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편] 마르코가 준 상처 후 깨달음
눈물의 오토바이 주행 이틀 후,
한국으로 휴가를 갔다.
좋아하는 커플의 결혼식에 갔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나도 참 문제인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의 가치를 확인시켜주지 않으면 자꾸 습관적으로 나의 가치를 의심하게 되는 것 같다. 핑계를 대자면 어려서부터 부모님한테 칭찬을 많이 받지 못했다. 필자는 우등생이었던 반면 필자의 여동생은 항상 이런 저런 문제로 사고를 내기 일수였고, 그런 극반대의 두 자식을 가진 부모님께서는 동생보다 선천적으로 많은 능력을 갖고 태어난 필자가 오만해질까봐 걱정이셨나보다. 매번 받아쓰기를 90-100점 사이로 받았는데 90점을 받아도 왜 100점을 못받냐는 핀잔을 받았어야 했다. 어느날 88점을 받았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매해 생일에는 - 그날만큼은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는데 -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께서 생일카드에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고 적으셨다. 고작 초등학생이었는데. 그 어떤 부모도 완벽할 수 없고, 필자의 부모님이 필자를 잘못 키웠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훌륭하게 가르쳐주신 부분이 훨씬 더 많지. 그런 점들은 하나도 얘기하지 않고 이 부분만 얘기하는 것을 아시면 많이 억울하고 서운해하시겠지. 그런데 세상을 처음 알아가는 어린이의 경험은 이미 많은 판단을 내린 어른의 경험과는 많이 달라서 그들이 경험하는 일들 중에 어떤 하나의 사건 또는 말이 마음에 영원히 심어져 그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자존감을 잔뜩 충전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도대체 왜 나의 애정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 그걸 떠먹여 주고 있었나 싶었다. 게다가 하루 정도 한국에 있을 때 재택으로 마르코랑 같이 일 마무리를 했었어야 했는데, 사진/영상 쪽에서의 뛰어난 개인 실력에 비해 그의 팀워크 능력이 충격적으로 미숙한 모습을 보면서 그를 다시 보게 됐다. 긴급 직원으로 단기 파견만 경험한 사람이라 어떻게 해야 중장기적으로 자기와 다른 생각과 배경의 사람과 협조적 관계를 이어가는지 배우지 못한 것 같았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말을 할 때는 6살의 나이 차가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일을 같이 해보니 얼마나 자기 멋대로이고 참을성이 없는 사람인지 느끼게 되었다. 여태 블로그를 쓰면서 작성한 사람 중에 가장 부정적인 평가이지 않을까 싶다. 그 정도로 필자는 웬만하면 이곳에 아름다운 모습만 기억하고 작성하려고 애쓰지만 마르코는 정말이지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퉁명스럽고 무례한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였다.
마침 그때 넷플릭스에서 'Nobody Wants This'라는 신작 드라마가 나왔고, 그걸 보면서 내가 만나려고 추구해야 하는 사람은 아담 브로디 같이 성숙한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마음이 떠나다 보니 베트남에 돌아와 다시 그를 마주했을 때 그에게 외교적으로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이 그닥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있었다면 상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어차피 일주일만 버티면 떠날 사람이니까'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chill~하게 대해줬다. 우리 회사는 로그인 보안이 심한 편이라 숫자 인증을 매번 해야 하는데, 어느 날은 마르코와 포켓몬남과 셋이 있는 자리에서 한 노트북으로 자료를 보다가 로그인을 해야 했다. 그때 숫자 '69*'가 나오니까 포켓몬남이 "Hey, look!" 이러면서 둘이 낄낄대는데 그 수준을 보니 한순간에 ick** 을 느꼈다. 와, 내가 이런 얼간이들을 만나고 있었다니.. (언어를 굉장히 순화했다.)
