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지하철에 있는 것과 없는 것
다른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당연히 이동수단을 활용해야 할 것인데, 경험상 메트로만큼 편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용하는 지하철과 사용 과정이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고, 또 노선도가 직설적이라 내 위치와 목적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때문에 기본적인 이동수단은 거의 메트로를 이용하는 편이고 스페인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페인의 메트로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깨끗하고 잘 되어있다고 평가받는데,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복잡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바르셀로나의 메트로는 그렇다. 도시의 대부분을 커버하고 다양한 노선의 환승을 통해 어디든지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사실 더 권장되는 이동수단은 버스인데 지상으로 이동하는 버스는 도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왠지 노선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아 꺼려진다. 특히 낯선 도시일수록 그렇다. 도시가 익숙해지면 점차 버스의 이용 빈도가 높아지기는 하더라. 대신 메트로를 이용하면 그 도시의 사람들을 보다 잘 느낄 수 있다. 삶의 모습 그대로를 느낄 수 있어 좋다. 바르셀로나의 메트로를 이용하면서 한국과 비교하여 느낀 점을 몇 가지 적어보고자 한다.
한국에는 있으나 바르셀로나 메트로에는 없는 것, 우선 바르셀로나 메트로에는 화장실이 없다!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급하게 화장실을 찾을 때 지하철 역을 쉽게 이용한다. 지하철 화장실이 깨끗하고 잘 관리되며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그렇지 않은데 유럽여행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주의사항 중 하나도 화장실이 거의 없으며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유럽은 화장실을 찾기가 꽤나 힘든데, 대부분 식당과 카페에서는 고객 전용이고 공용으로 있는 것은 1유로 동전을 넣어야 하는 유료 화장실이다. 이 점은 아직도 완전히 이해가 되지는 않는 문화인데, 모든 화장실을 무료화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던가? 그래서 유럽의 메트로, 특히 파리의 메트로는 노숙자들의 노상방뇨로 인해 악취가 지독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행히 스페인의 메트로에는 악취가 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유럽의 메트로 중 깨끗한 것으로 높은 순위를 가지는가 보다. 하지만 화장실이 급해 뛰어들어간 메트로 역에 화장실이 없다는 것은 꽤나 당황스러운 일. 스페인에서 화장실이 급하면 메트로보다는 카페를 이용하자.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화장실을 이용하면 된다. 나도 때로는 화장실로 인해 강제 티 타임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오히려 좋은 일로 생각하자.
두 번째, 스크린 도어가 거의 없다. 스크린 도어가 있는 역도 간혹 있기는 한데, 대부분의 역에는 없다. 이는 한국의 지하철이 얼마나 우수한지 반증하는 부분인데, 한국은 지하철에 스크린 도어 설치율이 거의 100%에 가깝다. 스크린 도어는 승객들의 안전과 직결되는 부분인데, 스페인의 지하철에는 안전사고가 많지 않은 건지, 아니면 스크린 도어 설치까지 여력이 안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하기야 인구가 1백6십만 인 바르셀로나와 1천만 인 서울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겠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서울의 러시아워 수준의 사람들을 보지는 못했으니 말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다룬 아주 사적인 유럽 여행기임을 감안해 주시길.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운전기사가 없다는 점. 바르셀로나에는 무인으로 운영되는 메트로가 꽤 있더라. 물론 100% 무인 운행은 아니고 특정 노선에 대해서는 무인인데, 내가 자주 이용하는 L9 노선이 일단 그렇다. 무인으로 운행하는 메트로를 타다 보니 일단 전면이 잘 조망되는 장점은 있으나 왠지 잘 운행되는지에 대한 걱정도 살짝 들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인공지능이 이렇게 발전한 시대에 단순히 섰다 가다를 반복하는 메트로의 경우 운전기사가 꼭 필요한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실제로 무인 메트로는 아주 잘 운행되고 있었다.
