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을 기억하지 말고, 장애인인 '날' 기억해 주세요
매년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그동안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장애인 관련 콘텐츠들이 매체를 통해 많이 소개됩니다. 텔레비전 뉴스, 특집 프로그램, 다양한 캠페인 등을 통해 우리는 장애인의 삶과 목소리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마냥 반갑게 느껴지지 않는 분들도 계십니다.
몇 해 동안 장애인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왜 이 시기에만 장애인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는 것처럼 행동하느냐”는 말씀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감각장애를 가진 분들 중에는 이러한 ‘시기성 관심’이 오히려 불편하고 부담스럽다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다른 사회적 약자들의 상황과도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 어버이날에만 북적이는 요양병원, 연말에만 집중되는 봉사와 후원 활동들을 떠올려 봅시다.평소에는 조용하던 공간이 특정한 날에만 갑자기 주목받는 모습은, 때로는 위로보다 허전함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떤 분은 이제 ‘장애인의 날’은 사라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이 처음엔 조금 낯설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법의 목적은 법의 소멸’이라는 말처럼, 어떤 제도가 진정한 목적을 이루었을 때, 그것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상태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이 필요 없는 사회, 누구나 각자의 모습 그대로 존중받고 살아가는 사회가 된다면,
장애인의 날도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내려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질문이 따릅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평등과 통합이 이루어졌을 때, 이제 기념일이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장애로 인한 차별과 구분이 얼마나 사라져야 우리는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아니라, 지금도 그 차별을 직접 겪고 있는 당사자들의 삶 속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관심 자체를 모두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연말에만 찾아오는 관심은 오히려 상처가 된다.” 그 말도 분명 타당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마저도 없다면 어떨까요?
어쩌면 1년에 단 한 번, 어버이날에 자녀의 얼굴을 보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런 하루가 1년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장애인의 날을 기다리는 아이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이 날을 통해 처음으로 장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하루는, 여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결국 중요한 것은, 이 날을 없앨 것인지 남길 것인지에 대한 논의보다 그 하루가 진정으로 장애인을 위한 시간이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어느 장애인 당사자는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의 날을 기억하지 말고, ‘장애인인 날’을 기억해 주세요.”
그 말처럼, 하루를 기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루가 장애인의 존재와 삶을 존중하는 날, 그리고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되돌아보는 날이 되길 바랍니다. 장애인의 날이 더 이상 ‘특별한 날’로 남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 그 하루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날이 자연스럽게 오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