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부는 아가씨와 사나이가 눈이 맞으면

[제24편] 필릭스 첫 번째 이야기

by 하이디함


이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을 때 쓰기 시작했던 남자를 기억하는가?

네덜란드에서 온 디지털 노마드 트여르크다 - [제3편] 참고.




첫 번째 크리스마스 저녁 - 지난 연인들과의 재회


트여르크에 대해 요약하자면, 2년 전 처음 그를 만났고 2-3개월 후에 낭만적인 관계는 끝이 났지만 그 이후로 쭉 제법 성숙하고 점잖은 친구 관계를 유지했다. 베트남에서 2년을 살면서, 두 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냈는데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트여르크가 그와 함께 지내는 무리의 사람들이 홈파티를 할 거라며 초대해주었고, 이미 필자와 트여르크간의 핑크빛 기류가 끝난지 한참 후에 그의 친구로 초대됐던터라 파티에서도 트여르크와는 붙어 앉지 않고 구석에서 알아서 사회적 스킬을 발휘하며 구석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무리는 서로 알고 지난지 최소 6-8년은 된 프랑스 남자들과 그들과 장기적으로 사귀고 있는 각종 아시아 국적(베트남, 태국, 일본)의 여자친구들로 구성됐었다. 그래서 필자는 본래 쇼맨십이 좀 있는 편이지만 그날만큼은 크게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얌전히 무리를 관찰하며 저녁을 보냈다.


원래 그 날 찍은 단체사진이 한 장 있었는데 못찾겠어서 그냥 AI 이미지로 대체. 대충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그 파티에 갔을 때 처음 정문을 열어줬던 사람이 필릭스다. 혼자 돌아다니는 사람을 보면 항상 챙겨주는 사교적이고 친절하면서도 선수 같아 보이지 않는 순수한 얼굴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부담 없이 그에게 마음을 열고 쉽게 다가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187cm의 거구에 그의 손, 팔, 코, 수염도 다 건장한 남성 같았지만 헤이즐 색깔의 그의 머리칼과 초록색과 붉은색이 섞여 있는 그의 홍채색깔 그리고 그의 어딘가 조금 라따뚜이 같은 그의 미소가 그를 어린 소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짙은 프랑스 발음의 영어로 어색하게 "안녕, 여기 어떻게 오게 됐어요?"라고 먼저 말을 걸어주던 모습이 기억난다.


사실 나는 파티에 가기 전에 파티구성원에 대해 사전조사를 이미 조금 했었고, 이 무리의 주축으로 보이던 필릭스와 내가 페이스북 공통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전에 한국에서 인턴을 했었을 당시 선임 중에 한 분이 그의 페이스북 친구였다. 그래서 그에게 이 사람을 알지 않느냐 하며 얘기를 했었는데, 세상 참 좁다며 예전에 한국 여행을 갔을 때 친구의 친구로서 만나 알게 됐다고 알려줬다.


세상 생각보다 좁은 거 맞는 것 같다. 게다가 베트남 내에 외국인 거주자들의 세상은 훨씬 더 좁다. 서로가 서로의 전여친 전남친과 만나고 헤어지고 친구가 되고, 이 무리가 프랑스 무리여서 이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참 복잡했다. 나 또한 트여르크와 지금은 친구 사이로 그 자리에 갔지만 그래도 이전에 사랑을 나누던 사이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 무리의 확장 버전에는 [제6편]에 나온 프랑수아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그날 파티에 가서야 알게 됐다. 나와 만나는 도중에 다른 일본 여자를 만나고 결국 그녀를 선택한 프랑수아.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이후로 그는 다시는 나를 찾지 않았는데. 그 파티에서 그와 그가 선택한 일본 여자가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보았다. 놀랍게도 전-혀 마음이 시큰거리지 않았다. 정말 멀쩡했다! 만약에 그 일본 여자가 내가 생각하는 매력적인 여성상에 부합한다면 그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워낙 비교 불가할 정도로 다른 스타일의 여성이라 전혀 열등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안심이 됐다. 이전에 그를 사랑한다고 말했던 내 자신이 호르몬의 장난에 놀아나 성급했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 수치스러웠을뿐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또 사랑하지 않았다고 믿을 수 있지? 그때는 분명 사랑이었는데.. 그날 그를 보며 '대체 무엇이 사랑인가'에 대한 질문에 또 말문이 막혀 버렸다.


