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네덜란드 #8. 잘 앎의 경계
한국에서 말을 할 때는 이름 모를 부담감이 엄습해. 응, 나도 알아.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수없이 봐왔는걸. 말 한마디로 어떻게 평가되고 분류되는지, 평범한 말 한마디도 어떻게 하면 편견의 잣대가 될 수 있는지 말이야.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들 귀에는 무슨 필터라도 있는 건지 모든 걸 걸러서 듣더라고. 그래서 친한 사람들 만나는 게 좋아졌어.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것보다 친한 사람들과 편하게 맥주 한 잔 마시는 게 행복의 기준이 되었어. 나도 알아, 변명 같지 이거.
그런데 혹시 오지랖과 관심의 경계가 무엇이라 생각해? 뜬금없이 솔직해지자면, 나 관심받는 거 되게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의 외동딸로 어화둥둥 자랐더니, 사랑받는 게 당연한 건 줄 알았어. 심지어 오빠가 있었는데도, 딸이 한 명이라는 이유로 외동딸로 불리며 온갖 사랑을 다 받았다니까? 그거 때문에 사회초년생 땐 고생 좀 했지만, 그게 나였어. 뭐 어쩌겠어, 좌절도 하고 사랑받으려 노력도 해보고 그러다 지금의 내가 되었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관심이 두려워지기 시작하더라고. 한국인의 정이라 포장을 해보려고도 했는데, 도움이 전혀 안 되었어. 그렇게 어느 날엔 그냥 주변 사람들을 스위치 끄듯이 끄고 싶단 생각까지 해버렸지 뭐야. 그러다 곰곰히 생각해봤어. 내가 왜 이럴까 하면서.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이 부담스러워지던 순간, 이 모든 게 오지랖으로 느껴지던 순간의 경계는 바로 남들의 판단이었어.
응, 나는 오지랖의 경계는 판단 또는 평가라 생각해. 단순한 나를 향한 관심이 아니라, 그들의 머릿속에서 나라는 허상의 페르소나를 구축한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거든. 물론 정말 그 모든 허상의 내가 모여서 진짜 '나'가 되기도 하겠지만, 그 허상의 '나'라는 존재들이 점점 자아를 갖기 시작하더라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그들 머릿속에 있는 '나'는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만 습득해서 이름만 '나'인 전혀 다른 새로운 인물이 되어가더라고. 응, 그렇게 나를 평가하고, 자신들의 기준에 판단하기 시작했어. 단순한 관심에 의한 질문이 아니라, 교묘하게 숨겨진 목적이 느껴졌지. 그들 머릿속의 나를 구상하거나, 그들 기준에 맞지 않는 나를 판단하고 조언하는 것. 그걸 느낀 순간부터 말하거나 대화에 대해 부담감이 생겼던 것 같아.
그런데 사실 말야, 내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당시의 내가 그렇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건 아니야. 내가 좀, 아빠를 닮아서 굉장히 개인주의자 성격이거든. 웃기지, 사랑받고 싶다면서 개인주의자라니. 신경 쓰고 싶지 않으면 진짜 신경 끄고 살았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신경 쓰고, 나는 나니까, 날 어떻게 판단하든 신경 쓰지 않았어. 아, 독불장군 아빠 닮아가면 안 되는데, 어쩔 수 없나 봐. 뭐 나름 나 자신을 위해서는 편하게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어. 아니, 있었어.
내가 착각하고 있다고 느낀 건 이 곳에 도착한 이후야. 나 지금 네덜란드에서 인턴을 하고 있거든. 이 곳에 와서 친목뿐만 아니라 업무적인 대화도 많이 하다 보니까, 내가 예전에 생각하던 '편하게 살았다는 자부심'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하루하루 깨닫게 되더라. 나는 괜찮다고 자위를 하고 있었을 뿐, 이미 찌들어있더라고. 내 착각이었어. 내가 다른 글에도 적기도 했지만, 사실 처음에는 입을 여는 게 너무나 힘들었어. 목적 없는 대화라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제일 적응하기 힘든 문화였지. 괜히 개인적인 얘기는 안 하려 하고, 대화를 할 때마다 말을 가려서 하기 위해 내 머릿 속은 팽팽 돌고 있고. 그러다 내가 그동안 다른 사람들을 신경 껐던 것뿐만 아니라, 내 입 스위치도 꺼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내 이야기를 안 함으로써 나는 날 보호하고 있다 착각하고 있던거야. 나 혼자 요새 속에 숨어버린 것도 모른 채.
그렇게 자아비판만 계속 하다가, 변한 나를 느낀 순간이 있었어. 그때가 아마 보스와 미팅 후에 잡담을 나누고서 내 자리로 돌아갈 때였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너무 후련한 거야. 이 정체모를 기분이 뭘까 한참을 생각하다, 순간 정말 환호성을 지를 뻔했어. 회사만 아니었다면 진짜 그랬을지도 몰라. 내가 방금까지 나눴던 대화들이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해방감이 느껴졌는지 뭔가 마음속으로 조용히 느껴지더라니까.
보통 네덜란드나 외국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에 비해 개인적이라고 생각 많이 할 거야. 사실 틀린 말은 아니야. 업무가 끝나면 바로 집에 돌아가기도 하고, 이를 삭막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 하지만 난 이 곳에서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어. 한국이 더 남의 일을 잘 물어보고 관심이 많은 것 같지만, 그것에 뒤지지 않게 이 곳에서도 서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봐. 어디가 더 개방적인지는 난 감히 판단 못하겠어. 개인적이지만 서로에게 또 더할 바 없이 따뜻하기도 한 곳이거든 여기.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대화 뒤에 일어나더라. 바로 개개인의 이야기가 대화 후에 판단의 여부가 되는지 안되는지.
내가 당신의 삶을 잘 안다 하더라도, 그는 그뿐이지 당신을 향한 나의 가치 판단에 이용되진 않아. 너는 너고, 나는 나임을 인정하는 것. 이것만으로도 오히려 서로를 속이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하더라니까. 내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날 평가하는 대상이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의 말은 단순히 나를 표현할 뿐이며, 그들도 날 인정하는 것뿐이라는 것. 이 단순한 차이가 날 홀가분하게 만들더라.
이 사소한 차이는, 이 곳에서 나를 우뚝 서게 만들어. 예전에는 내가 말을 할수록 사람 많은 광장에서 옷을 하나하나 벗어 벌거숭이가 되는 느낌이었다면, 이 곳에선 내가 말을 할수록 옷을 하나씩 더 입는 기분이야. 발가 벗겨진 내가 부끄럽고, 상처받고 평가당할 것 같은 기분은 들지 않아. 오히려 나를 쌓아갈 뿐이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날 쌓아가. 남모르게 좋아하던 형광색 코트를 입어보기도 하고, 챙이 넓은 공주 모자를 써보기도 해. 그렇게 온전한 내가 만들어져. 그리고 믿어 의심치 않지. 날 보는 사람들이 내가 왜 저러는지 판단하는 것이 아닌, '그게 너구나'라고 인정해줄 거라는 사실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