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사장님_나의 작은 브랜드 만들기
언젠가의 꿈이었던 나만의 브랜드 만들기는 어느 날 갑자기 이뤄졌다.
이중전공을 고민하던 시기, 디자인조형학부로 은근슬쩍 마음이 기울었다. 얼렁뚱땅이지만 그림동아리에서 그림도 그리고, 학교에서 작게 연 것이지만 전시도 여러 차례 참가했고, 중학생 때부터 연예인 덕질하며 갈고 닦았던 포토샵 실력도 있다. 그럼에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다잡았다. 미술학원을 다니며 포트폴리오를 준비해보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합격 가능성은 차치하고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좋아하는 취미를 전공으로, 멀게는 업으로 삼아도 되는지’ 에 대한 답이었다.
왠지 모를 자신감에 차 있었던 나에게 한 선배는 좋아하는 일은 그냥 취미로 남겨두는 편이 좋을 수도 있다는 조언을 두고 갔다. 먼저 이중전공의 길을 걸었던 선배였다. 그날따라 기운이 없어 보였던 선배의 모습에, 실은 내가 자신이 없던 것이었겠지만, 디자인 이중전공은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했다.
먼 길을 돌고 돌아왔지만 결국 나는 디자인을 한다. 직접 그리고 디자인해서 제품을 만들고 상세페이지를 제작한다. 그 시작은 슬슬 취업준비를 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쌓이던 어느 날이었다. 스마트스토어는 사업자 없이도 개설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바로 그 날, 별다른 생각 없이 네이버 로그인을 한 후 스마트스토어 센터에서 상점을 만들었다. 이미 아이디가 있으니 만드는 것은 아주 간단했다. 낮은 장벽 덕에 일이 쉽게 풀리자 제대로 수행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지만, 그 의문이 가시기도 전에 만들어진 공간에 무언가 올리고 싶은 욕심이 밀려왔다.
창작노트라는 이름을 붙인 새로운 노트를 펼쳐 브랜드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아무도 모른다. 계획조차 언급하지 않았고 실제로 계획같은 것도 없었다. 누가 시킨 일이 아니었고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스토어는 오로지 나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해방감과 함께, 하루 중 가장 좋은 순간을 떠올렸다. 명도가 낮은 석양빛의 조명을 켜두고 한 글자 한 글자 백지를 채워갈 때, 그 한 글자를 써내려가기 위해 살아온 날들을 반추할 때, 책 속에 밑줄 그어둔 문장들을 불러들여 시간을 누빌 때, 문구를 가득 펼쳐둔 책상 위에서 하염없이 사부작사부작할 때.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나로 존재했다. 내 의지로 움직이는 내 연필이 마음에 들었고, 내 글자로 채워지는 노트가 뿌듯해서 여러 번 펼쳐보았다. 휘리릭 넘어가는 시간들.
기록을 사랑하는 나에게 문구를 만드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고,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의 문구점을 다짐했다. 그리고 나처럼 책상 위에 스티커와 메모지가 가득한 사람, 그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사람을 위한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나도 그 사람들도 작은 것들을 가득 모으는 사람들이다. 미니멀한 것을 맥시멀하게 모으는 사람이라는 뜻의 ‘맥니멀리스트’는 내가 지향하는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이었기에 브랜드가 되었다. 브랜드를 운영하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지인이 ‘미니멀과 맥시멀을 합친 말이면 그냥 오디너리 아니야?’ 라며 맥니멀리스트의 새로운 정의를 흘려주었는데 보통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임을 알기에 그 뜻도 마음에 함께 품고 있다.
