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사장님_나의 작은 브랜드 만들기
제품을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스스로에게 없었다. 이중전공을 고민하며 자신감에 차 있던 모습과 사뭇 다르지만, 막상 현실에 디자인이라는 일이 닥치니 한 발을 뒤로 빼며 주춤거렸다. 일러스트 색감이 들어가는 문구에는 자신이 없어서 검정색과 흰 색만을 사용해 스티커를 만들 정도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바로 이것이었다. 포장을 여는 순간, ‘우와’하는 탄성이 터져 나오는 것.
물건을 살 때를 떠올려보면, 택배 배송 메시지가 오는 순간부터 설렌다. 배송된 택배를 들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니 가끔은 현관문 비밀번호를 열면서 급하게, 부욱- 소리가 나게 테이프를 뜯는다. 택배 상자를 여는 순간, 설렘은 최고조가 된다. 전공 책의 택배가 도착했을 때도 기쁜데, 하물며 좋아하는 물건을 시켰을 때의 택배는 더 말해 무엇 하겠나. 나의 제품을 믿고 주문해준 분들에게 그 설렘을 확실하고 오래도록 전달해주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제품 기획을 하기도 전에 포장에 쓰일 영수증을 프린트하는 기계를 구입했고, 창작노트 가장 첫번째 페이지에도 기획한 영수증을 부착하며 마음을 잡았다. 제품 완성도에 확신이 없었다는 것은 판매에 대한 기대감이 없었다는 말과도 같다. 그런 제품에 결제 버튼을 눌러주신 분들께 어떻게 해서든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자기 자신을 위한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도록 포장에 공을 들였다.
마음 같아서는 상자도 맞춤 제작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열심히 검색하여 작고 귀여운 검정색 상자를 준비하고, 크기에 맞춰 자른 하얀색 종이 완충재를 제품에 두 번 가량 두른다. 포장된 제품은 리본으로 묶어 한 번 더 포장하고, 그 리본과 종이 포장지 사이에는 영수증 한 장과 편지 한 장씩을 끼워 감사의 마음을 담는다. 영수증에는 주문해주신 분의 성함과 주문 내역을 작성하고, 편지에는 스토어를 시작했을 당시의 마음가짐과 그 달의 작고 소중한 것을 가득 누리라는 메시지, 그리고 좋아하는 문구를 인용해 새겼다. 편지의 내용은 주문해주신 품목에 따라 달라졌다. 메모지를 많이 시키신 분이라면 기록에 방점을 두었고, 스티커를 많이 시키신 분께는 무언가를 꾸미는 것에 대한 작은 기쁨에 대해 이야기했다. 품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편지 내용만이 아니었다. 보너스로 드리는 소박한 선물의 내용도 달라졌다. 메모지를 많이 시키신 분께는 다른 메모지도 몇 장 함께 보내드리고, 스티커를 많이 시키신 분께는 잘 활용하실 것 같다면서 파본도 몇 장 챙겨드렸다. 정성껏 포장한 제품을 검정색 상자에 넣고, 상자 겉면에 브랜드 로고 스티커까지 붙이고 나서야 내 마음이 잘 전달될 것이라고 안도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잘 도착한 것인지 ‘나 자신에게 선물을 한 느낌을 준다’, ‘작고 아름답고 아까워서 어떻게 쓸지 싶지만 열심히 사용하고 신상품이랑 같이 또 구매하겠다’, ‘제품 하나하나 디테일이 느껴져서 열어보는 내내 감동했다’ 등의 리뷰가 남겨졌고, 1년 내내 모든 제품의 리뷰 만족도 5점 만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내가 원했던 반응이었다. 리뷰가 남겨졌다는 알림은 메일을 통해서 오는데 리뷰를 확인하러 들어가는 모든 순간마다 떨린다. 정말로 떨린다. 부족한 점이 있진 않았을지, 불만족하신 분이 있진 않을지 노심초사한다. 하지만 언제나 감동을 주는 리뷰가 달려 있는 것을 보고 안도한다. 하나씩 리뷰를 캡처하며 몇 번이고 다시 꺼내 읽어보며 초심을 다잡는다.