- 첨언하자면, 그날 크리스마스 파티 이후로 또 1년이 지나 크리스마스를 맞이했고, 지금 프랑수아는 일본 여자와 혼인신고를 하고 3개월된 남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 필자는 심지어 그 일본 여자와 나름 친해져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시점에서 바로 전날 그녀와 히히덕거리며 농담을 나누었다.






크리스마스 파티날 프랑스 무리를 관찰하며 트여르크에게 질투심을 느꼈다. 그도 나도 같은 시기에 호치민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도 나도 같은 방법으로 데이팅 앱을 깔고 사람들을 알아갔는데 그는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좋은 친구들 모임을 갖고 있었고 필자는 그러지 못했다. 알고 보니 트여르크는 프랑수아의 일본 여자와 데이팅 앱 매칭이 됐었는데 그 둘은 만나자마자 연인관계로는 발전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친구가 되었고, 호치민에서 오래 살아온 일본 여자가 그녀가 친하게 지내오는 프랑스 무리의 모임에 트여르크를 소개해줬던 것이었다. 필자는 사실 그 프랑스 무리가 퍽 마음에 들었다. 나이도 적당히 다들 30대 초반과 중반이라 그동안 만나온 애기들(시몬.. 포켓몬남.. 마르코.. 최소 6-10년 연하남들..)과 확실히 성숙하고 점잖은 정도의 차이가 있었고, 다들 멀쩡한 직장에 각자의 애인들과 오래 되고 안정적이고 이상적이게 보이는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4-6년은 여자친구와 잘 사귀고 있는 그 프랑스 남자들의의 모임에서 필자가 존재감을 드러내며 사교적 스킬을 발휘하기에는 매우 한정적이었다. 결국 필자는 호치민을 떠날 때까지 그 무리와 더 교류를 하지 못했다.







결혼식에서의 재회


그 이후로 11개월이 지나고, 필자는 하노이에서 살게 된지도 이미 4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 호치민에서 근무하던 시절 그나마 친하게 지내온 베트남 직원친구가 오래 사겨온 프랑스 남자와 결혼을 하게 돼 초대 되었고, 결혼식은 호치민에서 40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붕따우에서 진행됐다. 지난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봤던 그 프랑스 무리를 다시 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베트남 직원친구의 남편될 사람이 프랑스 사람일지언정 딱히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고, 그 무리와 지내는 모습의 사진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혼식 전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 필릭스였다.



어? 아는 사람이네? 그런 느낌뿐 그 이상도 아니었다.



편하게 먼저 “엇 우리 작년 크리스마스 저녁 때 봤었어. 그땐 내가 머리가 길었는데 지금 짧기도 하고, 그때 내가 구석에 있었어서 기억을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야.” 라고 말했다. 그러고서는 “아, 혹시 내 친구 제이드 아니? 걔도 프랑스인인데 난 걔를 먼저 봐야 해서 그럼 이만” 하고 말 두 마디 정도만 가볍게 나누고 그를 지나쳤다. 정작 필자의 친구인 제이드는 반프랑스인 반베트남인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아는 어르신도 많고 말도 많고 필자와 시간을 보낼 수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에 불려가 바쁘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신랑의 측근인 프랑스 무리, 신부의 측근인 베트남 무리가 두 무리로 갈라져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필자는 어느 무리에도 속하지 않아 벙찐 상태로 핑거푸드와 맥주만 열심히 흡입했다. 그러던 중 4살 정도 되어 보이는 프랑스인 꼬마가 필자를 신기하게 쳐다보더니 손가락 하트를 날려줬다 (심쿵). 필자는 소녀에게 필자의 필살기인 하트 7종을 보여줬고, 그 이후로는 언어를 요구하지 않는 술래잡기 놀이를 하다보니 그 자리에 있는 2-4살된 어린이들을 피리 부는 사나이 마냥 몰고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더 나이가 있어서 말을 할 줄 아는 청소년급 프랑스 아이들을 몰고 다닌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는데 그게 또 필릭스였다. 그가 애들과 말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애들이랑 어울리는 그의 모습이 퍽 보기 좋았다. 다정한 그의 표정과 목소리 그리고 어른 행세를 하지 않는 진솔되고 겸손한 모습에 자꾸 눈이 갔다. 그러다가 어린이 무리들이 애기부터 청소년까지 한 곳에 모여 츄파춥스를 까먹기 시작했는데 그때 그와 눈이 마주쳐 서로 싱긋 - 웃음을 나누었다.