이름도 지어주고 어떤 옷을 입힐지 생각하고 나니 마치 하나의 인격체를 만드는 것 같았다. 창작노트에 적당히 구역을 나눠 만들고 싶은 제품을 적어 내려갔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다시 노트로 돌아왔다. 자꾸만 손이 근질거리고 고개를 돌리면 노트에 적을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사장님이 된 것은 어쩌다였지만, 무언가 만들려는 자세와 마음가짐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고, 줄곧 만들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만드는 것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고연전 타투스티커를 제작했던 때일 것이다. 두 명의 언니와 함께 팀을 이루어 타투스티커 만들었다. 새하얀 캔버스를 펼쳐 각자가 그려온 디자인 시안을 확인하고 업체를 선정하고 홍보 계획을 세웠으며 일주일에 걸친 사전 판매와 하루의 당일 판매를 진행했다. 동묘 거리를 한참 걸어 제작물을 받으러 가고 언니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타투스티커를 가장 먼저 붙여본 순간, 친구를 타투스티커 모델로 삼아 날 좋은 중앙광장에서 사진을 찍었던 순간, 사전 구매 신청이 하나둘 들어오는 것을 보며 언니들과 기뻐했던 순간, 새벽 6시에 일어나 간이 테이블과 의자를 들고 목동체육관으로 향했던 순간, 자리 경쟁을 하며 다른 팀들의 눈치를 봤던 순간, 강한 태풍으로 둘째 날 경기가 전면 취소된다는 소식을 듣고 판매를 하지 못한다는 아쉬움과 쉴 수 있다는 안도감이 모두 들었던 순간, 그 순간들이 모두 생생하다. 겨우 최저시급을 간당간당하게 넘길 정도의 수익이었지만 그때 아니면 간직할 수 없는 추억과 내가 그려낸 것들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기뻤다. 특히 방금 전 얼굴에 내 타투스티커를 붙이고 가신 분이 친구를 데리고 다시 찾아와준 일이나, 축제를 즐기고 있는 유튜브 영상 속에서 타투스티커를 발견했을 때는 고뇌하고 고생했던 모든 시간을 다 잊게 했다. 제작 과정에서의 고생은 판매가 이뤄지고 그 반응을 보는 순간 전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뿌듯함과 성취감이 남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다음은 핸드메이드 악세사리 사업이었다. 팔찌며 목걸이며 비즈가 한창이었던 그 흐름에 동참하여 열심히 동대문 부자재 상가 거리를 나다녔을 때였다. 유화 물감으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으니 목걸이 팬던트 위에 하나뿐인 유화 그림을 그려서 판다면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브랜드 이름도 만들고 서비스로 줄 스티커까지 제작했지만 열심히 구상만 하다가 결국 시작하지는 못했다. 나에게 남은 것은 열심히 구상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결국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깨달음이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분명 지금의 사업을 시작하는 것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루는 대표라고 불렸다가, 다른 날에는 작가라고 불렸다가, 또 어떤 날에는 사장이라고 불린다. 10여 년 동안 줄곧 학생 신분으로 살았다가 나에게 새로운 직함이 동시에 여러 개가 생긴 것이다.
이번 생에 처음 들어보는 수식어의 무게는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가져서 안 될 것을 훔쳐온 느낌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장식을 머리에 단 기분이었다. 여러 번 되새김질해도 입에 붙지 않았다. 예의상 붙이는 호칭임을 알고 있지만 들을 각오를 전혀 못 했던 탓인지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호칭에 맞춰서 엄청난 성과를 내고 더 멋진 작품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에 한 달 넘게 하나의 게시물도 올리지 못했을 때도 있었다.
언제나 돌파구는 있다. 힘이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었다는 사실과 존경하는 사람들도 여러 차례 좌절과 실패를 겪으며 성장했다는 것. 그 분들의 글에 위로를 받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의 돌파구는 기록하는 것에 있음을 상기한다. 동시에 기록하는 시간을 위한 물건을 만들고 있음에 감사하고 이 순간을 기록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렇게 감사하다 보면 힘이 난다. 처음이 허접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늦게 시작한 것이거나, 다른 사람을 베낀 것이라는 말도 스스로가 모자라 보일 때 힘이 된다. 맞아, 나는 아주 허접해! 하지만 나는 시작했고 무언가를 베낀 것도 아니지. 제법 나를 닮은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있다. 어쩌다 사장님이지만 어쨌든 사장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