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현철 Jan 15. 2024

왜 이들은 아스팔트에 누울 수밖에 없었나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전국 오체투지 행진의 출발을 지켜보며

2023년 11월 15일, 제주도청 앞 길에 엄숙함이 몰려왔다. 수능을 하루 앞둔 이 날, 비장한 표정의 장애인부모연대의 회원들이 모인 것. 모인 장소는 제주도청과 제주도교육청, 제주도의회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곳. 이곳에서 선언된 선포기자회견을 시작으로 12개 시도를 거쳐 서울 국회까지 오체투지로 나간다는 설명이다. 오체투지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스팔트에 그대로 누이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으로 삼보를 걷고 일 배를 하는 삼보일배와 다르다.

이날도 학교에서는 정상적인 수업이 이루어졌기에 나는 현장에 가보지는 못했다. 아이들을 맡아주는 일로 이들이 나갈 수 있는데 일조했다는 생각을 하였으나 아쉬운 마음은 컸다. 한마음으로 모인 많은 분들을 보며 복잡한 마음이 혼재했다. 이들의 주장은 당연하고도 꼭 필요한 것이기에 동의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차가운 아스팔트에 꼭 나가야 했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수교육의 역사는 곧 부모 투쟁의 역사

특수교육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조금 더 이해가 된다. 역사적으로 부모의 권리 투쟁 없이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오늘날 특수교육의 선진국이라고 여겨지는 미국에서조차 특수교육이 법적 지위를 얻은 것이 불과 십수 년 전이기 때문이다. 인종의 다름과 형태의 다름, 능력의 다름은 끊임없는 차별을 낳았고 당사자들의 희생이 포함된 투쟁 없이 이루어진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비장하였으며, 비통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들은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비장함이 있었다. 이러한 중차대한 일을 마주하고 온몸으로 차가운 아스팔트를 마주하면서도 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있었다. 헤픈 웃음이 아니라 비장한 웃음 말이다. “비장하였으며, 비통하지 않았다”로 표현할 수 있겠다. 함께할 수 있는 동지가 있음에 감사하며 조금씩, 하나씩 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제주에서 시작된 오체투지의 행진은 서울까지 전국을 돌며 이어진다고 한다. 그 시작의 발걸음을 제주에서 뗀 것.

제주에서 시작된 오체투지는 결국 12월 7일 국회 앞 기자회견을 마지막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글쎄 얼마나 파급력이 있었느냐 묻는다면 물음표겠지만 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의미라고 대답하리라. 뜨거움으로 뭉쳐진 이들의 연대에 대한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것이다.


나는 특수교육의 일말에서 밥을 벌어먹는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이들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데 이렇게 오래 걸렸나 보다. 이들의 오체투지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다른 한 눈으로는 이들의 소중한 자녀들을 돌보는 사람으로서 매일 고민할 수밖에 없구나. 대신 오체투지로 종일 고생한 지인 한 분 한 분께 전화드리며 안부를 물었다. 다행히도 감기에 걸리거나 몸살을 앓은 분은 안 계셨다. 이 또한 대단한 정신력의 승리라고 여겨졌다.


어느덧 해를 넘겨 2024년이 되었다. 모든 공공기관이 새해 계획과 예산을 수립하는 시기, 이들의 오체투지가 얼마나 기억에 남아있는지 모르겠지만, 절대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책 결정자들의 뇌리에 기억되기를 바란다. 이들의 눈물과 온몸의 호소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달이나 지난 시간에 발간하는 이 브런치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옥수수도 자라고, 아이들도 자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