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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또 Mar 29. 2017

움찔거림의 미학

똑똑한 세상 속 똑똑하지 못한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3. 눈치

  커뮤니케이션이란 뭘까. 위키 백과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끼리 서로 생각, 느낌 따위의 정보를 주고받는 일. 말이나 글, 소리, 표정, 몸짓 따위로 이루어진다.'

가장 단순하게, 너와 내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일환이다. 단순히 입에서 내뱉는 말뿐만이 아니라, 이야기하면서의 상대방의 표정, 손짓 몸짓까지 함께 이루어진 종합적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 커뮤니케이션이란 서로가 속해있는 공간과 시간의 모든 것이 어우러져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는 일이다. 이를 살짝 다르게 생각해본다면,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상대방과 나의 공간과 몸짓, 표정 만으로도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전혀 모르는 절대다수가 모여 있는 대중교통에서도 나도 모르게 다수의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친구나 직장 동료도 없이, 그리고 통화할 사람도 없이 홀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우리가 입을 열 일이 얼마나 있을까. 옆 사람과 부딪혀 사과할 때를 제외한다면 내 입은 소통의 수단으로써의 역할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스마트폰으로 웹서핑이나 하며 웃는 역할에만 충실한 경우가 많다(오히려 엄지손가락만이 원거리 소통을 담당하곤 한다). 내가 과연 출퇴근 시간에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는가 생각하면 이게 무슨 되지도 않는 소리일까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린 원초적인 소통을 계속해서 하고 있었다.

  지금의 지하철과 버스는 참 소리로써도, 행동으로써도 정적이다. 모두들 이어폰을 꼽고 자신만의 소리 세상에 갇혀있거나, 모두가 스마트폰을 바라보거나 잠을 자는 하나의 자세로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하거나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는 버스나 지하철 안, 한 사람의 작은 움찔거림 혹은 들썩거림은 주변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멍하니 앉아있다가 잠시 스마트폰을 찾기 위해 가방을 뒤적거린다던가, 앉아있는 자세가 불편해 잠시 자세를 바꾼다던가, 가지고 탔던 우산이 너무 너저분해서 정리하기 위해 잠시 매만진다거나 하는 작은 움직임의 변화는 혼자만의 움직임이 아닌 여러 사람에게 소통의 매개체로 전달된다. 


출처: David Guttenfelder / National Geographic Creative, for The New York Times


  잠시 자세를 바꾸는 순간 앉아 있던 난 느낄 수 있다. 내 앞에 서있는 사람의 자세 역시 바뀐다는 사실을. 서로 말은 하지 않아도, 내 앞사람이 곧 자리에 앉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쯤은 행동만으로 알아챌 수 있다. 혹은 저 멀리서 자리에 앉으려는 아주머니가 다가와 내 앞에 서기도 했다. 더불어 자세를 고치다가 앞에 선 사람과 눈까지 마주치는 날엔, 괜한 착각을 준 것 같은 미안한 마음에 괜히 스마트폰을 꺼내 긴 글을 읽기 시작했다. 다음 역에 내릴 사람처럼 보이지 않도록. 

  사람이 많은 차량 안, 출입문 근처에 서 있는 날에는 조금 더 미세한 컨트롤이 필요했다. 내리지 않는 역에서는 좌석에 좀 더 바짝 붙어 서서 자리를 내주는 것과 동시에 이번 역에 내리지 않음의 의사를 펼쳐야 했다. 내려야 하는 역에서는 내 뒤에 있던 사람이 날 장애물처럼 밀치며 애써 지나가지 않도록 나도 이번 역에 내린다는 의사를 펼쳤다. 가방을 제대로 매기 시작하거나, 문 쪽으로 방향을 틀거나, 문을 향하여 약간의 움직이는 것과 같은 은유적인 행동들이었다. 이 모든 것이 통하는 날엔 나도 눈치껏 곧 내릴 앞사람을 따라 움직이고, 내 뒷사람들도 눈치껏 몸싸움 없이 내릴 수 있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의 대화는 무엇이 있을까. 외국처럼 눈만 마주쳐도 웃으며 날씨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국회의원이 아닌 이상 갑자기 악수를 건네며 사는 건 어떠세요, 근황을 물을 수도 없다. 적어도 현재의 대중교통에서 가장 무난하고 일반적인 대화 소재는 자리 혹은 공간의 위임이지 않을까. 그리고 우린 이러한 대화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어가고 있다. 나의 작은 움찔거림은 나만의 움직임이 아닌, 불특정 다수와의 소통의 수단이 되었고 이는 상대방의 눈치껏 받아들여졌다. 나도 모르게 여러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졌던 셈이다.

 

  일종의 행동에 기반한 눈치 커뮤니케이션이다. 가령 상대방의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움직임을 보며 눈치껏 의사 파악을 하였다. 나 역시도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 작은 움직임, 움찔거림으로 눈치껏 암묵적 의사 표시를 행해왔다. 연인관계에서의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통하는 끈적끈적한 대화가 아니라, 굳이 대상을 지정하지 않고 내 주변 '공간'에 내 의사를 표현하는, 또는 의사가 표현되는 방식이었다. 

  눈을 보고 말을 하지 않아도, 내 몸짓으로써 대화가 이루어진다. 의도치 않았더라도, 또는 그래서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었더라도 인간적이다. 똑똑하지 못하다 생각했지만, 눈치 커뮤니케이션만큼 이렇게 원초적이면서 인간적인 것이 있을까 싶다. 모두가 스마트폰 화면 만을 바라보는 공간 속에서도 우리는 기계를 가운데에 두지 않은 원초적인 대화를 이어나간다. 기계적으로 제공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아닌, 서로를 통해 추측하고 이해한다. 똑똑하진 않지만 따뜻한 암묵적 대화가 이어나간다.







사진출처: 

https://www.nytimes.com/2015/06/07/magazine/what-silicon-valley-can-learn-from-seoul.html?_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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