*69는 한 연인의 몸 위에 또 다른 연인이 머리와 발의 위치를 거꾸로 하고 오른 채 서로의 생식기를 애무해주는 모습을 형상화한 숫자라고 볼 수 있다. 그걸 모르고 20살 때 69가 크게 쓰여있는 후드티를 입었다가 미국 살던 오빠가 엄청 놀렸던 적이 있다.
**ick을 한글로 직역하자면 '우웩'인데, '정이 떨어졌다'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이 ick 도 Nobody Wants This 의 한 에피소드에서 다룬다. 정말 재미있게 본 드라마지만 이 에피소드만큼은 남주가 너무 완벽한데 왜 여주가 남주에게 ick 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 없었음.)
그제서야 'Intimacy without commmitment (친밀하지만 헌신하지 않는 관계)'의 개념에 대한 판단이 섰다. 어째서 나는 그게 더 성숙한 서양식 연애일거라고 으른의 연애일거라고 생각했었던건지. 그동안 나는 그냥 이 문화에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었던거구나 싶었다. 이것은 성숙한 연애가 아니라 오히려 '내 맘대로 할래 응애' 같은 애ski 연애였다. 결국 어느 한 상대방의 희생을 강요하게 되는 관계였다. 돌이켜보니 마르코가 그날 다같이 술마시고 우리 집에 따로 빠지던 그날 내게 삐졌던 이유가, 그때 내가 그에게 너무 기대를 안 하고 쿨하게 대해서였던거 같았다. 그래놓고서는 그 다음날 그렇게 군 이유는 갑자기 또 퍼부어진 애정에 (친구의 말을 빌려 사용하자면) 무서워져 방어기제가 생긴 것이다. '무서워서'라는 말이 또 보호 본능을 자극할 수 있는데 절대 동정치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면 나는 누가 무서워할만 공격적인 행동을 한 적이 없고, 본인 스스로 무서워서 도리어 공격적인 자세로 내게 상처를 주는 행위자라면 그건 그냥 상종 못할 애ski이고 골칫덩어리인 것 뿐이었다. 그걸 어떻게 평강공주처럼 감싸주고 고쳐주고 싶었던 내 마음이 오지랖이었던거다. 바뀌고 싶은 사람은 손을 내밀어 도움을 구한다. 그는 내게 도움을 구하지 않았고, 나로 인해 바뀌지 못할 놈이었다. 그래, 내가 이곳에서 intimacy without commitment 를 외치는 애들을 만나면서 그나마 나아진 게 있다면 그거구나.. 그제서야 나는 평강공주 신드롬을 극복했다.
본래 마르코는 필자가 한국에서 돌아온지 일주일 안에 출국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얼라? 그게 또 일주일이 연장됐다. 그 재수없는 자식을 계속 회사에서 봐야 할 생각에 짜증이 났지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사도 1년 넘게 견뎌 왔는데 일주일 정도는 너그럽게 참을 수 있지! 그 일주일 사이에 마르코는 떠나간 필자의 마음을 느꼈던 것일까, 또 주말이 되자 필자에게 같이 맥주를 마시자고 불렀다.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필자는 워낙에 거절을 잘 못하기도 하고, 그가 하노이에서 보내는 마지막 주말이라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아 나갔다. 나가보니 포켓몬남과 포켓몬남의 친구도 같이 있었다. 도착했는데 마르코는 포켓몬남과 둘이서만 얘기를 하고, 필자는 알지도 못하는 포켓몬남의 친구와 얘기를 해야 하는 구도였다.
역시 구릴 줄 알았다. 다행히 미리 구릴 걸 예견하여 안전장치를 준비했다. 나는 그와 보내는 마지막 주말이니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의리로 맥주 한 잔만 딱 비우고 그 자리를 떠날 생각이었다. 마르코에게 치욕적인 기분을 선사하고 싶어 친한 친구에게 미리 상황을 얘기해 구원의 손길을 요청했다. 친구는 40분 후 필자를 데리러 왔고, 그날 풀메이크업에 원피스를 입은 필자와 친구는 도도하게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게 시간낭비라는 듯한 느낌을 은근히 주면서도 겉으로는 우아하게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말하며 그 곳을 나갔다. 정말 후련했다!
