월에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를 상당히 높은 학점으로 마무리했고, 여름 졸업을 하기 전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7월에 해외여행을 갔다 오기도 했다. 다녀온 후 취업 공부도 척척 잘 진행되었으며, 간헐적으로 면접도 보면서 하늘 높은 가을을 맞이할 거란 기대가 가득했다.


하지만 조금씩 꼬이기 시작했다. 몇 번의 정규직 사회 진출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 마치 근사한 에어컨을 들이기 전까지 선풍기도 쐬지 말자는 정신으로 벌인 일(?)이었는데, 그럴수록 내 등골은 새벽엔 오싹해지고, 밤낮으론 땀에 뒤덮였다. 이렇게 표현할 만큼 찐득찐득한 백수 생활은 끝을 모르고 늘어졌다.


인생의 시련으로 찾아온 ‘폭염’을 어떻게든 견뎌내야 했다. 떨어진 생활비를 채우기 위해서 일용직으로 이런저런 공장을 전전했다. 한창 잘될 거라 떠들던 시절과 다르게 새벽에 공부하러 나간다는 거짓말과 함께 노트북 가방을 싸 들고 인력 사무소로 향했다. 사무소로 향하는 나날마다 무기력한 나를 스스로 돌아보면서 열 받았는데, 그 광경을 지켜보시는 부모님은 얼마나 더 힘이 드셨을까.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선선한 바람이 드는 사무실에 들어앉은 내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그 긴 세월 동안 땀이 나지 않았던 날은 손에 꼽았다. 당연했다. 공장에서 8시간을 움직이는데 땀이 안 날 수가 없었다. 바깥세상이 봄이어도, 여름이어도, 가을이어도, 겨울이어도 내 계절은 늘 여름이었다. 손재주가 부족하다는 타박을 들을 때도, 속도가 느려서 공정이 지체된다는 면박을 들을 때도 바깥의 계절이 어떻게 되었든 내 속은 늘 부글부글 끓던 여름이었다. 시련이란 무더위에 찌들던 무직 생활 5년 차 7월, 결국 바라왔던 직업인으로서 정규직 취업에 성공하면서 기나긴 여름의 끝을 여름에 마칠 수 있었다.


정말 어렵게 버텼던 시간이었지만, 그 세월이 늘 텁텁하고 쓰리기만 했을까. 작은 행복은 분명 존재했다. 오전 시간을 불태우며 일한 후에 먹는 점심밥이 그렇게 맛있었고, 공장 안 사각지대에서 선풍기 바람 쐬며 누운 채로 쉴 때가 가장 머리와 마음이 편안했었다. 일을 하지 않는 날엔 서울, 경기 이쪽저쪽에서 열리는 강연과 스터디에 참여하면서 현재 내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소명 의식을 배우며 밝은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다. 결정적인 하나, 길고 긴 여름을 살아온 만큼 다시 한번 내 인생에 힘든 여름이 찾아온들 조금 더 용기 있게 이겨낼 힘이 생겼으니. 이때를 마냥 힘들기만 했던 시절이라 부르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되돌아보니 내 인생의 역경도 여름, 극복도 여름이었다.


더위를 가득 품은 여름의 기간이 길어진 것처럼 21세기 사회에서 부여한 ‘청춘’이란 시간도 30~40년 전 대비해서 길어지고 있다. 20대 후반만 되어도 완전한 어른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생존 자체가 힘들었던 옛날보단 20~30대 나이 20년을 온전히 생기있게, 풋풋하게 살아도 잘했다고 인정해 주는 시절이 아닌가. 그만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여름은 매우 길어졌고, 이 나날을 미워하다간 청춘을 내다 버리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평생 한 군데에서 살아야 한다면, 사막에서 살래요? 남극에서 살래요?” 여름에 관한 생각을 살짝 바꾼 내가 내놓은 답은 다음과 같았다. “에어컨이 있는 사막에서 살겠습니다.” 한없이 덥기만 한 여름은 여전히 사랑할 수 없지만, 더운 날씨 속에서도 행복한 순간이 있었던 여름을 조금 더 좋아해 보려 한다. 계절의 한가운데도 여름, 인생의 한가운데도 청춘. 미워하기엔 너무 소중한 날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