이거 그린라이트 맞나요?


그 다음날인 결혼식 당일.

그가 앉은 프랑스인 무리의 테이블과 내가 앉은 테이블은 떨어져 있었다. 자리에 앉는데 멀리 떨어져 있던 그가 나를 보고 다시 싱긋 웃고 손을 흔든다. 문맥상 그가 내게 딱히 저 정도의 반가움을 보일 일은 없는데.. 나에게 인사를 하는게 맞는건가 싶어 뒤를 돌아보았다. 엥? 나한테 인사를 하는게 맞네?.. 뭐지? 그래 안녕이다 하고 덩달아 자신 없는 손짓으로 인사를 해줬다.





결혼식은 바닷가 바로 앞의 야외에서 진행 됐는데 온 가족과 친구들이 무대에 나와 차례대로 사랑과 축하의 메시지를 낭독하고 노래를 불렀다. 저녁식사 코스가 대접되는 내내 그렇게 무대에 사람들이 오고 가더니 결혼식 행사가 다 끝나고 나서는 DJ가 나와 새벽 2시가 되어 가도록 춤 잔치가 벌여졌다. 재미있는 점은 어린 청소년들도 밤이 깊어질 때까지 부모님과 함께 무대에서 몸을 흔들어 제꼈었다. 웃음과 행복이 넘쳐나는 밤이었다. 필자도 흥부자로서 술을 마신 뒤 열심히 몸을 흔들었지만 나중에는 프랑스 전통 민요와 율동이 나오길래 무대에서 좀 벗어나 이 날을 온 마음으로 즐기는 프랑스인들과 베트남인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무대 중앙 쪽에 있는 필릭스가 한 손을 이마에 측면으로 대고 두리번 두리번거리며 멀리 있는 누군가를 찾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결혼식 춤잔치 내내 주기적으로 이렇게 누군가를 찾았는데 정말 예상 외로 그렇게 찾다가 나를 발견하면 내가 있는 구석으로 와 한 두 마디 정도를 나눴고, 제대로된 대화를 나눴다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어색하게 두 마디 이후에는 필자로부터 벗어났다.


어떤 느낌이었냐면, 원래 찾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멀리 찾아 보고 있었는데 마침 나랑 눈이 마주쳐서 아는 사람이니까 일단 이 사람한테 가자! 라는 생각으로 내게 오고, 몇 마디 나눴지만 어색해서 떠나는? 모습 같았다. 그런데 그 상황이 꽤 잦았다. 다섯 번은 그랬을 정도로?


워낙 어색했었고 미숙했어서 커넥션이라고 느끼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밤이 늦어져 술잔을 채우러 갈 때 바에서 그와 마주쳐 또 두 세 마디를 나눴고, 그때가 되어서야 그가 내게 ”우리 저기 앉아서 얘기할래?“ 하고 제안했다. 아마 그때 처음으로 필자는 ’엇? 뭐지? 시그널인가?‘ 하고 느꼈던 것 같다. 그때 처음으로 두 세마디를 넘기는 수준의 제대로된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이미 어느 정도 취해 있어서 그냥 머릿 속에 항상 떠다니는 말들을 필터 없이 뱉어내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반무의식적/반의식적 플러팅이었던 것 같다. 그게 뭔 뜻이냐면 그와 내가 사이공과 하노이라는 다른 두 도시에 산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감안해 ‘짧은 기간 동안 만나는 사람이어도 베프가 될 수 있고, 능력과 의지만 있으면 서로의 인생의 교차점이 생길 수 있도록 맞춰갈 수 있다’는 얘기를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에게 우리는 더 깊어질 수 있다고 설득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얘기를 하면서도 나는 그 대화에서 그에게 제대로 고리(후크)를 걸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가끔 이런 대화형 설득적 플러팅을 할 때 상대를 ’감았다‘는 느낌이 확고하게 들 때가 종종 있는데 그의 경우는 그러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분명 관심이 있었는데 영 그가 말로 그것을 조화롭게 받아치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그의 친구들이 와서 자꾸 우리 대화에 깽판을 쳤다. 필릭스가 워낙 여자랑 단둘이서 자리를 잡고 말하는 성격은 아닌지라 친구들이 그 모습을 보고 자꾸 놀렸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춤을 추러 같이 무대 중앙으로 갔다.


