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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초이 Sep 15. 2019

하-드

아기가 태어나자 '하면 안 되는'것이 생겼다.

 나는 8살 때 동생이 태어나는 바람에, 동생을 처음 본 누나의 심정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축복을 받았다.


   낯섦, 뜨거움, 당황스러움, 도피, 혼란스러움 


 아기가 누워있는 방은 2월의 날씨에도 땀이 나게 더웠다. 아기는 빨갛고 말랑말랑했다. 혓바닥을 메롱 내밀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이 웃겼다.

 



 엄마는 94년의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이듬해 2월 아기를 낳았다.


 산부인과는 출산 전문 병원으로, 따로 신생아실이 없이 이제 막 태어난 아기를 엄마 옆에 뉘어두는 곳이었다. 처음 본 아기의 얼굴은 생각보다 판판하고, 머리카락은 보숭보숭하게 얇지만 긴 모습이었다. 울지도 않고 엄마 옆에 누워 곤히 자는 모습이 몹시 낯설었다. 아기의 얼굴을 기억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아기에게는 한마디 인사조차 건네지 못하고 엄마를 불렀다.


-엄마 ~

-엄마 내가 뭐 가져올까?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아이스크림 어떤 거?

-빵집에서 파는 거 하드

-알겠어. 무슨 맛?

-아무거나, 니가 좋은 거


우리 동네 크라운 베이커리에서는 투명한 비닐로 싼 하드를 팔았는데, 엄마와 나는 그 집 하드를 참 좋아했다. 엄마는 팥. 나는 바닐라 아니면 메론.


엄마방에 더 있고 싶었는데, 엄마가 힘들다며 눕는 바람에 나는 집으로 가야 했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아닌 나를 돌봐주셨다.


 다음날 아빠가 병원에 가자고 했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빵집에 들러야 했는데,


-아빠 빵집 가서 아이스크림 사가야 돼

-아이스크림? 안돼 엄마 아이스크림 먹으면 안 돼. 엄마는 지금 아이스크림 못 먹어, 큰일 나.

-아닌데. 엄마가......


 엄마가 나에게만 비밀스럽게 부탁했던 건데, 그게 엄마가 하면 안 되는 거라고? 나는 놀랐다. 엄청 많이.


 병원에 가서도 너무 속상해서 엄마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눈치도 없이 엄마가 하는 말을 진짜인지 알고, 엄마에게 '그러면 큰일 나는'걸 해줄 뻔 한 나 자신이, 도대체 뭐가 뭔지 혼란스러웠다.


 엄마는 왜 하드를 안 사 왔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아빠의 말이 진짜였던 거다.




 그때, 나는 본능적으로 알게 된 것 같다. 뭔가가 많이 바뀌었다고.


 엄마가 하는 말을 이제 둘로 나눠서 들어야 하고, 엄마는 두 귀로 한 명이 아닌 두 명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그러니까 나는 더 빠르게 엄마의 말의 속뜻의 속뜻까지 귀 기울여 들어야 하고, 앞으로는 확실히 할만한 얘기만 해야 한다.

 

 한다/안 한다 의 단순한 세상에서 이제는 해도 되나? 하면 어떻게 될까? 로의 고차원적인 세계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동생을 조금. 조금 많이 미워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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