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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누 델 디아

스페인 사람들이 점심을 맞이하는 방법

by 황현철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경험한 문화 중 하나는 바로 ‘메누 델 디아(Menú del Día)’였다. 대도시의 고급 레스토랑도, 관광객이 모이는 유명한 바도 아니었다. 오히려 평범한 기차역 한가운데 자리 잡은 작은 카페테리아에서 만난 점심 한 끼가, 이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음식과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깊이 느끼게 해 주었다. 샌드위치로 또는 간편식으로 10분 만에 해결하는 해치우기식 우리네 점심 문화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이날 나는 바르셀로나의 한 기차역 안에 있는 식당에 들어섰다. 피곤한 여행길 중간, 그저 간단히 허기를 채우려는 의도였지만, 입구에 큼직하게 붙은 붉은 간판이 내 눈길을 끌었다. “Menú del Día – 14.95€”. 곁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Primer plato, segundo plato, bebida y postre.” 즉, 첫 번째 요리, 두 번째 요리, 음료, 그리고 디저트까지 포함된 구성이다. 가격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푸짐한 구성 아닌가. 게다가 특정 카드로 결제하면 10% 할인이 된다는 안내까지 있었다.


오후 12시부터 4시까지 제공되는 이 점심 메뉴는, 알고 보니 스페인 전역에서 매우 보편적인 문화였다. 근로자부터 관광객, 학생들까지 누구나 즐기는 이 ‘메누 델 디아’는 단순한 식사 그 이상이었다. 식사는 여유롭고, 구성은 균형 잡혔으며, 무엇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된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앉아, 음식을 음미하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 그것이야말로 이 문화의 핵심이었다.


식당 안은 현지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혼자 온 사람들도 있었고, 직장 동료들끼리 점심을 즐기며 웃고 떠드는 무리도 보였다. 이들이 매일같이 찾는 일상의 식사가 오늘 나에게는 특별한 체험으로 다가왔다. ‘스페인 사람처럼 점심을 먹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음식이 단순한 끼니를 넘어, 한 나라의 생활 방식과 문화, 나아가 사람들의 사고방식까지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메누 델 디아’는 단지 저렴한 점심 메뉴가 아니었다. 그것은 스페인 사람들이 만들어낸 삶의 리듬이자, 타인과 시간을 나누는 방식이며, 매일의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고 따뜻한 여유였다.


스페인을 여행할 계획이라면, 꼭 한 번은 현지의 작은 식당에 들어가 ‘메누 델 디아’를 주문해 보기를 추천한다. 관광 명소에서 보는 화려한 장면들보다 훨씬 더 깊이 있고 인간적인 스페인을 만날 수 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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