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는 방법. 이게 최선인가?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모르지 않는다. 기억이라는 게 얼마나 허술한지도 안다. 다만, 무언가를 기록하는 일이, 게다가 꾸준히 기록하는 일이란 부지런과 성실을 넘어 기록과 쓰기에 대한 강력한 동기가 필요한 일이고, 언제나 그 동기라는 것이 너무 쉽게 흔들린다는 것이다. 핸드폰에 저장된 수많은 사진들을 정리하는 일조차 시간과 품이 들고, 그저 클라우드 동기화로 안심할 뿐이다. 시간과 장소별로 정리하자는 다짐은 귀찮음을 이기지 못한다. 사진 정리도 제대로 제 때에 못하는 지경인데, 기록이라니...... 기록하고 저장한다는 취지로 만들어 둔 블로그며, 사회관계망 계정들은 점점 시들해지고, 마지막 보루라 생각했던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도 지지부진하다. 귀찮다. 품이 들고, 머리를 써야 한다. 굳이 무엇을 위해 써야 하나?라는 질문은 무언가를 쓰려고 할 때마다 나를 붙잡는다. 그 시간은 그냥 흘러가게 두라고 한다. 어차피 너를 위한 기록이니 네가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거 아니냐고, 그 기억이 다소 희미해지더라도, 혹은 왜곡되더라도 무슨 상관이냐고, 그건 그저 나의 사적인 영역일 뿐이니 이러나저러나 상관없는 거 아니냐고, 핑계는 셀 수 없이 많고, 기록을 늘 뒤로 미룬다. 그러다 어느 날에 그 많은 시간들이 뭉텅뭉텅 잘려나가 버린 듯해서 당혹스럽다. 그리고 후회한다. 잘 남겨 놓을 걸. 그때의 기분과 감각을 조금이라도 적어둘 걸 하는 후회. 그런데 정말 잘 기억하는 방법. 시간을 기억하는 방법에 기록이 최선인 건가?
사실 기록하고자 했던 것들은 너무 많았다. 여행을 잘 기록하고자 10개의 챕터를 만들어 두었다( 겨우 두 챕터를 완성하고 멈추어 버렸다). 자카르타의 모습을 잘 기록해 두고자 하는 마음에 자카르타 통신이라는 거창한 섹션도 만들었다.(쓰고자 하는 마음만 있을 뿐, 통신원이라는 단어에게 빚을 지고 있는 기분이다) 그리고 틈틈이 나의 생각들을 적어보고자 했다.( 생각은 그냥 일기에 적으면 되지 굳이?라는 마음이 들지만, 일기는 사실 거의 쓰지 않는다) 거기에 읽는 책들에 대한 간단한 리뷰도 열심히 쓰려고 한다.(그나마 가장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나마도 요즘엔 숙제와 같아서 왠지 심드렁하다) 매일의 이벤트들은 수첩에 메모한다.(매일 비슷비슷하다고 일주일치를 한꺼번에 후다닥 적어 버리기 일쑤이다)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결국은 나의 게으름이다. 무엇을 쓴다는 일은 쉽지 않고, 에너지를 빼앗기는 일인 데다, 나의 쓰기를 점검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의 쓰기를 읽는 일이 훨씬 쉽고 재밌다. 그래도... 오늘은 기록을 좀 해보려 한다. 애초에 내가 쓰고자 했던 이유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고 나를 위한 기억의 저장이고, 그런 것들이 쌓여서 내 공간을 채울 땐 스스로에게 칭찬하고 싶어지는 법이니까. 시간을 쓰는 일 중 '기록'하는 일은 나를 지치게 만드는 일이지만 그냥 다 지나쳐 버리기엔 나 스스로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왠지 조금의 죄책감도 든다. 쓰고 읽는 일이 때때로 내가 스스로에게 지우는 쓸데없는 짐 같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읽는 일. 그리고 조금이라도 쓰는 일이 나를 충만하게 하고 조금은 안심이 되게 하는 일이니 말이다.
오늘은 문득, 정말로 잘 기록하는 사람이 되자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내 꾸준히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