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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초이 Aug 09. 2019

낙지볶음

매운맛 좀 볼래?


 엄마는 젊은 시절 친구들과 서울에서 먹었던 매운 낙지볶음이 생각났다. 대학생이 된 딸과 함께 피맛골 서린낙지에 가서 낙지볶음도 먹고, 서울 구경도 하고 싶었다. 재개발 이후 그 근처에는 가본 적이 없었다. 검색을 해보니 빌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때의 나는 방학에도 학회다 뭐다 하며 하루 종일 학교에서 살았고, 무엇보다 엄마랑 둘이 서울로 놀러 간다는 것은 왠지 좀 어색한 일이었다. 그래도 알겠다고 대답했다.


 한시 이십 분. 점심시간을 약간 비켜가서 그런지 가게는 한적했다. 엄마가 오래된 맛집이라고 하길래 허름한 곳을 기대했지만 막상 가보니 전부 테이블석인 꽤 모던한 느낌의 음식점이었다. 고민 없이 낙지볶음 이인분을 주문했다. 스댕으로 된 냉면그릇에 밥이 나왔고 콩나물, 자른 상추, 콩자반과 오뎅볶음이 밑반찬으로 나왔다. 낙지볶음은 타원형의 흰색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 나왔다. 양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엄마는 밥에다가 콩나물, 상추, 낙지볶음을 넣고 참기름을 두른 후 비비기 시작했다. 나는 낙지볶음만 빼고 밥을 비빈 후에 그 위에 낙지볶음을 올렸다.  


"많이 매워, 조금씩 먹어. 아니다, 그렇게까진 안 매워. 일단 먹어봐바. 진짜 맛있어"


 낙지를 올려 크게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이게 뭐야? 맛있다더니!' 낙지볶음은 매워도 너무 매웠다. 입안이 뜨겁고 얼얼해졌다. 다른 맛도 없이 그냥 맵기만 한데 대체 뭐가 맛있다고 여기까지 온건가 싶었다. 그래서 너무 맵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가게가 너무 조용해서 작게 "맵다"라고 한마디 한 후 나는 양념이 묻지 않은 콩나물을 먹었다. 야쿠르트 생각이 간절했다.


 엄마는 말없이 삼분의 일 그릇을 드시더니, 그제서야 너무 맛있다며 원래는 소세지볶음을 같이 먹어야 하는데 양이 너무 많을까봐 안 시킨 거라고, 다음엔 소세지볶음도 먹어보자고 했다. 엄마가 맛있다고 하니 나도 맛있게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콧물이 흐르고 머리가 지끈지끈하게 매운데도 끝까지 남김없이 먹었다. 속이 화끈거렸다. 엄마 여기 너무 맛있다.


 식사를 마친 후에 같이 더 놀다 헤어졌는지, 나는 바로 학교로, 엄마는 혼자 집으로 갔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저 우리 둘의 소중한 외식을 망치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과, 바쁜 척 학교로 가면서도 미안했던 마음만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나에게도 엄마는 유일한 콤플렉스이다. 엄마의 행복을 위해 뭐든 잘하고 싶다. 엄마는 늘 기쁘고 건강하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엄마가 슬플까봐 초조하고, 엄마가 아플까봐, 다칠까봐, 걱정할까봐, 나를 싫어하게 될까봐 걱정된다. 나에게 엄마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예쁘다. 엄마가 나를 영원히, 그녀의 일부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치만 그렇다고 항상 엄마한테 잘하는 건 아니었다. 랩으로 포장된 흰 찹쌀떡을 보면 괜히 눌러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처럼, 엄마에게 상처를 주면서 그 마음을 확인할 때도 있었다. 심지어 서른이 넘은 지금도 그렇다.

 

 얼마 전 엄마에게 낙지볶음 먹었던 날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엄마는 별 말없이 기억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 연기는 성공이었다. 괜히 학교에 꼭 가야 한다며 엄마를 혼자 집으로 보냈던 것도 많이 잊혀졌는가보다. 다행이었다.




  나는 싱겁고 고소한 맛을 좋아한다. 찐빵 속보다는 흰 빵 부분이, 만두소보다는 만두피가 좋다. 빠가사리말고 백숙이 좋다는 거다. 엄마는 매운 음식도 잘 먹는데 식성은 닮지 않은 듯하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은 꼭 함께 밥을 먹었다. 외식은 무조건 모두가 함께 움직이는 가족행사였다. 그래서 엄마나 아빠, 동생과 둘이서 먹은 밥은 절대로 잊히지 않는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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