고비가 한 번 있었다. 포장을 완료하는 것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15분 손이 느린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10명에게 주문이 들어오면 꼼짝없이 내리 3시간을 포장해야 했다. 포장에 시간이 과하게 소요되자 지치기 시작했다. 포장에 대한 욕심을 가진 것도 나고, 나에게 포장을 시킨 것도 나였기에 어떻게든 해내고 싶었다. 모든 것을 잘 해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을 때 몸과 마음이 지친다. 일을 시작하며 가장 경계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지치면 질리게 되고, 질리면 즐거움과 멀어질 것이 분명했다. 종이 부자재를 제품 크기에 맞춰서 자르고 리본을 묶는 과정이 오래 걸렸다는 점을 파악하고 과감히 삭제했다. 어차피 제품을 뜯고 나면 버려지는 부자재임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신 종이 봉투를 제작했는데, 이곳저곳 기록해 둔 노트를 스캔해서 글자만 따낸 후 빼곡히 겹쳐 놓아 하나의 디자인처럼 보이게 했다. 작은 글자들이 가득 모인다는 맥락에서 맥니멀의 의미와도 연결되었다. 영수증도 새롭게 바꿨다. 핸드폰으로 타자를 쳐서 기계로 뽑아내는 것은 비효율적이었다. 두꺼운 종이를 활용해 초대장 카드처럼 영수증을 새롭게 만들었다. 품목을 미리 적어두어 주문 날짜와 품목을 바로 표시할 수 있었고 손글씨로 감사 메시지를 적었다. 핸드폰 타자보다 손글씨가 더 빠를 수 있음을 이때 깨달았다. 정갈하게 디자인한 영수증 카드와 손글씨 덕분에 여전히 맥니멀만의 느낌을 보여줄 수 있었고 포장에 쓰이는 시간이 다소 줄어들자 제품 기획에 쓰이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리뷰에서는 종이봉투와 영수증 카드를 버리지 않고 다이어리나 스크랩에 사용했다는 고객분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완성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것도 새로운 성장이 될 수 있다는 점, 안정적인 루틴에서 한 번 더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점, 나의 차선도 누군가에게는 최선일 수 있다는 점, 최선 말고 차선도 충분하다는 점을 말이다.
스토어를 열고 나서 반년 정도 지나자, 매일 아침 주문 알림을 확인하고 박스를 펼쳐 포장하는 일상이 제법 자연스러워졌다. 택배 마감시간이 다가오기 전에 급하게 발송하는 일이나, 메일함에서 편집샵 입점 제안과 협업 문의를 보고 어떻게 알고 연락을 주신 건지 궁금해하는 일도 적어졌다. 직업병도 생겼다. 새로 눈에 띄는 브랜드가 있다면 전체적으로 어떤 무드를 보여주고 있는지, 소비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주고 있는지 SNS 피드를 끝까지 내려서 살펴본다. 물성이 있는 무언가를 소유했다는 기쁨에서 멈추지 않고 패키지와 동봉된 설명서를 한 자 한 자 뜯어 읽어본다. 이 패키지 상자는 얼마일지, 순이익이 얼마나 남을지도 추측해본다. 제작 과정의 고단함에 공감하며 디테일에 감탄한다. 소비자 관점을 넘어서 제작자 관점으로 브랜드를 살펴보는 것은 구매의 기쁨을 두 배로 만들어준다.
