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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초이 Aug 09. 2019

가위

어색한 적막, 나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달려갔다.

 네 살이 된 딸은 말이 트이기 전부터 수다쟁이였다. 밥 한 숟가락에 백가지 이야기를 풀어놓는 탓에, 남편은 늘 "혜윤아, 밥 먹어 밥"이라고 말하곤 했다. 집은 딸의 목소리로 항상 가득 차 있었다.

 그날도 딸은 혀 짧은 소리로 재잘거리며 혼자 인형놀이를 하고 있었다. 함께 놀까 하다가 밀린 설거지를 시작했다. 너무 더웠던 탓에 차가운 물을 세게 틀었다.

신나게 거품을 헹구고 있었는데, 문득 익숙하지 않은 적막이 느껴졌다. 찰나의 순간에 온갖 상상이 뇌리를 스쳤다. 고개를 돌려 마루를 보았다. 딸은 그곳에 없었다.


"아가? 우리 혜윤이 어디 있어?" 이십칠 평짜리 작은 아파트가 너무나 조용했다.


 평소 딸은 그 짧은 팔과 다리를 베란다 쇠창살 밖으로 내밀고는 했다. 수도꼭지를 잠그고 베란다로 달려갔다. 창문이 열려있었다. 뒷목이 쩌릿, 귀가 멍해지고 손끝이 차가웠다. 창밖을 내다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계속 아기의 이름을 부르며 화장실, 안방, 작은방을 확인했다. 땀이 흘러내려 눈이 따가웠다. 철컥하고 문이 열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현관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딸?"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안방으로 가 옷장문을 열어보고, 침대 밑을 확인하고, 화장실 욕조 안을 들여다 보고,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작은방에는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이 없었다. 딸의 방으로 꾸며주겠다는 계획은 있었지만 우선은 창고로 썼던 그 방에는 어두운 체리색의 문갑과 책꽂이, 남편의 책상, 담요를 널어놓은 의자와 구멍 뚫린 고무다라이 그리고 그 뒤에


 그곳에 내 아기가 있었다. 주변에는 짧게 잘린 가늘고 곱슬거리는 아기의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었다.


아기의 손에는 날카로운 가위가 들려있었고, 겁도 없이 그 끝을 이마를 향해 가져가고 있었다. 나는 아이가 무사하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몹시 화가 났다. '너가 어떻게 나를 이렇게 놀라게 할 수가 있어!' 나는 감정을 누르고 가위를 빼앗은 후 아기의 얼굴을 확인했다. 다행히 아무 곳도 다치지 않았다. 나의 소중한 보물, 첫눈처럼 깨끗한 내 딸 얼굴에는 흠집 하나도 나서는 안된다. 아기는 내 맘도 모르고 그저 웃기만 했다.


"어이구 우리 딸이 머리를 이렇게 잘 잘랐어"


딸은 재주도 좋게 자기 앞머리를 이마에 바싹 닿게 잘라놓았다. 못난이 인형 같아서 그재서야 마음이 놓였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서 숨소리도 내지 않고 가위질을 한 걸까. 거울이라도 좀 보면서 자르지. 이날 이후 딸의 앞머리는 유난히 천천히 자랐다.




 엄마도 엄마는 처음이었다. 아기의 숨소리와 목소리, 내뱉는 단어 하나에도 온몸의 감각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렇게 겁먹고, 놀라고, 슬프고, 행복해하며 딸을 키웠다. 그리고 그 딸이 서른두 살이 된 지금도, 엄마는 딸이 그녀의 유일한 약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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