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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초이 Aug 09. 2019

떡국냄비

펄펄끓던 냄비가 그대로 쏟아졌다

 요즘 원준이는 홀딱 벗거나 나시 한 장만 입고 지낸다. 날씨가 더워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 기저귀를 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기는 챙피한줄도 모르고 쇼파를 오르락내리락, 책상을 오르락 내리락, 식탁 의자에 올라가 뒤로 넘어갈랑 말랑 하면서 놀았다. 그러다 넘어져 다치기도 하는데 또 금방 잊어버리는 것 같다.


 그 날은 일요일을 맞아 모두가 늦잠을 잤다. 아침 겸 점심으로 엄마가 떡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나는 마루의 초록색 쇼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었다. 원준이는 부엌의 엄마 옆에서 알짱거리더니, 곧 식탁 의자에 올라서서 혼자 무슨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다 됐으니까 숟가락 놔, 혜윤이도 와서 먹어"


 나는 리모콘을 쥐고 일어나 눈으로는 여전히 티비를 보고 있었다. 아빠는 손을 씻고 수저통에서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엄마는 냄비채 놓고 덜어 먹어야 맛있다며 뜨거운 냄비를 들고 식탁을 향했다.


 원준이는 의자에서 일어나서 평소처럼 의자를 까딱 까딱, 뒤로 넘어갈랑 말랑 하고 있었다.


 "아악! 안돼! 원준아!"엄마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


 그날따라 원준이는 흥이 나서 평소보다 의자를 더 뒤로 넘겼다. 엄마는 왼손을 뻗어 넘어가는 아기를 잡았다. 오른팔로만 들기에는 떡국 냄비가 너무 무거웠고, 왼팔로만 지탱하기에는 아기가 빠르게 넘어졌다. 아빠가 달려가기엔 상황이 긴박했고, 내가 그곳을 바라보았을 땐 이미 원준이의 등으로 펄펄 끓는 떡국이 쏟아진 후였다.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아기의 등에 하얀 떡 네 조각이 붙어있었다. 엉덩이의 몽고반점이 유난히 크고 퍼렇게 보였다. 공기 중으로 이불! 차키! 하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져나갔다.


 차병원 응급실에 가서 아기를 보여주자마자 의사 선생님이 원준이를 들고 싱크대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생수통만한 알콜통을 열고 그대로 아기에게 들이부었다. 아기는 깜짝 놀라 온몸을 떨며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 뒤로 원준이는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다. 거즈를 붙였다 떼었다 수백 번을 그렇게 했다. 의사 선생님은 원준이가 아기여서 회복이 빨라 다행이라고 했다. 얼굴이 아니라 등이라서, 남자아이라서 다행이라고 했다.


 화상치료가 끝나고 보드라운 살이 올라온 뒤에도 원준이의 등에는 떡이 붙었던 자국이 하얗게 남아있었다. 엄마는 아기의 등을 쓰다듬고, 조심스럽게 크림을 발라주었다. 다치치 말고 건강히만 자라 달라고 했다. 엄마는 아기한테 많이 미안해했다.


 언제부턴가 동생의 등에 떡국 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한 번도 데인적 없는 사람처럼 원준이는 뜨거운 떡만둣국을 잘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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