만드는 삶을 살고 싶다고 써둔 몇 년 전의 다이어리를 발견했다. 정작 만드는 삶을 살아보니 한계를 느낀다. 마구잡이로 손이 가는 대로 만들어내는 것은 종이 낭비일 뿐이고 한 번 쓰고 소비되고 버려지는 물건의 무용함이 무서워졌다. 깊은 고민의 과정을 거쳐 생각과 이야기를 온전히 담아냄으로써 오래 꺼내보고 들여다볼 수 있는, 오래도록 사랑받는 물건을 만들고 싶어졌다. 재미에서 시작한 일에 사명감과 책임감을 얹히는 순간이었다.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마구잡이로 디자인해서 나온 제품에 나름의 의미를 붙여왔는데, 제품을 파는 것보다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게 되면서 ‘영감을 제품으로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새로운 기획을 시작했다. 마음 속에 목표를 품고 나니 평소에 봐왔던 작은 것들도 낯설게 보였다. 마침 단색 작품들이 모인 국립현대미술관의 <정상화> 전시회를 오래 감상했다. 도전적이고 시끌벅적한 작품들 사이에서 고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님의 ‘무제’ 작품들은 되풀이 되는 우리들의 일상 기록과 닮아있었다. 작가님은 그림을 그리실 때 캔버스의 표면을 칠하고 덧붙이고 떼어내고 메우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우리가 노트 위를 칠하고 덧붙이고 적으며 채워나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예술은 일 자체가 끝이 없고 끝없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작가님의 철학도 우리들의 일상 기록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었다. 되풀이 되는 일상을 차곡차곡 기록해나가는 맥니멀리스트들을 응원한다는 이야기를 담아 반복과 무제를 키워드로 한 메모지와 스티커를 제작했다.
전시회의 의미까지 전달하기 위해 스티커 굿즈도 함께 만드느라 고생깨나 했지만 제품 기획 연습이 제법 되었다. 반응이 좋았기도 했지만 스스로 색다른 방식으로 제품을 기획해보았다는 뿌듯함이 오래 머물렀다. 미술관에서 영감을 얻은 후로는 ‘전시되었다’는 표현을 사용하여 신제품의 업로드를 알린다. 제품도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맥니멀리스트의 처음은 사실 브랜드가 아닌 ‘순간이 습관이 되어’라는 개인 프로젝트로 시작했다. 쉽게 지치고 우울해지는 관성에서 벗어나 차분하고 건강한 생활 패턴을 만들기 위해서 시도한 것이다. 달력 한 칸에 여러 모양의 작은 도형을 차곡차곡 모아나가는 것인데 그 도형 하나에는 나를 위한 작은 임무가 배정되어 있다. 그 날에 그 임무를 수행했다면 달력에 작은 도형을 그릴 수 있다. 순간의 도형들이 모여서 결국 커다란 하나의 달력과 조금 더 단단한 루틴을 가진 나를 만든다는 의미에서 맥니멀리스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 개인 프로젝트를 하면서 보여주기식의 성취에서 조금씩 벗어났고, 무언가를 해내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확신도 내 안에서 자리 잡혀갔다. 부족한 것을 작은 도형 하나로 채워가며 조금씩이나마 성장해갔다고 믿는다. 모두가 맥니멀리스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작은 것들의 기쁨을 알고 그 기쁨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Q2. 가장 잘 팔리는 제품과 특히 애정을 갖고 있는 제품은?
A2. 가장 잘 팔리는 것은 신기하게도 제일 처음에 만들었던 스티커들이에요. 게시물을 올리지도 않는데도 주문이 들어오는 걸 보고 항상 초심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해요. 처음에 만들어갔던 브랜드 무드가 진짜 제 것이기도 하니까요. 요즘은 ‘번짐’을 테마로 한 메모지도 세트로 잘 나가고 있어요. 그리고 모든 제품을 직접 만들다보니까 모두 애정이 있지만, 애증을 가진 제품도 있어요. 키링인데요, 하루종일 꼼지락 꼼지락해도 몇 개 만들지 못하고 손도 아프고 키링 조각들을 조합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이렇게 제작 과정이 전부 수작업이라 아주 여유로울 때 미리 작업을 해두는 편이에요.
주문 들어온 것을 보고 저와는 다른 소비 패턴을 가진 분들을 접했어요. 바로 2천 원짜리 스티커를 주문하기 위해 3천 원의 택배비를 내는 분들이었죠. 그걸 보고 친구에게 ‘얼마나 사고 싶으면 택배비를 부담해서라도 구매할까?’라고 신기해하며 이야기했는데 친구가 ‘얼마나 살게 없으면 그거 하나만 샀겠어.’라며 정신차리게 해주었어요. 하하하하하 앞으로 더 분발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