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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철 Mar 08. 2023

나는 어떻게 아동 학대교사가 되었나

PD수첩 어느 초임교사의 자살을 통해 되짚어보는 교권이야기

어젯밤 방송된 PD수첩 프로그램을 보고 쉬 잠에 들 수 없었습니다. 이번 화의 제목은 “나는 어떻게 아동학대 교사가 되었나” 제목을 보고 학교의 이야기, 교실의 이야기가 PD수첩에 방송되는 것을 보고 채널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귀를 기울였습니다.

한 통의 제보

PD수첩으로 들어온 제보 한 통으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때로 살면서 얼마나 억울하면 시사고발 프로그램에 자기의 이야기를 고발할까 궁금했습니다. 요약하면 초임 발령을 받은 지 1년 6개월 된 A교사가 끝내 자신의 집 옥상에서 투신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교사의 꿈, 십 수년간 중고등학생들의 선망의 직업 1위. 그 꿈을 위해 달려왔을 A교사의 노력과 수고를 알기에 그가 얼마나 좋은 교사가 되고자 했는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가 왜 1년 반 만에 아동학대 교사가 되고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을까요.


문제는 A교사가 담임했던 학생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준비물이 필요했던 수업, 아이들에게 미리 준비물 챙기기를 부탁하였고, 수업 당일 준비물을 안 가지고 온 학생 몇 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A교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준비물을 빌려주려고 “준비물 못 챙겨 온 사람, 손?”이라고 말했고 몇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A교사가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못 챙긴 학생이 더 많았기에 A교사는 가까이 있는 학생에게 먼저 준비물을 빌려주고 순서대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때 기다리게 된 학생에게서 들려온 한 마디 “에이~xx”


A교사는 그 학생을 그냥 보낼 수 없어서 “다시 말해봐, 너 방금 욕했지?”라고 물었고, 교사의 그런 다그침에도 반성의 기미가 없는 그 학생을 복도에 서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반성문을 쓰도록 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지금부터, 다음 날 해당 학생의 학부모로부터 ‘아동학대’를 했다는 신고를 받게 되고 학교는 절차에 따라 A교사를 반에서 즉시 분리하고 대기 조치를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순식간에 교직에서 배제되고 벌 아닌 벌을 받으며 수사를 받던 A교사는 몇 개월간 이어진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억울함을 적은 유서만 남긴 채 투신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얼마 전 저는 “교직을 떠나는 교사들”이라는 제목으로 학생의 인권과 교권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 글은 꽤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댓글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학생의 인권과 교권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합의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오늘 접한 이 일은 여전히 교권이 필요한 만큼의 보호를 받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현재도 진행 중인 아동학대 다툼


그뿐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아동학대 재판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전했습니다.


교무실에 앉아 있는 B교사에게 아이들이 달려왔다고 합니다.

“선생님, 큰 일 났어요”

“선생님, 빨리 와보세요. “

“00 이가 아이들을 때리고 교실을 다 부숴요.”


겁에 질린 아이들을 이끌고 올라간 교실에서는 ‘00’이가 다른 아이의 멱살을 잡고 위협하고 있었고 분을 이기지 못해서 교실의 기물을 파손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교실에 들어간 B교사는 00에게 멈출 것을 요구했으나 00 이는 오히려 교사에게도 화를 내며 화를 주체 못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B교사가 “나도 화낼 수 있어, 너만 화낼 수 있는 거 아니야 “라고 하며 교실에 있는 책상을 밀어 넘어뜨렸고, 이어 00 이에게 넘어진 책상을 바로 세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00 이의 아버지, 어머니의 수십 차례 항의 전화와 아동학대 신고로 인한 고소장이었습니다. B교사 역시 업무에서 배제되고 현재 아동학대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B교사의 사건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B교사의 다른 제자들은 선생님을 매우 좋아하고 있으며 십몇 년 전, 그리고 몇년전 제자들이 차례로 B교사를 위해 증언하기를 그녀는 ‘엄마’와 같은 선생님,  덕분에 교사의 꿈을 키우고 교직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이는 상식적으로 봐도 B 교사가 아동학대를 일삼는 사람은 아니었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맥락으로 판단할 수 있는 합리성을

저는 오히려 가해자가 제도를 역이용하는 것을 보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발단은 항상 아이들에서 시작되었는데 왜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교사의 책임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의 하루는 단편적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말, 행동은 그냥 일어나지 않습니다. 원인과 결과가 함께 존재합니다. 하물며 교실에서 교사와 스무 명의 아이들이 함께 있는 곳일까요. 그런데 왜 교사의 행동을 앞 뒤 자르고 그 순간에만 집중하여 판단을 내리는 것일까요? 어떠한 원인이 있던 교사는 아이를 향해 그저 웃기만 하는 돌부처와 같은 사람이어야 하는 건가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교육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두 사례를 살펴보면 모두 학생의 부당한 언행이 원인이었지만 그 부모는 자기 자녀의 행동은 언급조차 않으며 그 행위와 그 이후 나온 교사의 지도 방식만 문제를 삼고 있습니다. 예전 학교에서 한 대 맞고 와서 부모님께 이야기하면 “네가 맞을 만한 짓을 했으니까 맞았지”하며 한 대 더 맞았다는 우스갯소리의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최소한 아동학대와 교육적 지도를 구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맥락을 바탕으로 한 제삼자의 판단이 대답이 될 것입니다.


교실에 누워있는 아이,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잠을 자는 아이, 최소한 교사를 향해 뭐라고 하지만 않아도 고마운 아이가 지금 교실의 현실입니다. 그런 학생을 오히려 못 본 체 하고 넘어가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교사들에게 교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닐까요?

교사가 수업에 집중하고, 학생 지도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호조치. 그것은 오히려 모든 학생들을 위한 길임을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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