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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철 Apr 01. 2023

가고 싶은 학교, 행복한 학교

학교 공간혁신을 통해 미래 학교를 상상하다

'학교'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떤 것들인가요? 네모난 학교와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 의자 이런 것들인가요? 네모의 꿈이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우리가 경험하고 기억하는 학교의 모습은 아마 비슷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학교는 다들 비슷할까?' 고민해 보신 분이 있을까요? 저도 근래에 알게 된 사실인데 공립학교를 지을 때 최대한 효율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표준 설계도가 있었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학교 표준 설계도'라고 이름 붙여진 이 설계는 1962년부터 1991년까지 만들어진 대한민국 학교의 표본이 되었다고 합니다. 

학교표준설계도

어떠신가요? 여러분이 다녔던 학교의 모습도 흡사 비슷하죠? 재미있는 것은 검은색으로 표시된 교사동(학교 건물) 앞으로 전면에 관상용 화단을 만들고 스탠드를 만들었으며, 운동장과 왼쪽 구석에 놀이터(특히 철봉과 정글짐)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러싼 주변의 구조를 보시면 뒤편으로는 콘크리트 옹벽으로 담장을 앞쪽과 옆쪽은 관목 위주로 심되 차폐를 목적으로 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세워진 학교들이 차폐를 중시했던 것은 외부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겠다는 목적도 있지만 실제로는 내부의 학생들을 더 잘 관리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이 정문으로 들어오면 다시 나가지 못하도록 지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전엔 꼭 학교 차폐 식재 한 구석에 개구멍이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학교가 얼마나 가기 싫은 곳이었을까요?


제러미 벤담의 판옵티콘 - 효율과 감시의 끝을 보여주다.

사진으로 보이는 건물 도면은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인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건물로 이름은 '판 옵티콘'이라고 불립니다. 1791년에 벤담은 최대한의 효율적인 건물의 모형으로 이 판 옵티콘을 제안하였는데요. 쭉 펴면 일자의 형태인 건물을 반 원으로 둘러싸고 안쪽을 개방하는 형태를 가집니다. 


그림에서 A로 표시된 곳에는 감시의 대상들이 있고 반원의 최중앙부인 가장 안쪽에는 감시자가 있는 구조인데요. 바깥에서 안쪽으로 갈수록 조명을 어둡게 만들어서 가장 안에서는 바깥쪽이 훤히 잘 보였지만 반대로 바깥에서는 안쪽이 잘 보이지 않는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안쪽 감시자가 지금 자기를 보고 있는지 보고 있지 않은지, 또는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게 만들었는데요. 이는 언제나 누가 지켜볼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줌으로써 일탈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제러미 벤담이 이 판 옵티콘이 어울리는 건물의 유형으로 감옥, 병원, 학교를 꼽았다는 것입니다. 투옥된 죄수와 교실의 학생을 같은 선에서 바라보았다는 것이 참으로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이 유형이 최대의 효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아주 충실히 달성하고 있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하지만 교육을 효율로 다가가는 생각은 어처구니가 없네요. 


학교가 달라지고 있다. 학교 공간 혁신의 사례들

참으로 다행한 일은 학교를 새롭게 하려는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전히 많은 학교들이 네모난 교실에 네모난 책상들로 되어 있지만 새로 지어지는 학교를 중심으로 학생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고, 공간이 달라지지 않으면 아이들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큰 공감대를 얻고 있습니다. 사진에 제시된 학교는 서울 상원초등학교의 공간 구성 사례인데요. 네모난 교실을 타원으로 나누어 둥글게 만들고 가운데는 수업공간으로 바깥의 구석들은 동굴 방으로 다목적실과 독서 벤치 등등 학생들을 위한 공간을 넣었다는 것이 독특했습니다. 다락 올라가는 계단도 있고 작은 공부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런 교실 참 예쁘지 않나요?

또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이 사진은 제가 직접 찍은 사진으로 세종시에 위치한 해밀학교를 방문한 모습입니다. 해밀학교는 마을교육공동체로도 좋은 선진 사례를 만들고 있어 2022년 제주도교육청의 선진지 시찰단으로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비록 네모의 교실과 네모 책상들은 여전하지만 뒤편 공간에 동굴 방을 만들어 쉬고 싶은 아이들을 위한 배려를 넣었고 복층 공간도 마련하여 아이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해밀학교의 또 다른 혁신 공간인 도서관, 일단 도서관 앞의 대청마루가 강인한 인상을 주었고, 폴딩 도어 안쪽에는 편안한 의자가 배치되어 가장 편안한 자세로 독서를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교실과 교실 사이의 공간은 놀이 공간이 됩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부드러운 소재의 바닥과 실내놀이터를 방물케하는 놀이공간, 이런 공간이 학교 곳곳에 크고 작게 마련되어 있으니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얼마나 즐거울까요?

또 인상 깊었던 것은 넓은 복도입니다. 보통의 학교들은 양쪽으로 겨우 통행할 수 있는 단지 이동을 위한 복도를 가진 반면, 해밀학교는 복도자체도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도록 배치했습니다. 누구나 앉아서 쉬어갈 수 있는 푹신한 구조들을 배치해 앉거나 눕거나 때론 뛰어넘을 수 있도록 다양한 상상력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지요. 


존 듀이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는 다양한 흥미와 충동이 존재하며 이 자연적인 본능을 잘 이끌어주고 지도할 때 진정한 배움이 일어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아이들에게 가능한 직접 경험하도록 하였으며 이를 통해 실제적인 공부, 즉 지식이나 정보 획득을 초래하는 탐구를 할 수 있는 풍부한 기회를 갖게 된다고 주장했지요. 저는 이러한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앞으로의 학교는 아이들이 가고 싶고 행복한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중고등학교 교실에는 '메이커스 스페이스 '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큰 아이들을 위한 교실도 제안해보려고 합니다. 아웃도어 메이커 스페이스라고 제시된 그림은 양쪽에 두 개의 교실 사이에 무빙 월로 구분되는 메이커스 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메이커스 스페이스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작업대에서부터 3D 프린터, CNC(레이저 절단/각인기)등의 장비들도 필요합니다. 이 공간은 두 개의 교실과 무빙 월을 통해 이어지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합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전시 복도를 마련하는 것인데 이 전시복도는 아이들이 메이커스 스페이스에서 만든 창작물을 전시하고 공유하는 공간이 됩니다. 반대쪽에는 기자재 수납함과 교사연구실 그리고 소규모의 토의 방도 마련됩니다.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의 모습은 이런 교실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주도교육청은 현재 3개 특수학교 외에 동쪽 지역에 특수학교 분교 설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저는 새롭게 지어지는 특수학교의 분교는 이런 공간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학생들이 가고 싶은 학교, 학생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구석구석 배려된 학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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