그렇게 열심히 다른 사람들과 다같이 조화롭게 춤을 추고 (난 항상 열심히 춤을 추지) 이제 그만 집에 가려했다. 어차피 결혼식 일정 중에 그 다음날 아침식사도 포함되어 있어 굳이 작별인사를 나눌 필요도 못느꼈다. 조용히 자리를 뜨려 가방을 들고 몇 걸음 걸어 나갔는데 그때 필릭스가 멀리서 다급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그는 내가 있는 곳으로 헐레벌떡 달려 오더니 조심스럽고 공손하게 내 연락처를 물어보았다. 그게 나한테는 처음으로 확실히 명확한 시그널로 다가왔고, 선을 넘어 용기를 내어준 그가 멋있어 보였다. 그때 그 장면이 또 예술이었다. 그의 뒷배경으로 왼편에는 칠흙같은 어둠 속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고, 오른편에는 야외 정원의 오렌지빛 조명등이 비추었다. 반투명한 헤이즐색 머리칼과 수염을 가진 그는 아이보리색의 큼직한 린넨 셔츠를 입고 있었고, 누가 봐도 정말 선하고 성실한 인상으로 꾸밈 없이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연락처를 알려준 뒤, 그와 더 시간을 갖기 위해 그가 친구들과 다같이 밤에 뭔가 더 할 계획이 있냐고 물었고, 나도 끼고 싶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노래방에 갈지도 모르겠다고 대답했고, 그는 허겁지겁 노래방에 갈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K-pop 국민의 자존심


그렇게 나는 어색한 프랑스 무리에 껴서 노래방에 갔다. 필릭스는 정말 바보 같았다. 처음에는 내 옆자리에 앉아서 내가 독일에서 살다가 왔다는 것을 기억하고 독일 노래를 듀엣으로 같이 부르자고 했다. 아니....... 독일에서 살다온거 기억해준건 고마운데.. 독문학과 출신이 부를 수 있는 독일노래는 기껏 해봤자 메탈곡인 람슈타인(Rammstein)의 "Du Hast" 이런 노래뿐인데.. ㅜ 우리 이제 서로 막 알아가는 단계인데 이런 노래를 얼굴 마주보고 노래방에서 부르자고?..



하.. 나는 그럴 수 없어.. 잘 모르는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독일 메탈 돌아이가 될 수는 없는거잖아.. 게다가 "증오한다"는 가사 부분밖에 모른다고..... 난처한 표정으로 독일노래를 잘 몰라서 못부를 것 같다고 하자, 필릭스는 실망한 표정을 보였다. 나는 노래를 잘 부르고 싶었다. 아무 노래나 듀엣으로 부르고 싶지 않았다. 나름 친구들 사이에서는 노래꾼으로 알려져 있어서 노래에 대한 자존심이 있기도 했고, 특히나 잘 모르는 콧대 높은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한국인으로서 K-노래실력을 뽐내야 할 의무감을 느꼈다. K팝의 나라인데 당연히 잘 불러야지. 샹송의 나라의 기를 꺾어줘야지! 그래서 인어공주의 'Part of Your World'를 예약했다 (잉? K팝의 나라라며..). 처음 나레이션 부분에서 뮤지컬 연기하듯이 우습게 시작하다가 디즈니 목소리로 반전미를 선사하는 전략적인 노래다. 내가 혼자 부를 노래를 예약하자 필릭스는 내 옆자리에서 구석 자리로 갑자기 자리를 옮겼다. 잠깐 거기 있는 사람과 대화하고 돌아올 줄 알았는데.. 뭐야? 왜 계속 거기 앉아 있어? 삐진거야?


웃긴건 필릭스를 신경 쓸 겨를 없이 Part of Your World 를 완창한 나는 프랑스인들의 동경심 어린 눈빛을 한 몸에 받아 완전 대스타가 되어 있었다. 콧대가 높을거라고 생각한 프랑스인들이 다들 하나 같이 '와..와..!!!' 이러면서 하나 같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화면 속 가사와 내 얼굴을 자꾸 번갈아 보면서 엄지를 척척 내밀며 엄청난 리액션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중에 유독 노래를 잘 부르던 '월터'라는 프랑스 남자는 내 노래실력을 보고 갑자기 나에게 더욱 관심을 보이며 내 옆자리로 이동해 앉았다. 그러더니 자기가 부를 노래 중에서 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냐며 상의를 했다. 나는 월터랑도 듀엣을 부르지 않았지만 우린 나름 노래방에서 친해져서 편하게 농담을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래도 의리 있게 항상 필릭스를 살폈는데 필릭스는 영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엥? 그린라이트인줄 알았는데 그냥 사회성 좋은 사람이라내가 혼자 다니지 않게 신경써준다고 친절했던건가?.. 왜 다른 남자랑 더 친해지게 두는거지?.. 헷갈렸다.






