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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은지 Mar 17. 2017

기사님, 지금이 타이밍인가요?

똑똑한 세상 속 똑똑하지 못한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2. 버스

당신은 혹시 뚜벅이인가? 그렇다면 당신에게 다음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

    1. 버스 정류장에서 승차하려는 버스가 진입할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2. 버스에서 내리기 전, 하차벨은 어떤 시점에 누르는가?



나는 하루에 두 번 이상 버스를 타는 뚜벅이다. 한두 번 타는 것도 아닌데, 나에게 시내버스 이용은 긴장 그 자체다. 매일 같이 버스를 타는데도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어쩌면 당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지 모른다. 나는 버스 기사님으로부터 혼난 적이 몇 번 있다. 버스 기사가 불친절하다며 투덜거리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브런치가 아니라 민원게시판에 글을 올렸을 것이다. 다만 매번 다른 이유로 기사님의 핀잔을 듣는 내가 억울하기도 하고, 어찌하여 이렇게 혼나면서(?) 시내버스 이용 방법을 익혀야 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먼저 첫 번째 상황이다. 내가 탈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다음 중 올바른 대처는?

     A. 버스가 정류장에 완전히 진입할 때까지 정류장 의자에 얌전히 앉아 기다린다.

     B. 내가 바로 탈 사람이다! 팍팍 티를 내며 버스가 정차하는 곳으로 달려간다.

A의 경우, 대부분의 버스는 정차하지 않고 정류장을 지나친다. 뒤늦게 버스를 잡아 타더라도 기사님의 핀잔을 피할 수는 없다. "탈 거면 나와서 기다려야죠." B의 경우는 거의 100% 버스를 탈 수 있다. 그러나 이 때도 기사님의 핀잔을 듣게 된다. "위험하니까 좀 물러나서 기다리세요." 

한 번은 정류장에 서너 대의 버스가 한꺼번에 들어오면서 내가 탈 버스가 정류장에 완전히 진입하지 못하고 뒤쪽에 정차해있었다. 그렇게 5분 정도 지났을까. 먼저 도착한 버스들이 떠나면서 내가 탈 버스도 앞으로 오는데 정차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게 아닌가? 출근길에 버스 한 대를 떠나보내면 택시를 타야 한다. 나는 필사적으로 뛰어서 버스를 잡았다. 그러자 기사님은 대뜸 나에게 "뒤에서 5분이나 기다렸는데 왜 진작 타지 않았냐"며 화를 냈다. 나는 정류장 이외의 장소에서는 승차를 할 수 없다는 시내버스의 규칙을 따랐을 뿐이었다. 

나는 내가 탈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올 때마다 생각이 많아진다. 버스정류장의 전광판에는 내가 탈 버스가 몇 분 뒤에 도착하는지 실시간으로 중계가 되지만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버스정류장에 버스가 진입하기 전부터 나는 버스 기사님에게 이 버스를 탈 것이라는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쌩 하고 지나가버릴 수도 있다. 어떻게 해야 요란하지 않고 위험하지도 않은 방법으로 내가 이 버스를 타고 싶다는 의사를 버스 기사님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상황. 버스를 탑승한 이후에도 나의 딜레마는 계속된다. 바로 하차벨을 누르는 '타이밍’이다. 다음 중 하차벨을 누르기 적합한 타이밍은 언제일까?

     A. 버스 안내 방송이 나온 후 하차벨을 누른다.

     B. 전 정류장을 출발하자마자 누른다.

A의 경우, 종종 나는 원하는 정류장에 내리지 못할 때가 있다. 평소 사람들이 그 정류장을 많이 이용하지 않기 때문인지, 안내 방송이 너무 늦게 나온 탓인지 내려야 할 정류장을 버스가 그냥 지나쳐버릴 때가 있다. "기사님, 내려주세요~"하면 돌아오는 말은 "에이, 더 빨리 눌렀어야지."하는 핀잔. 그 소리를 듣고 나는 B를 실천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전 정류장에서 내리고 싶었는데 늦게 누른 줄 아셨던 모양인지 문을 열어주신다. 하하, 적당한 타이밍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그 적당한 타이밍은 언제인가? 전 정류장을 지나친 후, 내려야 할 정류장에 버스가 이르기 전 사이가 가장 이상적이긴 하나, 사실 뚜벅이인 내가 그 적당한 타이밍을 알고 있기란 어려운 일이다. 결국 매번 버스를 탈 때마다 안내방송과는 상관없이 그 적당한 '타이밍'을 노리며 창 밖을 주시한 채 손을 하차벨 가까이에 둔다. 처음 타는 버스라면 GPS를 켜두는 건 필수다. 하차벨을 누르고 나서도 방심할 수는 없다. 뉴스 기사를 통해 알게 된 사연에서 한 승객이 하차벨을 누른 후 버스가 완전히 멈추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내리려고 했는데, 버스기사님은 아무도 일어나 있지 않으니 내릴 사람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문을 바로 닫아 버리고 출발했다고 한다.


적고 보니 나는 유난히 버스 기사님들에게 혼이 많이 나는 것 같다. 뭐, 내가 만난 분들이 그날따라 기분이 안 좋았을 수도 있고, 혹은 내가 만만해 보여서 쉽게 화를 낸 것일 수도 있다. 결국 모든 것은 '타이밍'의 문제이다. 버스를 이용하는 내내 승객의 모든 행동은 적당한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서 일어서는 타이밍, 하차벨을 누르는 타이밍, 하차를 위해 버스 뒷문에 나가서 있는 타이밍.. 이와 동시에 중요한 것은 승객들에게 표면적으로 불만을 터뜨리는 기사님을 제외하더라도 많은 버스 기사님들이 승객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있고 어림짐작으로 판단을 한다는 점이다. 버스를 운행하는 와중에 수많은 승객들의 행동을 살피고 그들의 의도를 '짐작'하다 보니 오해가 생기고, 이는 갈등의 씨앗이 된다. 


상대방의 행동을 어림짐작하여 판단하는 원초적인 커뮤니케이션. 버스 기사님과의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은 항상 핀잔 혹은 불만이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나는 버스 기사님과의 의사소통이 좀 더 똑똑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뚜벅이 주제에 대중교통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냐고? 나는 서로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조금만 더 명확하고 긍정적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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