며칠이 더 지나 결국 마르코의 마지막 출근일이 되었다. 필자의 작은 복수 이후로는 별로 교류를 하지 않아 그냥 조용히 남들과 다를 것 없이 작별을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퇴근시간 무렵 그가 내 자리에 왔다. 한 달반을 함께 근무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였다. 팀과 동떨어져 있어 오피스의 다른 측면에 있는 필자 자리까지 찾아오다니. 그는 의자를 구해 필자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고서는 작별인사를 시작했는데 웬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1시간을 그렇게 같이 얘기를 나눴다. 요약하자면 '나쁜 감정 갖지 말자, 우리가 일하고 있는 이 세계는 워낙에 작으니까'라는 말이었지. 그렇게 표면적으로는 좋게 끝났지만 나는 일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그는 상종 못할 사람임을 이제 충분히 느끼고 난 후였다.
그래, 그를 만나면서 서로 통하는 무언가를 느끼긴 했었어. 영어로 말하자면, "Sure there was chemistry." 그런데 통하는 게 있었다고 그거 하나만으로 우리는 스스로는 너무 과소평가하고 상대를 너무 과대평가한다. '나랑 이런 부분에서 맞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나의 이런 부분과 맞을 수 있는 그는 정말 특별한 사람일거야. 다시는 이 정도로 나랑 맞는 부분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없을지도 몰라'라고. 놀랍게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포용하고 맞춰 주고 인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필자는 필자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 내가 그간 만나온 사람들을 다 이해하고 포용하고 사랑을 줄 수 있었던 것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스스로가 많은 사람과 맞춰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거면서 그게 드물게 찾아온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해악이다. Chemistry (서로가 맞다고 생각하는 부분) 하나로는 좋은 상대의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 그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이번 만남의 교훈이 된다.
어디서 본 메시지에 의하면 내가 정말 추구하는 사람의 특징을 40가지 정도 세밀하게 적어보랜다. 필자도 '성숙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하지만 좀더 세분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싶었다. 그런 특징의 사람을 설정해놓아 다른 사람을 운명적 낭만적 만남으로 혼동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필자는 나타나는 모든 대상들을 상대로 내가 그들에게 머물고 싶은 사람이 되길 바랐던 것 같다. 그리고 연애탐구를 통해 어떻게 해야 가벼운 관계를 가진 사람이 나를 보고 아 이 여자랑 사귀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그 '방법, 이론, 전략'을 터득해야겠다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얼마나 말이 안 되는 목적이었는지 느끼게 되었다. 그래, 결국 그 유레카 같은 전략을 마스터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그 이론은 높은 확률로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이 되는 방법일텐데. 그게 나의 해결 열쇠가 될 것인가? 그런 식이라면 만나는 누구에게든 그 방법을 적용하고, 만나는 누구든 운명 같다고 생각하게 될텐데? 희귀한 것을 마주하려면 희귀한 것을 흔한 것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지 않나가 최대의 교훈이었다.
나는 '친밀하지만 헌신하지 않는 관계'를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헌신하는 사람이었다. 마르코와의 만남으로 인해 더는 내가 아닌 다른 것이 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무리하게 이해하려 하고 그들의 니즈에 맞춰 나를 변화시킬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연인을 만날 확률을 늘리고 싶은 게 아니었다. 정말 특별한 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지.
그렇게 당분간은 마음을 정비하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르코가 하노이를 떠나 출국하는 날, 필자는 마침 직원친구 결혼식에 가게 되는데.. 아니 저는 정말 연애 생각이 하나도 없었는데요. 어떻게 새로운 사람이 또 알게 모르게 등장하는지요? 참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기는 하는구나.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감사해야겠지?
다음 편부터는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낸 필릭스와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