친구들의 지원


그 다음날 아침.

결혼식 전부터 친한 친구가 한 명 있어서 (그동안 그 친구가 결혼식 사회자라 결혼식 내내 바빴었음) 그 친구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는데 지난 밤 제법 친해진 월터와 노래방에는 가지 않았던 알렉스가 우리 테이블에 조인했다. 알렉스는 내 옆자리에 앉더니, "노래실력이 아주 대단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필릭스가 좀 답답하지만 되게 생각도 깊고 괜찮은 애야"라고 말했다. 정작 그 '필릭스'씨는 우리 테이블에 자리가 있는데도 우리 쪽으로 몇 번 쭈뼛쭈뼛 쳐다보다가 다른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알렉스는 밥 먹고 커피 마시는 내내 '필릭스 마케팅'을 했다. "우리 필릭스가 말이죠..? 조금 별나기는 해요. 그를 좋다고 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는 편인데 자기가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 엮이지 않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기준이 아주 까다로운 아이예요. 그런데 우리 필릭스가 얼굴은 순수해보여도, 마냥 순수하지는 않답니다? 알 건 다 아는 녀석이에요 허허!" 이 말을 듣고 알렉스와 나는 동시에 필릭스를 봤는데 필릭스가 나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하트총을 날렸다.


밥을 다 먹고 땀을 식히려 선풍기 앞에 혼자 가서 바람을 쐬고 있었는데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필릭스가 또 내게 어색하게 다가와 같이 바람을 쑀다. 그러다가 서로 숨 막히는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는 또 자리를 벗어났다. 이제 모든 결혼식 행사가 끝나고 호치민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나는 이미 내 친구와 함께 버스 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필릭스가 버스에 들어오자마자 또 누군가를 찾는 모습을 보이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윙크를 날렸다. 그래도 그동안 보여준 모습 중에 제일 도발적(?)이라 나도 당황한 나머지 피식 웃고 얼굴이 붉어져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뭐야 정말? 뭐하자는거야? 플러팅 맞는거야? 난 어차피 하노이에 사는데 이제..! 자주 볼 수도 없을텐데? 지난밤 나의 반무의식적 플러팅에 그가 설득 당한건가? - "짧은 기간 동안 만나는 사람이어도 베프가 될 수 있고, 능력과 의지만 있으면 서로의 인생의 교차점이 생길 수 있도록 맞춰갈 수 있다"는 얘기말이다. 내가 다른 도시에 살아도 상관 없이 나와 좀더 깊은 관계로 발전하고 싶은건가?' 버스로 이동하는 내내 의문만 가득한 상태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려고 했다. 그런데 또 막상 호치민에 도착한 이후로는 그저 심심하고 간결한 작별인사만을 나누었고, 다른 특별한 신호를 느낄 수 없었다.


다시 하노이로 돌아가야 하는 필자는 허무한 마음으로 공항에 갔다. 뭐 그래도 짧은 결혼식 여행이었지만 필릭스 덕에 내 가치를 스스로 높게 느낄 수 있어 기분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공항이 주는 센치함을 이용해 그에게 짧지만 귀엽고도 도발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Hey Felix, it was nice to meet you during this short trip.

Just wanted to say, I was a bit shy in front of you, as I found you very charming!

Wish I had more time to get to know you a bit better, but oh well...!

Maybe if lucky, next time :)"


- (번역) 안녕 필릭스, 이번 짧은 여행 중에 너를 만나서 좋았어.

사실 내가 네게 매력을 느껴서 네 앞에 있을 때마다 좀 수줍었던 것 같아.

너를 좀 더 알아갈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운이 좋다면, 다음에 기회가 있을지도 :)



필릭스는 적당히 담백하게 대답해줬다.



"I wish we had more time to discuss things and get to know each other better. I'm lucky, so no doubt we will meet again soon :) Bonne nuit!"

- 나도 우리가 좀더 서로를 알아가고 얘기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어.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니 우리가 다시 만날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 잘자!






그렇게 필릭스와의 해프닝은 결혼식 여행에서 끝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로부터 2주 후,


필릭스에게 메시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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