한국에는 있으나 바르셀로나 메트로에는 없는 것을 찾아보았다면 반대로 한국에는 없는데 바르셀로나 메트로에는 있는 것도 있을까? 당연히 있다. 바르셀로나 메트로에 만 있는 가장 특이한 것은 바로 문 열림 버튼이다. 메트로의 문이란 원래 자동으로 열리는 것이 아닌가? 아니다. 최소한 바르셀로나에서는 아니다. 승객이 내리고 싶으면 문에 설치된 문 열림 버튼을 눌러야 한다. 그래서 정차한 메트로에도 열린 문이 있고 안 열린 문이 있다. 이 문 열림 버튼에 대해서는 정보를 찾기 어려웠는데, 내 결론은 원래부터 이들은 당연히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메트로가 처음 생길 때부터 이렇게 말이다. 사용 방법은 내리고 싶은 역에 도착하면 문 앞에 서 있다가 메트로가 정차하고 나서 저 초록색 버튼에 불이 들어오면 살짝 누르면 된다.
그런데 어떤 지하철에는 이렇게 버튼이 두 개인 경우도 있었다. 문 열림 버튼이야 이곳 사람들이 하는 것 한 번 눈여겨보면 ‘아, 이렇게 사용하는 거구나’ 쉽게 알 수 있는데 내리는 문 앞에 이렇게 버튼이 두 개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냥 버튼과 빨간 버튼이 있어 뭘 눌러야 할지 매우 당황스럽다. 나중에야 알게 된 스페인 단어이지만 ‘OBRIR’은 스페인어로 열다는 동사. ‘TANCAR’는 아직도 모르는데, 다만 열려있는 것을 닫다는 타동사가 ‘TAPAR’ 이란 점을 생각하면 아마 ‘닫힘’ 정도로 짐작할 수 있겠다.
나와 같이 버튼을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인지 문 열림 버튼 안내문이 3개 국어로 적혀있기도 하다. 여러 국가의 다인종이 사는 곳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포인트. 한국의 지하철은 모든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데 하며 이런 버튼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혼자 생각해 본다. 아무도 타지 않는 칸에서도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게 에너지의 낭비 측면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물어보고 싶다.
갑자기 다른 의문이 생겼다. 그럼 타는 사람은 어떻게 타지? 내가 타려고 하는 역에서 내리는 사람이 없어 문 열림 버튼을 안 눌러주면 못 타는 건가? 당연히 그런 일은 없어야 할 것이고, 그래서 옆 메트로를 살펴보니 문의 외부에도 버튼이 있었다. 이제 바르셀로나에서 메트로를 타는데 타거나 내릴 때 문이 안 열린다면 당황하지 말고 버튼을 눌러주자.
바르셀로나 메트로와 한국의 지하철에 공통으로 있는 것도 있다. 대부분의 발권이 자동화되었다는 것. 바르셀로나의 메트로도 이제 모든 티켓을 기계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언어가 문제가 된다면 영어를 선택하면 도움이 된다. 일반 시민들이 이용하는 금액 충전형 카드에서부터 여행객들을 위한 2일, 3일, 4일, 5일권까지 모두 여기서 구입이 가능하고, 내가 가장 유용하게 이용했던 10회권도 여기서 바로 구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있다. 메트로를 타고 이들과 섞여있어 보니 처음에는 라틴 계열의 사람들이 백인과는 또 다른 낯섦으로 다가왔는데 어느덧 친근해졌다. 이들도 아침저녁으로 출퇴근을 하고, 어린아이에서부터 젊은이들과 노인들이 있으며, 각자 삶의 모습들이 녹아들어 있었다. 우는 아이와 수다 많은 청소년들, 사랑을 주고받는 젊은이들과 노인과 장애인까지 이들도 같은 사람이구나 느끼게 되니 왠지 스페인에 한 걸음 다가간 느낌이다. 이것이 내가 메트로를 좋아하는 이유. 이 자체가 여행의 일 부 이 듯 관광버스로 구분된 관광객이 아니라 삶의 한 순간을 맞대는 여행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